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 완역으로 만난 최초 대승경전
산스크리트 완역으로 만난 최초 대승경전
  • 김주일 기자
  • 승인 2019.08.30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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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천송반야경
전순환 번역/불광 펴냄/3만 5천원

 

“空 알려면 반야바라밀다 알아야 한다”
10년간 3종의 산스크리트 사본 비교
기존의 영어·일어 번역 오류 교정해
세계 최초로 새로 발견된 사본 추가

부처님 열반 이후 초기불교 사상에 혁명성을 더한 대승불교. 그 태동이 담겨진 〈팔천송반야경〉은 〈금강경〉 〈반야심경〉의 기초가 된 경전으로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인 반야바라밀다와 보살·공(空)의 개념 및 진의가 모두 밝혀져 있다. 지금까지 〈팔천송반야경〉은 초기 대승불교 반야부(般若部) 최초의 경전이라는 중요성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연구가 진행돼 왔다. 그중 특히 독일 괴팅겐대학, 미국 웨스트대학,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등 서구의 여러 학술단체가 〈팔천송반야경〉의 가치에 주목하고 문헌학적 관점서 오래전부터 연구를 거듭했다.

산스크리트를 전공한 언어학자 전순환 박사 역시 〈팔천송반야경〉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난 10년간 철저하면서도 신중한 번역과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은 한국 최초의 원전 완역이며, 세계에서는 에드워드 콘즈의 영어 번역과 가지야마 유이치의 일본어 번역 이후 세 번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연구성과 및 새롭게 발견된 사본 내용도 포함했다는 점에서는 세계 최초의 현대어 완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영어와 일어 두 번역서의 부족한 점을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번역상 오류도 바로잡은 이 번역서는 〈팔천송반야경〉의 결정판이자, 대승불교의 맥을 잇는 한국불교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반야부경전의 첫 번째 경전이자 대승불교 최초기 경전 중 하나인 〈팔천송반야경〉은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인 보살과 공(空)사상의 개념이 담겨 있다.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2천여 년 전에 성립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언어학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독일서 언어학으로 산스크리트를 전공한 전순환 박사는 이 경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정밀한 번역과 연구를 해왔다. 이 과정서 언어학자답게 〈팔천송반야경〉의 산스크리트 원전 텍스트 전부를 음절 단위로 쪼개어 어원을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을 마쳤다. 여기에는 미트라(Mitra)본, 오기하라(荻原)본, 바이댜(Vaidya)본 등, 현존하는 〈팔천송반야경〉의 산스크리트 사본 3종 모두를 비교 대조한 내용이 포함됐으며, 어원 분석만으로 어휘 사전 한 권이 나올 분량이다. 또한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의 영어 번역(1978)과 가지야마 유이치(梶山雄一)의 일본어 번역(1974)도 모두 검토한 후 오류를 찾아내어 수정 보완했다. 뿐만 아니라 1999년 간다라 지역(현 파키스탄 북서부에 위치한 바자우르)의 옛 불교사원 터에서 새롭게 발굴된 〈팔천송반야경〉 사본 일부분도 연구 번역해 추가시켰다. 이처럼 지난하고 방대한 연구 과정을 거쳐 탄생한 책이 〈산스크리트 원전 완역 팔천송반야경〉이다. 대승불교가 발아하는 시기와 맞물려 탄생한 〈팔천송반야경〉에는 이타적 인간상의 표본인 보살의 의의, 그리고 공성(空性)의 담론이 펼쳐진다. 하지만 전순환 박사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을 꼬집는다. 바로 ‘반야바라밀다’의 진정한 의미이다. 〈팔천송반야경〉서 수없이 반복되는 ‘반야바라밀다’라는 말은 보살과 공, 그 밖의 어떤 단어보다 많이 언급된다. 즉 〈팔천송반야경〉의 핵심 내용은 ‘반야바라밀다’에 있다는 뜻이다.

전순환 박사는 반야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쁘라즈냐(Prajna)를 설명할 때 이렇게 말한다. “팔천송반야경서 반야를 말할 때는 앞에 단어가 더 붙습니다. 바로 야타부탐(yathabhutam)입니다. 쁘라즈냐와 결합해서 해석하면 ‘사실 그대로 바라보는 것,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반야의 뜻이고 다른 말로는 진여지(眞如智)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라밀다는 흔히 완성(perfection)이라고 번역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개념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 상태’를 가리킵니다. 경전에서는 ‘극도(極度)’라고 표현합니다. 반야와 극도를 서로 맞물리면 극도의 진여지, 즉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상태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되고,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공사상도, 보살의 개념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기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같은 반야부경전에 속하는 〈금강경〉 〈반야심경〉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전들의 출발점이 〈팔천송반야경〉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와 공의 진의를 알려면 이 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를 통해 대승불교 이해에 깊이를 더하고, ‘범접할 수 없는 극도의 경지’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팔천송반야경〉은 기원 전후 100년 사이에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사본이 원형에 가깝고, 그 성립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태동하던 때와 같은 시대에 성립되었고, 최초의 반야부경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팔천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반야경’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초기 대승경전인 만큼 이 경전을 통해 반야 사상이 움트는 모습과 그 속에 잠재된 공사상을 엿볼 수 있다. 반야부경전 연구의 권위자인 가지야마 유이치와 에드워드 콘즈는 반야경의 발전 단계를 4기로 구분한 후 〈팔천송반야경〉을 1기에 자리매김했고, 모든 반야부경전의 원형으로 보았다. 후대 학자들도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받아들여 반야부경전을 연구하는 기본 문헌으로 〈팔천송반야경〉을 매우 중시한다. 당시 이 경전이 쓰였을 시기의 문자는 기원전 500년 이전부터 쓰였다고 전해지는 브라흐미(Brahmi)이고, 언어는 간다리어를 포함한 중세 인도어인 프라크리트의 여러 방언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론한다. 〈팔천송반야경〉이 반야부경전 뿐만 아니라 후대의 많은 대승경전 및 논서에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불교학은 물론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가치가 높은 문헌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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