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이 셀프코칭

8월, 제주 한달살이를 하고 왔다.

무더운 서울의 여름을 떠나고 싶던 차에 아홉 살 손녀에게 마당이 있는 시골집 생활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딸아이의 부탁이 있었다. 마침 지인이 한달살이를 위해 지은 제주 애월 납읍리의 시골집을 얻을 수 있었다.

제주에 여러 번 머물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긴 기간 현 주민처럼 살아보긴 처음이었다. 여러 정보를 탐색하고 경험한 이의 도움말도 얻어 나름 준비를 많이 해간 셈이었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제주 시골의 환경에 그대로 젖어들기만 하면 되었다.

인생 성찰하는 자기만의 시간
남은 생에는 목표설정 필요해
수행하고 보시하며 정 베풀자

일상에서 벗어나니 다른 시간이 펼쳐졌다. 마음을 두는 자리가 달라지고 시선의 높낮이가 바뀌었다. 관성으로 굴러가던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그 자국을 살펴보았다. 남편과 장성한 아들의 세 식구 살림을 하면서, 결혼한 딸네가 바로 곁에 있어 매일처럼 왕래를 하는 생활이다. 집에서 두 끼는 먹는 남편과 나의 끼니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수 십 년간 해온 먹는 일이 아직도 첫 번째 과업이라니! 먹는 일 말고도 생활을 유지하는 자질구레한 집안일이 있었다.

사회와 접속하는 경제활동이라면 드문드문 생기는 라이프코칭과 글쓰기, 그 준비를 위해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는다. 남는 시간에는 손녀와 놀아주기,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보기, 지인과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기분이 꿀꿀할 때는 동네 양품점이나 대형 마트를 찾아 소박한 예산의 쇼핑을 한다. 나른하도록 별 일 없는 나날이다. 60 평생에 가장 안온한, 감사한 날들이기도 하다.

일상과 여행의 틈새, 한달살이의 작은 성찰

한달살이는 여행이라기엔 길고 이주의 기간이라면 짧다. 이 틈새가 한달살이의 매력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날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관광지에 온 듯 서둘러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 못 하면 내일 하고, 이번 주에 못 가면 다음 주에 가면 되니까.

시장 보기, 요리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같이 챙겨야 하는 일상이 없다는 느낌이 우선 신선했다. 집을 떠났다고 해서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지내는 것도 아니련만 집에서 하던 하루 몇 시간의 가사노동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끼니에 얽매이지 않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세 끼니 먹거리 장만의 지겨움이 즐거움으로 바뀌었다고 할까. 제주의 향토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었고 그도 귀찮으면 장을 봐서 간소한 식단을 마련했다. 옷도 가져간 몇 벌로 편하게 바꿔가며 입었고 청소는 더럽다고 느껴질 때 보이는 곳만 치웠다. 좁은 집이니 야단스럽게 할 일도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 큰 불편함은 없었다. 사실 이런 시간을 이어가도 되는 나이가 아닐까.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유지하는 데 시간을 버리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새삼 다가왔다.

예순이 넘도록 수 십 년의 관성으로 살아왔다는 깨달음은 경제활동 역시 명함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냥저냥 비슷한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는 성찰로 이어졌다. 그 일이 지금 나이에도 계속 원하는 일이었나. 그 중 정말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은 없을까.

몇 년 전 출퇴근 직장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어 했던 일이 해묵은 숙제로 떠올랐다. 책 읽기 시민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의 가능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나. 코칭을 시작할 때도 딸 세대 젊은이가 사회로 나갈 때 도움이 되고 싶은 동기가 가장 강했는데 그 초심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그냥 습관처럼 생기는 일을 그때그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반성도 일었다.

인생의 좌표를 그려보게 한 손녀와의 시간

손녀를 즐겁게 하고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외에 특별히 즐거운 일을 만들지 않았다. 뜨거운 날은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고 흐린 날은 도서관을 들러 집에서 독서를 하거나 카드게임을 했다. 열흘이 지나자 손녀도 밖으로 나돌기보다 동네생활을 재미있어 했다. 요행으로 삽살개와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는 인심 좋은 이웃이 있어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손녀는 무척 기다리고 아꼈다.

제주 집은 담장이 귤밭의 돌담으로 이어지는 귤나무가 천지인 동네에 있었다. 언덕에 오르면 야트막한 오름 곁으로 바다가 보였다. 귤밭에서 익어가는 청귤을 따다가 청을 담그고 밤이면 깜깜한 언덕에서 날아오르는 반딧불을 보았다. 그도 싫증나면 툇마루에서 멍하니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듣고 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낙조가 없어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지루하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작고 아담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집세를 빼면 나면 서울에서 하루룰 보내는 것보다 오히려 싸게 먹혔다. 결핍을 느끼지 않으니 사들이는 게 없었고 사교를 하지 않으니 돈 들일 일이 별로 없었다.

한 달간 일상을 유예하면서 제주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손녀와 둘이 보내는 시간에 할머니의 역할과 내리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20대 중반에 엄마가 되었고 워킹맘으로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결혼생활을 했다.

그땐 모든 게 서툴고 힘겨웠다. 지금 손녀 나이의 딸아이와 아들아이는 어떤 모습이었고 엄마인 나는 무엇을 함께 했나. 그땐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바랐을 뿐 아이가 커가는 예쁨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집에는 시부모님이 계시니 자연히 밖으로 나돌았다. 엄마 노릇은 그저 책임과 의무였던 듯하다. 지금 손녀에게 쏟는 사랑은 잃어버린 젊은 엄마 시절에 대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예뻐하다가 지치면 아이엄마에게 돌려보내면 되는 손주 사랑은 그저 양지만 찾아다니는 철없는 엄마 닭 같아서 좋았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눈을 돌리면 온통 푸른 중산간 제주의 이 집에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서울 집에서만큼 상큼하지만은 않았다.

한 달 동안에도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가 내뿜는 에너지가 새삼 눈부셨다. 순간마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태울 거리를 찾아 보채는 아이에 맞춰 쏘다니다 보니 열흘이 지나자 결국 작은 몸살이 찾아왔고 사랑방 같은 동네 병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제주 할망들의 외계어같은 사투리를 듣는 체험도 했다.

손녀와 단 들이 지내면서 자신의 좌표를 생각했다. 지금은 인생의 어디쯤에 와있는 것일까. 분명 정상은 넘어왔고, 내리막길 어딘가에서 서성대고 있는 것일 게다. 헉헉대며 올라가는 길이 끝났다고 해서 남은 힘을 다 하지 않고 털레털레 내려가며 길이 다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아닐까.

40대가 끝나기 전, 제주 올레가 막 생겼을 때는 배낭을 메고 하루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일단 호기심이 있었고 그 여행의 목표가 있었다. 하루 종일 걷다가 어디든 쉬면서 배를 채우고 숙소의 어울림 문화에 따라 짧은 사교를 하고 나면 깊이 잠들었다. 그리고 새벽이면 일어나서 다시 길로 나갔다.

딸과 사위가 내려와 시간 여유가 생겼어도 올레 코스를 찾으러 갈 기운도 호기심도 없어 동네 올레를 걸었다. 턱이 없는 인도 옆으로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이었다. 불안했고 불편했다. 30여 분 만에 콜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왔고 뒷날 차도가 아닌 돌담길 올레를 찾아 쉬엄쉬엄 걸었다. 제주 올레는 원래 마을 어귀에서 집까지 들어오는 골목길을 뜻하는 것이니 이런 마을에선 나서면 올레이다. 꼭 하고 싶고 맛보고 싶은 체험을 찾지 않아도 되는 나이는 평안일까, 무덤덤한 퇴락일까.

매일 한 구절의 금강경 독송으로 자신에게 묻다

집에서의 시계와 다르게 돌아가는 그곳에서 마음에 숨어 있던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금강경 한 구절을 독송했다.

마음에는 와글거리는 깨달음이 올라오는데, 번뇌와 분별을 끊으라는 붓다의 말씀이 오히려 더 새겨졌다.

붓다의 말씀은, 늘 궁극을 향한다.

인생의 지금 좌표에서 유용한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새로울 것 없는 이 질문이 번쩍하는 섬광처럼 마음을 가로질렀다. 이 정도만 살아도 크게 나쁘지는 않지 뭐, 라는 게으름에 죽비가 내려쳤다.

아직은 생각을 멈출 나이가 아니다. 삶은 여전하고 세상은 미처 베풀지 못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수행하고 보시하며 정겨운 삶을 이어갈 에너지도 남아있다.

금강경은 어떻게 직장을 구할 것인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알려주는 대신 이런 질문에 해답을 준다.

“인생의 마지막에 관한 비밀은 무엇인가?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가장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금강경의 지혜〉 페이융

이 궁극의 질문이 다가오는 지금, 이 질문에 답함으로써 매일 무엇을 구하고 무엇으로 시간을 채울 것인지 현답이 나올 것 같다.

큰 기대 없이 휴가처럼 떠난 제주 한달살이가 의외로 가져다준 작은 성찰이 큰 선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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