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은 내담자의 문제해결과 성장을 조력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상담자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상담은 오묘한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상담자는 전문성과 성숙된 의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건강한 인성을 갖춰야 한다.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명상을 만나며 삶이 안정되고 기쁨이 깊어지면서 내면이 밝아졌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말씀은 곧 상담이요 불교가 바로 명상임이 명료해졌다.

상담과 명상은 내면의 세계라는 같은 곳을 향하지만 상담은 자기를 강화하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개인주의의 경향이 강해지지만 명상은 자기를 소멸함으로써 개인을 넘어 세상을 밝게 한다는 점이 다르다.

부처님은 조건 지어진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빠르게 변하는 본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현상을 확연히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면 고통도 괴로움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대상에 연연함으로써 눈앞에 지나가는 새로운 현실을 놓치게 한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현재 순간에 존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부처님은 내담자를 치유하는 탁월한 상담자였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도벽문제로 부처님을 찾아왔다.

청년은 마음은 훔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몸은 이미 길들여져서 보이기만 하면 훔치게 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이에 부처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훔쳐라, 그러나 알고 훔쳐라라고 훔치는 상황에 직면하도록 했다. 청년은 훔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갔지만 훔쳐라라는 한 마디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 알고 훔쳐라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인가? 청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부처님의 말씀에 당황했으나 깨달은 분의 말씀인지라 그 말씀을 화두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손이 다른 사람의 물건 쪽으로 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자신이 물건을 훔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손을 멈추며 알고 훔쳐라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자신의 행위를 바라보고 알아차리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자신의 도벽행위를 멈추었다.

이러한 문제를 일반상담에서는 어떻게 할까? 대체로 내담자의 발달사를 통해 도벽성의 원인을 탐색하고, 바람직한 행동대안을 찾아 생활에 적용해 보아 행동이 변화될 때 해결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부처님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고 하셨듯이 사람의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셨다.

부처님은 늘 사람들은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자신의 실체를 관계적 존재로 이해함으로써 스스로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서 느끼는 것은 불교가 참된 평화를 이루려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상담은 남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이루려는 기본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록 세상의 중심이 개인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이 세상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평화로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부처님은 위대한 상담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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