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日신불습합 신앙 확인하다

42번 부츠모쿠지 관음상 앞에
술 공양이 가득… 처음엔 당혹
신불습합 과정서 생겨난 전통
43번 사찰도 신불습합 강한 영향

논이 펼쳐진 미마평원, 42번 사찰 부츠모쿠지로 향하는 길이다.

41번 류코지(龍光寺)에서 42번 부츠모쿠지(佛木寺)까지는 2.5km 정도의 짧은 거리. 언덕길을 넘어 좌우로 논밭이 펼쳐진 미마(三間)평야를 지나간다. 어딜 보아도 작물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니 류코지의 창건설화에 오곡의 신이 나올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곳을 순례할 땐 작렬하는 태양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저 땅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다만 사찰간의 거리가 짧다는 것을 위안을 삼고 있던 찰나 길 건너에서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돌아 봤다.

“순례자님! 국수 먹고 가세요!”
길 건너엔 양로원에서 마침 점심을 먹던 중이었는지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마침 시장하기도 했고 무더위에 지친지라 사양 않고 초대를 받아 들였다.

마침 그날은 지역의 유치원에서 양로원 견학 겸 위문을 위해 아이들이 와있었고, 어르신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 날이었나 보다. 양로원 마당에 크게 차양을 치고 자리를 마련했는데, 국수를 먹는 모습이 재미있다. 일본의 여름 풍경 중 하나로 꼽히는 ‘나가시 소멘(流し素麵)’을 설치한 것이다.

나가시 소멘은 반으로 길게 자른 대나무나 파이프에 물이 흐르게 하고, 작게 만 국수를 흘려  보내는데 이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것이다. 나도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종종 본 장면이지만, 우연히 초대를 받아온 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신기했다.

배낭을 풀고 자리에 앉자 어린아이가 접시에 주먹밥과 장아찌 몇 조각을 담아 왔다. 옆의 선생님이 위문을 위해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마침 좋은 기회니 순례자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어도 되겠다고 물어 오길래 기꺼이 받아들였다.

“여러분 여기 이 분은 ‘오헨로상(순례자)’에요! 시코쿠에 있는 88곳의 사찰을 걸어서 순례하는 분들이에요. 아마 여러분도 한 번씩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이어지는 물음에 1번부터 지금껏 걸었으며,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다들 놀란다. 한여름에 순례자가 드물거니와, 한국에서 일부러 순례를 위해 온 것은 처음 본다고 한다. 덕분에 잘 얻어 먹고, 할머니들이 만드신 찐빵까지 선물로 받았던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길이다.

42번 부츠모쿠지(佛木寺)는 멋진 산문이 순례자들을 반겨주는 깔끔한 도량이다. 사찰의 연기설화에는 코보 대사가 길을 지나는데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잠시라도 편히 가시라며 자신의 소에 대사를 태웠다고 한다.

노인의 소를 타고 가던 중 산 중턱에 빛이 나는 나무가 있어 다가가 보니 나무위에 보석구슬이 빛나고 있었다. 구슬을 살펴보니 대사님이 당에서 귀국할 때 인연이 있는 땅을 찾길 바라며 일본을 향해 던졌던 물건이었다. 이에 이곳이 인연처임을 알고 구슬이 걸려 있던 나무로 대일여래를 조성하고, 구슬을 백호로 박아 봉안한 것이 부츠모쿠지의 시작으로 전한다.

또 소를 타고 가던 중 이 땅을 찾았기에 가축들이 병이 나지 않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영험이 있는 사찰로 유명해 졌다. 본당 옆에 작은 사당이 있어 대사님을 태우고 온 소를 기리고 있으며, 농가에서 죽은 가축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 지역에선 매년 파종이 끝나고서 이곳을 참배하고 절의 호부(護符)를 받아 축사의 기둥에 붙이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혹설엔 소를 태워준 그 노인이 41번 류코지의 이나리신이었다고도 하니 이래저래 농업과 관련이 깊은 도량이다.

부츠모쿠지 관음보살상과 술 공양물. 일본 특유 신불습합 신앙을 보여준다.

부츠모쿠지 경내에 들어서자 마당의 관세음보살상이 순례자들을 맞아준다. 헌데 공양물이 묘하다. 보살상 앞 한쪽에 술이 가득 쌓여있다. 그것도 공양물이라는 표시와 시주자의 이름까지 당당히 쓰여 있다. 처음엔 ‘어찌 청정한 도량에 술을, 그것도 불전에 공양물로’라며 의아하다 못해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후에 한 일본 스님에게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불전에 술을 올리는 것은 역시 신불습합기의 전통으로, 일본의 신사에서는 신에게 매일 청주와 맑은 물, 생쌀, 소금을 제물로 올리는 데 이것이 불교에 들어온 것이다. 또 청주와 소금은 일본에서 더러운 것을 정화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지고, 둘 다 사람이 만들기 위해선 오랜 공력을 들이는 것이기에 귀한 공양물로 취급 받았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공양이 들어온 술을 퇴공해서 참배 온 이들이나, 절에서 묵는 손님들에게 접대하기도 하니 사찰 측으로서는 감사한 공양물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해는 갔지만 상단에 술이 올라가는 모습은 우리의 문화에서 보자면 꽤 이질적인 모습이다.

참배를 마치고 43번 메이세키지(明石寺)를 향해 나아간다. 11km 정도 떨어져 있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하나가도게(齒長峠)라는 가파른 고갯길을 하나 넘어가야 하기에 조금 힘이 든다. 다만 순례자들 사이에 몇 년 전 큰 산사태로 고개를 넘는 옛 순례길은 통과할 수 없으니, 터널을 이용하라고 전해지고 있다. 으레 터널로 통하는 길을 잡으려는데 코에이 씨가 고갯길이 열려있다는 말을 한다. 예전에 만난 어느 순례자가 “길이 험하긴 하지만 통과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동해 모두 고갯길로 통하는 등산로로 향한다. 입구에 붉은 글씨로 크게 통행금지라는 간판이 서있었으나 누군가 작게 “통행가능, 자기 책임을 가지고 조심하시오”라고 써 두었다. 코에이 씨가 간판을 지팡이로 쿡쿡 찌르며 “뭐가 불가라는 거야!”라곤 거침없이 등산로로 들어섰다.

하나가도게 고개가 가파르단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는데, 과연 소문에 맞게 가파른 길들이 이어졌다. 심지어 길옆으로 잡고 오를 수 있도록 쇠사슬까지 걸려있었다. 그래도 걱정한 것에 비해 길이 아주 험하거나 위험한 길이 없어 정말로 ‘뭐가 불가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고갯마루에 다가와서 위험한 길이 나타났다. 산사태로 원래 있던 길이 완전히 깎여 내려 간 것이다.

세 사람이서 한창을 신나게 올라오다가, 갑작스레 길이 쓸려간 모습을 보노라니 황당해서 너털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무너진 등성이를 따라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이 나있었다. 그제야 입구의 ‘자기책임’이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올라온 길을 다시 돌아가긴 어려우니 한사람씩 조심해서 나아간다. 무너진 길을 빠져나가니 곧 고갯마루에 오를 수 있었다. 긴장을 풀고 잠시 쉬려했지만 모기와 풀벌레들이 너무나 많아서 곧 하산 길을 잡았다. 하산은 올라올 때에 비해서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고갯길을 내려오자 금세 메이세키지가 있는 세이요(西予)시에 들어섰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져가고 오늘밤은 어디서 자나 하고 조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찰에 가면 벤치나 휴게소가 있겠거니 43번을 향해 나아갔다. “순례에 무엇이 두려우랴, 여차하면 순례공덕으로 좋은 곳 가겠지”라며 농담을 하던 것이 이젠 순례의 든든한 신조가 됐다.

메이세키지(明石寺)는 코보대사가 태어나기도 전, 6세기경에 세이쵸(正澄)라는 이가 중국에서 모셔온 천수관음을 본존으로 모시고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하지만 일본의 불교 전래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정확하지 않기에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른 시기에 사찰이 창건 됐고, 코보 대사에 의해 중흥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사찰의 이름은 메이세키지의 오쿠노인(奧院)인 하쿠오 곤겐(白王샶現) 사당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한 아름다운 여신이 소원을 빌며 거대한 돌은 안고서 메이세키지를 오다가 그만 날이 밝아 들고 오던 돌을 두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하고, 그 돌을 두고 떠난 자리에 사당을 세운 곳이 하쿠오 곤겐으로 전한다. 또 이런 신화나 전설이 많다보니 메이세키지는 신불습합이 강한 도량으로 사찰의 본당 옆에 신사가 세워져 함께 모셔져 있다.

일본의 여름음식 ‘나가시 소멘’. 국수를 물에 흘려 내려보내면 건져 먹는다.

메이세키지에 도착하자 어느덧 해는 넘어가고 어스름한 빛만이 남은 저녁이 됐다. 일단 간략하게 참배를 하고서 잘 곳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그 흔한 벤치하나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있는 곳은 몸을 누이기에는 힘든 위치였다. 

홋카이도 팀이야 텐트를 들고 다니니 고른 땅만 있으면 된다지만, 나는 매트와 침낭만 들고 다니니 조금 곤란했다. 본당에서 주차장까지 메이세키지 경내 전체를 몇 차례나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 주차장 옆 건물의 처마 밑으로 노숙 장소를 정했다. 몇 번 노숙을 해봤지만 이렇게 까지 열린 노숙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 됐지만 별 수가 없었다. 홋카이도 팀도 혹시 모르니 옆에 있어 주겠다며 내 노숙 장소 옆으로 텐트를 쳤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주변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숲이 우거져 달빛도 들지 않는 곳. 바람에 흔들리는 풀 소리에도 긴장해 정신이 번뜩 들었다. 하지만 이윽고 “부처님 도량이 옆이고, 대사님이 항상 함께하시는 순례인데”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순례에 무엇이 두려울까! 코끝을 스치는 산바람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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