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오지 마을서 있던 일화
곤궁한 시기 온 마을주민 굶어
참깨 수확 후에는 여유 생겨나
주민들 스님 공양 올리고 축제

스님들 세 숟가락만 음식 가져가
마을 노인·어른들도 세 숟가락만
남은 공양물 모두 아이들 차지

‘낮고 약한 곳으로 돌아가야’란
믿음으로 그들은 자신을 인내해

며칠 전 국제구호단체인 더프라미스 상임이사 묘장 스님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모셨다. 스님께서 국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국가를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들려주었는데 깊은 감동을 받은 이야기가 있었다.

미얀마 마궤이 낫마욱 오보마을에서의 일이다. 이 지역에서 더프라미스 직원들과 함께 약 3년 간 지역개발과 교육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던 묘장 스님은 마을의 큰 사찰에서 한동안 머물렀는데, 하필 그 마을이 지독한 참깨고개를 겪고 있던 시절이었단다. 참깨고개는 우리의 보릿고개를 떠올리면서 묘장 스님이 지어낸 말이다. 보릿고개 같은 지독한 춘궁기를 주민 모두가 겪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시주로 공양을 해야 하는 스님들에게는 그 굶주림이 더 혹독했다. 단 몇 숟가락의 밥만으로 하루를 견뎌야 했는데, 이는 스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곳 스님들과 똑같이 아주 적은 식사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느라 너무나 힘들었단다.

그러다 참깨를 수확하고 이를 팔면 온 마을에 여유가 생겨난다. 마을 주민들은 가장 먼저 스님들을 공양하는데, 몇 달 동안 전혀 먹어보지 못한 맛좋은 음식들이 커다란 접시에 수북하게 담겨 사찰로 전해진다. 묘장 스님은 이렇게 고백했다.

정말 기대가 컸어요. 이제야 밥다운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지요.”

주민들은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들을 법랍 순으로 스님들에게 올렸다. 그런데 사찰에서 가장 높은 스님이 딱 세 숟가락만 덜고는 그릇을 물리는 게 아닌가. 그 아래 스님도 딱 세 숟가락만큼만 음식을 덜었고, 맛있는 음식이 여전히 수북한 접시들이 한국의 묘장 스님 앞으로 왔을 때 스님도 양껏 먹겠다는 생각을 접고 눈치를 보며 세 숟가락만큼만 덜었다. 그 다음 스님도, 그 다음 스님도. 그 사찰의 모든 스님이 딱 세 숟가락만 음식을 덜었고 접시의 음식은 거의 그대로인 채 마을의 연장자들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인들 역시 모두 세 숟가락만큼만 음식을 덜었다. 이어서 그 사찰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세 숟가락만을 덜었다.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풍성한 음식들을 아끼는 광경을 지켜본 묘장 스님은 의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릇에 거의 그대로 남겨진 음식들의 종착지를 보고 스님은 아하하고 무릎을 쳤다.

그곳에는 마을 아이들이 있었다. 스님은 말했다. “그 많은 음식들을 아이들 앞에 다 풀어놓은 거예요.”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온 수북한 음식접시를 받고서 원 없이 맘껏 먹었단다. 스님들과 어른들은 아이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을 위해 그 혹독한 굶주림 끝에 찾아온 달디 단 음식조차도 세 숟가락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조절했던 것이다.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분명 확고한 믿음이 있었으리라. 소중한 것은 흐르고 흘러 가장 낮고 약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 그 원칙을 지켜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각오, 조상 대대로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힘들어도 함께 견뎌낼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이들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모진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기적은 바로 이런 믿음과 실행 끝에 찾아오는 것 아닐까.

어차피 세상에 빈부의 차이가 없을 수 없다면, 그래서 귀천의 차별도 당연히 생겨나게 마련이라면 생각을 좀 돌려보는 것도 필요하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제 앞으로 찾아온 이익을 남에게 돌릴 기회와 힘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이란 세상이 굶주렸는데 자기 밥상만 풍성한들 그 밥이 달고 맛좋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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