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발고여락(拔苦與樂)

‘발고여락(拔苦與樂)’은 고통, 괴로움을 제거해(拔苦) 즐거움을 준다(與樂)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고통, 괴로움을 크게 여덟 가지로 구분, 정리한다. 그것을 흔히 ‘사고팔고(四苦八苦)’라고 하는데, ‘사고’는 생로병사 네 가지이고, ‘팔고’는 ‘사고’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음성고를 추가해서 ‘팔고’라고 한다.

팔고는 ‘인생 팔고’ 혹은 ‘인생의 팔대 고통’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여덟 가지 고통은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고통에 익숙해지는 방법 밖에 없다. 고통에 익숙해져서 시시한 고통은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다.

한 인생이 태어나는 것은 축복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생존이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생(生)은 40세에서 50세 정도까지 이어진다. 그 다음부터는 노(老)가 시작된다. 늙어가는 모습은 대체로 추하다. 30대까지는 아름답지만, 고상하게 늙는 사람이 드물다. 또 갖가지 병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국은 갖가지 병으로 고통을 겪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요즘은 60세 이후의 늙는 과정이 너무 길다. 중풍, 치매, 암 등 대부분 갖가지 질병으로 10년에서 20년 동안 고통을 겪다가 죽게 되는데, 이것을 보면 때론 슬프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저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다. 생로병사 사고 외에 네 가지 고통이 더 있다. 이 네 가지는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애별리고(愛別離苦)는 부모와 자식, 형제, 이성 등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을 말한다.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는 특별히 죽음이 오기 전에는 헤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떨어져 사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성 간의 이별이나 헤어짐은 많고 괴로움도 크다. 요즘은 쿨하게 잘도 헤어지지만, 예전에는 심각했다. 둘이서는 매우 좋아했는데, 어떤 일로 인해 부득이 헤어져야 할 경우 때로는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은 부모의 반대도 말뿐이고, 설사 반대가 있다 해도 의사 표시 정도에서 끝나지만 과거에는 부모의 반대도 심했고, 또 부모가 반대하면 결혼하기가 쉽지 않았다. 효도와 사랑 사이의 딜레마는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어서 더러는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사(死)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의 비극적인 동반 자살 사건이 그런 경우이다. 그 밖에도 저런 환경적인 요인으로 자의와는 달리 헤어지게 되는 일이 많았다.

원증회고(怨憎會苦)는 싫어하는 사람, 보기 싫은 사람과 만나야 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이것은 주로 직장에서 많이 겪는 일인데, 상사나 사장이 보기 싫다고 사표를 낼 수도 없고, 보기 싫지만 하는 수 없이 보아야 한다. 매일 같이 만나게 되는 것이 직장 상사나 동료인데, 보기 싫은 것, 이것이 원증회고이다.

구부득고(求不得苦)는 갖고 싶은 물건을 마음대로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샤넬 가방이나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 가방을 갖고 싶은데, 경제력이 부족해서 살 수 없을 때 비애를 겪는다. 특히 옆집 사람은 갖고 있는데 나의 현실은 그럴 수 없을 때 비애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상대적인 비애라고 할 수 있다.

오음성고(五陰盛苦)의 오음은 색수상행식 오온을 가리킨다. 오온을 정리하면 곧 육체와 정신이다. 즉 정신적, 육체적으로 욕망이 매우 많은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고가품이나 명품에 대한 욕구, 이성에 대한 욕구 등 욕구와 욕망 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서 겪는 괴로움이다.

이 여덟 가지 고통, 괴로움은 사람에 따라서, 또는 관심도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적절하게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 현실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은 대부분 이 여덟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팔고(八苦)가 생기는 원인은 ‘욕심(慾心)’, ‘욕망’이 많기 때문이다.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발고여락은 〈대지도론〉에 있는 사자성어다. 불보살님이 ‘중생들의 괴로움을 뽑아 없애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 발고여락인데, 자비가 곧 발고여락(拔苦與樂)이다. 자(慈)는 ‘즐거움을 준다(慈能與樂)’는 뜻이고, 비(悲)는 ‘괴로움을 없애준다(悲能拔苦)’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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