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신 교수, 22일 신라학 국제심포지엄서 주장

불국사 전경 모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 불국사 건립의 사상적 기저로 〈법화경〉과 〈화엄경〉이 꾸준히 거론돼 왔다. 하지만, 불국사 건립 불사는 ‘석가모니 귀향설법’을 최고의 불교적 효행으로 보고 이를 건축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김대성의 효심과 원력이 담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동신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국립경주박물관이 8월 22일 ‘금성(金城)의 남산과 헤이죠쿄(平城京)의 동산(東山)-왕경주변의 산림사원에 대한 한일 비교’를 주제로 박물관 강당서 개최한 신라학 국제심포지엄서 이 같이 주장했다.

김대성 불교적 효행 원력 담겨
석존 귀향해 父王에 설법 일화
최고 불교 효행… 건축적 재현
唐 대명궁 등 中왕궁 건축 차용

경주 남산·헤이죠노 사원 비교
韓日 불교학자 10명 주제 발표

남동신 교수는 ‘불교적 이상세계로서의 불국사’에서 8세기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불국사가 왜, 무엇을, 어떻게 건립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고찰했다.

최고 권력자였던 대상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의 명복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빌고자 했고, 이를 위해 불교적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불국(佛國)’이라는 사명을 가진 사찰을 건립하게 됐다.
그렇다면 김대성은 어떤 사상을 근간해서 불교적 이상세계를 사바세계에 건축적으로 재현하고자 했을까. 남동신 교수는 ‘불국’의 의미를 역사상 실재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나라와 대승불교에 등장하는 시방삼세불의 나라로 구분했고, 이중 전자가 ‘불국’의 배경이 된다고 봤다.

전자의 나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국이자 부왕 정반왕이 다스리는 카필라성(Kapilavastu)으로 남동신 교수는 이를 배경으로 한 ‘석존의 귀향설법’에 주목했다.

석존의 귀향설법은 부처님이 정각 후 6년 뒤 정반왕의 요청으로 고향에 방문해 니그로다숲과 왕궁에서 석가족에게 설법한 일화이다. 문헌에 따라서 귀향 시기, 설법 내용, 장소 등은 들고남이 있지만 〈불본행집경〉 〈불소행찬〉 등 주요 불전문학, 이를 중국 승려들이 재구성한 〈석가보〉 〈석가씨보〉 등에 빠짐없이 나타난다. 이들 문헌은 김대성 당시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널리 유통됐다.

남동신 교수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불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사표다. 불자인 김대성이 현생 부모의 명복을 빌겠다고 발심했을 때 그가 택할 수 있는 최고의 불교적 효행은 ‘석존의 귀향설법’”이라며 “그가 구현하고자 한 불교적 이상세계는 바로 카필라성에서의 부처님의 설법으로 불국사는 이를 건축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처님의 고국 카필라성을 불국으로 본 김대성은 이를 당시 중국의 왕궁을 통해 건축적으로 재현하려 했다. 7~8세기 당시 인도 카필라성을 다녀왔던 현장의 〈대당서역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는 일대가 황폐해졌음을 알리고 있어 현실적으로 건축적 모델을 찾기 어려웠다. 남동신 교수는 불국사의 정면(Facade)를 통해 유추했을 때 중국 왕궁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장대한 대(臺)와 ‘출(出)’자형 포국(布局)을 살펴보면 수당대 황궁 건축을 대표하는 인수궁(구성궁)과 대명궁 함원전에서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면서 “세속적 왕궁 건축을 차용했지만 불교식으로 장엄하는 장치로서 백운교 앞에 있었던 연지가 있었다. 불국사의 건축물과 이것이 연지 수면에 비치게 함으로서 불국사는 청정한 불국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날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국과 일본 관련 학자 10명이 신라 왕경의 남산과 일본 헤이죠쿄 동산의 불교사원을 비교하는 연구 논문들을 발표했다.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신라시대 경주 남산불적의 의의’를 통해 남산이 불교의 성지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산신(山神)이 거처하는 영험한 곳이었음을 강조했다. 삼화령의 미륵불이 위치한 고갯마루는 토착신앙에서 장승의 위치와 같은 점, 그리고 차를 공양하는 날이 4월 초파일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명절인 삼짇날(3월 3일)이었던 점에 주목하며 “불교문화의 시대에도 기존의 토착신앙이 온존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차순철 서라벌문화재연구원 단장은 ‘남산불적의 조사상황’에서 남산을 불국토이자 만불산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불국토 남산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것”이라며 “곳곳에 석탑, 불상과 사원이 조성된 것은 귀족 자신이나 가족의 복을 비는 기복에 일환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밖에도 일본 측에서는 다나카 도시아키 前 시가현립대학 교수, 요시카와 신지 교토대학 교수, 후지오카 유타카 오사카대학 교수 등이 참석해 일본 산림사원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