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집은 난장판이다. 아들의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몇 박스가 지인의 집으로 갔지만 여전히 책들은 넘쳐난다. 옷 정리도 돌입했다. 아들의 옷은 거의 대부분이 아는 형들에게 받아 입었는데 그 옷들은 여전히 새 옷처럼 말끔하다. 그 옷들은 또 아는 동생에게로 다시 전해졌다.

다음은 장난감 차례. 아들의 장난감은 많기도 많다. 정리한다고 꺼내 놓으니 아들은 먼지를 다 털어내기도 전에 가지고 노는 재미에 쏙 빠져 버린다. 추억의 물건이라며 버리기를 거부하는 것들도 있다.

이런 아들을 보면서 어디에 있는 줄 몰랐던 물건들은 애초에 없는 것과 똑같음을 알게 된다. 아직 정리 시작 단계임에도 우리 집의 물건들이 구석에 처박힌 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는 걸 계속 확인하자니 참 씁쓸하다.

늘 우스개로 해왔던 말, “우리 집엔 없는 게 없어. 다만 어디 있는 줄 모를 뿐에서 이제는 이게 여기 있었군을 연발하는 중이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와 거실을 장악하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에 놀라며 내 삶의 과잉을 생각하게 된다.

한동안 집안이 지저분하더라도 집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먼지를 털고 닦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로소 반짝반짝 윤을 내며 깨어나는 물건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도 크거니와, 그 물건들이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또 이제는 어떻게 제 갈 길을 찾아 줄 것인지를 고민하며 내 지난 시간들과 그 물건이 품게 될 미래까지 함께 살아보는 일은 꽤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시간들이 버리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물건의 끝없는 여행이 되기를 희망한다. 내 것과 남의 것의 분별이 사라지고 어느새 돌고 돌아 내 것이 남의 것이 되고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그런 시간들과 공간들이 버리기라는 단어에 깃들길 바란다.

우리 집엔 버려진 것을 주워 사용하는 재활용품이 많다. 어느 때인가 남의 것이었던 소파, 서랍장, 책꽂이 등이 이제는 또 잠시 내 것이 되어 있다. 한때 버려졌으나 나와 인연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들이 있듯 이제 나에게서 떠나가는 것들 역시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 제 역할을 다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물건이 떠나간 자리에 생긴 우리 집의 공간은 새로운 인연들,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으로 채워질 것이다.

버리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오히려 풍족을 절감한다. 쓰지도 않으면서 그 물건에 얽매여 있던 내 마음을 본다. 물건을 갖지 않은 무소유가 아니라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는 마음을 물건을 버리고 나누며 연습하는 중이다. 어디 물건뿐이랴. 내게 잠시 머물다 흘러가는 물건들처럼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느낌·생각들도 잠시 내게 머물다 사라지는 것일 뿐, 진정한 내 것은 아님을 알아차려야겠다.

물건을 비워내면서, 끝없는 소비를 불러오는 욕심을 같이 비워낼 것이다. 물건이 비워진 자리에 생긴 정갈한 공간처럼 아집을 비워낸 자리에 원만하고 밝은 기운을 채워 살고 싶다. 지구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집과 그 공간 안의 나를 말끔히 비워낸다면 지구도 그만큼 정갈하고 밝은 기운을 품은 공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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