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징 릭돌

왼쪽부터 텐징 릭돌(1982~), 텐징 릭돌 저작 〈우리 땅, 우리 민족 Our Land, Our People, 2011〉. 텐징 릭돌, 〈나의 세계는 당신들 눈의 맹점에 있다 My world is in Your Blind-spot, 2014〉 시리즈 5 개 중 하나. 우리 땅 우리민족 작품 의 티벳에서 공수해 온 흙을 만지는 티벳인들의 모습이 애잔하다.

긴 머리칼을 뒤로 묶은 한 청년과 그의 동료들이 수많은 흙 포대를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그 흙은 마침내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북인도 다람살라의 한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농구장 크기만한 네모꼴로 그 옮겨진 흙들이 정성스럽게 깔렸다.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승려들도 합장을 한 채 줄지어 조용히 걸어왔다. 어린 아이들은 생소한 정경을 보며 신기한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는다.

세월의 흔적이 주름으로 깊게 패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꿇어앉아 연신 흙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한다. 한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쭈그리고 않아 아이들 손에 그 흙을 쥐어 주고는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 이야기한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때아닌 흙장난에 신이 난 듯 뛰어다니고, 어떤 아이는 흙으로 조그만 그릇을 빚어 보여 주기도 한다.

티벳 난민 2세대 작가의 정체성
2002년 미국서 새 시각 선보여

뉴욕에 거주하는 티벳 난민 2세로, 평단에 널리 알려진 신진 작가 텐징 릭돌(Tenzing Rigdol, 1982~)은 작고한 선친을 위해 작업을 구상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문화혁명이 시작되었던 1966년 12세 때 고국인 티벳을 떠나 네팔로 이주하였는데, 그 이후 두 번 다시 티벳 땅을 밟지 못했다.

2009년 암 진단을 받은 작가의 아버지는 투병 끝에 머나먼 타국 땅,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버님은 연로하신 할머니를 등에 업고 45일간 히말라야를 가로질러 네팔까지 가셨다고 해요.”

텐징은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다른 수많은 티벳 망명자들처럼 임종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했고, 고향 땅의 흙을 밟아보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텐징 릭돌은 티벳의 흙을 티벳 난민들에게 보여 주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로서 하나의 설치 작업이기도 하면서, 또한 선친과 같은 티벳 난민들에 대한 ‘헌정’이었다. 이 가슴 먹먹한 작품이 〈우리 땅, 우리 민족 Our Land, Our People, 2011〉이다.

이 작업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고, 과정은 더 어려웠다. 현지 주민들이 중국 당국에 의해 박해 받을 것을 염려하여 ‘티벳 안의 어느 깊은 장소(deep inside Tibet)’라고만 지칭한 곳에서 20톤의 흙을 채취했다. 인도의 다람살라에 도달하기까지 이 여정은 트럭으로 티벳-네팔-인도 3개국의 국경을 지나며, 50개의 검문소를 통과하는 2000km의 험난한 길이었고 총 17개월이 소요됐다. 애초부터 정상적인 출입국 절차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중국의 감시를 피해 엄청난 양의 흙을 반출하는 과정은 마치 티벳 난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국경을 탈출하는 것과도 흡사했다. 텐징 릭돌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자신의 아버지가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걸어온 길과도 같았다.

마침내 20톤의 흙은 다람살라에 도착했고, 3일간 진행된 전시에서 망명지의 티벳 노인들은 자신들의 생애에는 다시 밟아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고향의 흙을 손으로 만지고, 그 위를 걸어 다니고, 또 기도하며, 눈물 어린 회상과 감격에 젖어 들었다. 철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마냥 천진하게 뛰어 놀며 흙장난을 했다.

릭돌은 “많은 난민들과 이야기를 했어요. 그들은 고향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했지요. 그래서 고향에서 온 흙을 만지면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어요”라고 회상한다.

티벳 출신으로 불교적 소재를 통해 예술 세계를 펼치는 현대 예술가로는 텐징 릭돌 뿐 아니라 곤카르 갸초 등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이 있다. 곤카르 갸초는 티벳의 라사에서 태어나 조국을 떠난 1세대 난민 작가에 속한다면, 텐징 릭돌은 1세대인 부모가 해외로 이주한 후 태어나고 성장한 2세대 작가다.

텐징 릭돌은 1982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그 이후 북인도의 다람살라로 건너갔는데, 여기서 그는 아버지를 따라 티벳 양탄자 만드는 일을 익혔고, 전통 불화인 ‘탕카’ 와 티벳 만다라 제작을 배웠다.

2002년 그의 가족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으로 건너간다. 릭돌은 거기서 서양 미술을 접하게 되었지만, 먼저 자신의 전통문화에 기반한 예술을 좀더 깊이 체득하고자, 다시 네팔 카트만두에서 정식으로 탕카 예술학교 과정을 이수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5년 콜로라도 덴버대학에서 미술사 및 순수 미술 분야의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미국 뉴욕에 거주하면서 드로잉, 회화, 사진, 설치 그리고 비디오 작업 등 여러 작품들을 제작하며 평단들의 이목을 끌고 차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신진 작가들의 경우, 딱히 대표작이라 일컬을 만한 작품을 선정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꽤 알려진 신진작가라 하더라도, 화단의 평가 또한 다양하며 일치된 견해는 없다. 텐징 릭돌 역시 그러하지만, 그 중 비교적 최근 회화 작품인 〈나의 세계는 당신들 눈의 맹점에 있다 My world is in Your Blind-spot, 2014〉 시리즈는 눈길을 끈다.

연꽃문양을 비롯한 몇 가지 다양한 패턴을 바탕으로 선명한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 시리즈 중 한 작품은 우리가 보기에는 시각적으로 매우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바리때를 왼손에 받쳐 들고 승려의 법의(法衣)를 두른 부처님의 품세 그 자체는 참으로 평정하고 고요하지만, 그 가슴과 얼굴의 흑암 속에서는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이 가득하다.

부처가 들고 있는 그릇은 빌어서 얻어먹는 걸식(乞食)과 연관된다. 릭돌은 “이 구걸하는 그릇의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자아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구걸할 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바탕은 티벳어로 깨알같이 경구를 새긴 천이다. 히말라야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다르촉이나 룽따에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경구가 바람에 실려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또 온 우주법계의 무량중생들에게 전해져, 청정한 자성을 밝히고 불도를 성취하기를 염원하는 룽따의 역할처럼, 그림의 바탕은 하나의 간절한 기도인 것이다.

부처는 평화롭고 명상적이지만, 파괴와 죽음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는 티벳의 전통적 불교 이미지를 해체하여 배경과 부처의 형상을 또 다른 상징의 방식으로 대체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반드시 한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러 가지, 때로는 모순되는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릭돌의 ‘해체주의적(deconstructed)’ 작업에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의 사상적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세계는 당신들 눈의 맹점에 있다 My world is in Your Blind-spot, 2014〉 시리즈에서 나타난 부처의 이미지와 그 의미는 끝없는 ‘차이(différance)’?로 제시될 뿐이다.

어떤 평론가는 여기서 개별적 자아를 초월한 ‘자기희생’과 ‘자비’의 심상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는 억압된 티벳의 현실과 관련된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읽기도 한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2009년 2월 27일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스스로 분신하여 죽어간 155명 티벳인들의 절규를 직접적으로 지시한다. 박제화되고 진부한 클리셰와 같은 오늘날의 여타 팝 아트 작품들에 비하면, 릭돌의 작품은 팝 아트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보는 이들에게 보다 강렬하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는 저 불길은 사라지는 티벳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의 절규이며, 타국의 압제에 대한 노여움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들의 맹점’이라는 제목은 엄연히 존재하는 파괴적 현실에 대한 세계인들의 무관심을 일깨우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라지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사라진다는 것은 단지 슬픈 일이고,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까? 사라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사라진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 미세하게 스며들어 있기에, 흔히는 드러내 놓고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이나 체제의 힘보다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 삶과 연결되어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사라짐’에 대한 깊은 사유는 릭돌의 작품세계와 근원적으로 맞닿아 있다. 현대인의 공허를 꿰뚫어 본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자신의 사라짐의 기초 위에서 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만약 사물을 정말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라짐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 그보다 더 나은 분석틀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2013년 한 인터뷰에서 릭돌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진솔함에서 나오는 것이고, 솔직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중심적으로 된다는 것과 같다. 자아가 자기 중심적으로 된다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분석해 본다면, (나의) 자아가 티벳에서 일어난 일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당신은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자, 당신이 그러한 자아를 지켜본다면, 그리고 분석해 본다면, 나의 부모들, 조부모들 그리고 수 천 년의 전통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솔직해진다는 것은 그러한 생각들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릭돌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사라지는 것들과 사라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오래도록 사색하게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가 욕망하는 세계와 실재 세계의 진면목을 바라보도록 이끈다.

난민 2세인 작가 텐징 릭돌은 흙을 가지러 자기 아버지의 땅에 들어간 기억 외에는 티벳에 들어간 적도 없고, 살아 본 기억도 없다. 망명지 다람살라의 어린 꼬마 아이가 엄마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슬픔과 기쁨을 대신하여 티벳의 흙에 감사하듯, 작가 텐징 릭돌 또한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수십만 명의 티벳 난민들이 울리는 소리에 공명하는 작은 소리굽쇠 인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은 서로의 또 다른 모습이다. 릭돌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오고 가는 기쁨과 슬픔을 바라보며 오직 텅 비어 있을 때 비로소 울리는 균형의 세계에 대해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대의 기쁨이란 가면을 벗은 바로 그대의 슬픔,

웃음이 퍼지던 바로 그 눈가에 때론 눈물이 채워진다.

슬픔이 그대 안으로 깊이 파고 들수록 그대의 기쁨은 더욱 커지리라.

그렇지 않겠는가.

도공의 가마에서 구워진 그 잔이 바로 그대의 포도주를 담는 잔이 아닌가?

칼로 후벼 파낸 그 나무가 그대의 영혼을 달래는 피리가 아닌가?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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