32. 이해의 길 12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축복받을 일인데, 불교에서는 왜 괴롭다고 하나요?”

오래 전 어느 분이 던진 질문이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생명의 탄생마저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하는 인간의 삶을 모두 고통이라고 진단한다. 오죽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했겠는가. 사바(娑婆)란 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땅(忍土)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염세적 아우라가 물씬 풍긴다.

고(苦)의 문제는 근본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인 12연기와 삼법인, 사성제 모두에 등장한다. 12연기에서는 유전연기가 고통의 길이며 삼법인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사성제에서는 고성제(苦聖諦)가 그것이다. 그만큼 괴로움의 문제가 불교에서 중요하다는 의미다. 불교에서 깨침을 중시하는 것도 이를 통해 비로소 생로병사의 고통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붓다는 왜 그렇게 우리의 삶이 괴롭다고 했을까? 그리고 괴로움을 성스러운 진리(聖諦)라고 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를 위해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괴로움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로 고고(苦苦)는 배고픔이나 추위, 질병과 같은 육체적 고통을 의미한다. 둘째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졌을 때 느끼는 고통을 괴고(壞苦)라 한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사업실패, 빚보증 등으로 재산을 잃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로 행고(行苦)는 인생의 무상함에서 오는 괴로움이다. 싯다르타가 성문 밖을 나가서 마주한 삶의 진실, 즉 유한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느끼는 실존적 고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괴로움을 사고팔고(四苦八苦)라 해서 네 가지, 혹은 여덟 가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네 가지 고통이란 앞서 언급한 생로병사가 여기에 포함된다. 여기에서 생명의 탄생마저 괴로움이라고 진단한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늙고 병들어 죽는 실존적 괴로움은 태어남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생로병사가 없다면 괴롭다는 문제의식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괴롭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바로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 인물이다.

나머지 네 가지는 대상과 만나면서 느끼는 고통이다. 첫째로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오는 고통이다. 둘째로 원증회고(怨憎會苦)는 애별리고와 반대로 서로 원망하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이다. 이 둘은 우리가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법구경>에서는 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愛之不見憂),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게 되니 괴롭다(不愛亦見憂).”고 하였다. 셋째로 구부득고(求不得苦)는 무엇인가를 구하고 싶은데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배가 몹시 고픈데도 돈이 없어 먹을 것을 사지 못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자아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해서 오는 고통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오음(五陰), 혹은 오온(五蘊)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활활 불타오르는 괴로움이다. 한마디로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우쭐함이 강한데, 다른 사람이 대접해주지 않을 때 느끼는 괴로움을 뜻한다.

지금까지 인간이 느끼는 괴로움을 살펴봤는데, 인간의 고통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의 삶이 괴롭다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면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내가 지금 괴롭기 때문에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괴로움을 성스러운 진리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