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깃발과 마음의 차이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인가?

얼마 전에 원고 하나를 끝냈다. 대략 6백 매쯤 되는 분량이었는데, 초고를 마무리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지난 4월달쯤에 말로만 듣던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수십년 동안 정리해뒀던 모든 한글 원고가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준비하던 수많은 원고들이 증발했다. 백업을 해 놓은 외장하드마저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어 함께 오유(烏有)로 돌아갔다. 파일을 망쳐 돈을 뜯어낸 뒤 복구해주는 해커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그런 일이 내게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금강석 보다 든든한 파수꾼
공자도 행복지름길로 일러
양심의 시대 다시 회복하자

너무나 중요한 원고가 많아 어떡하든 복구할 방법을 찾았는데,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해커를 찾아 몇백 만 원의 현찰을 지불하면 백신을 받을 수 있다지만, 가능성은 반반이고,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며 포기하라는 충고만 들었다. 결국 나는 기왕의 원고는 다 날렸고, 쓰던 원고는 다시 원점에 써야 했다.

그런 일을 당하니, 날벼락이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양심(良心)의 문제가 떠올랐다. 그 해커는 그 일도 일종의 직업이라 생각하며 남의 파일을 망가뜨렸을 것이다. 피땀 흘려 배운 기술로 벌어들인 정당한 대가라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일말의 배려가 없었다면-대가만 지불하면 원상복구해주니 금전적인 피해 외에 당한 사람도 별 손해는 없다고 자위했겠지만- 그런 불법적인 행동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십 년 쌓아둔 원고를 날리는 대재앙을 당했고, 그 누군지 알 수 없는 해커는 일 원 한 장 손에 넣지 못했다. 다시 원고를 쓰면서 글이 잘 안 나갈 때마다 내 가슴 한켠에서는 그 해커에 대한 증오심이 활활 불타올랐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그 해커가 살아생전에 지옥불에 떨어져 지글지글 온몸이 튀겨지라고 저주를 퍼부었다.(오, 부처님, 나무아미타불!)

다마호사(多魔好事)(?)라고 그 낭패를 당한 뒤부터는 철저하게 원고를 백업 받는 버릇이 생기긴 했다. 너무 강박적으로 백업을 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긴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글을 쓰시는 분이 있다면 백업은 철저하게 하시기를 바란다.

얘기가 한참 빗나갔는데, 내가 마무리한 원고는 고려 왕조가 망했을 때 절의(節義)를 지켜 은둔했던 한 사람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이었다.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 ?-?)라는 분인데, 그는 과거에 합격하고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라는 관직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가 망하자 뜻을 함께 한 동지들과 함께 개성 근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 모두 72사람이 동참해서 ‘두문동 72현(賢)’으로 불린다.

민안부 선생은 두문동을 거쳐 원주에 있던 변혁사(變革祠)로 갔다가 다시 지리산 배록동(排祿洞)에 잠시 머문 뒤 경남 산청(당시는 산음[山陰])군에 정착해 은둔의 일생을 보냈다. 소처럼 여생을 농사만 지으면서 살았고, 보름과 그믐이면 산에 올라 개성을 바라보며 추모의 정을 되새겼다고 한다.

이 분에 관한 기록은 지금까지 말한 것이 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직접 쓴 글도 온전한 것은 시 한 편이 전부다. 5언절구의 아주 짧은 작품이다.

옳지 못한 부귀란, 不義之富貴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네. 於我如浮雲

돌밭에 왕씨의 봄이 있으니 石田王春在

호미 들고 아침저녁으로 김매리라. 携鋤朝暮耘

농은 선생이 이 시를 지을 때의 심정이 글을 쓰면서 한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허리를 숙여 조선 왕조에 귀의했다면 풍족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후손들도 복록을 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한때의 편안한 길을 따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양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헛된 명예나 푼돈 얼마에 팔기에 그에게는 양심이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다. 그래서 농은 선생은 6백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마음을 울리는 ‘참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념인가? 망상인가?

고대 이집트인들은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역설했다는데, 사람이 “양심의 인도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란다. 또 힌두교 신자들은 양심을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으로 생각했단다.(다음 백과사전 ‘양심’편에서 인용)

우리는 늘 양심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양심 앞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양심이 밥 먹여주냐?”는 씁쓸한 항변이 있는 것처럼 양심을 지키고 살면 사는 게 몹시 피곤해지는 게 우울한 현실이다. 당장 양심을 꺾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한다면 물질적인 부귀와 정신적인 찬사가 내 집의 곡식창고와 마음창고를 가득 채운다. 이 유혹에서 누가 완전히 자유로울까?

그러나 때로 역사를 살피노라면,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그 양심을 위해 많은 이익을 심지어 목숨까지 버린 사람들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그런 현실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가정이라 해도 내가 과연 양심을 지키고 고난을 감내하기보다는 양심을 버리고 한때의 행복에 몸을 던질 듯하기에 그런 분들이 소중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어진다.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코끼리 부대, 기마 부대, 전차 부대, 보병 부대의 네 부대가 자신을 둘러싼다 하여도 자기를 보호한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안으로 보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과 입과 뜻이 착하면 비록 네 부대가 없어도 자기를 보호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안으로 보호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보호하는 것이 밖으로 보호하는 것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진영 엮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구절〉 43쪽, 불광출판사, 2019)

이 말씀은 〈별역잡아함경〉 제3권에 실려있다고 한다.

이 말씀에서 부처님은 자신을 위험에서 구할 진실한 무기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코끼리, 기마, 전차, 보병 부대가 나를 겹겹이 에워싸도 그것이 진정한 호신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몸을 지키는 것이지 마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돌파력은 무소부지(無所不至)다. 천군만마가 철옹성을 쌓아도 마음이 무너지면 그것은 허깨비도 되지 못한다.

부처님이 열거한 ‘몸과 입과 뜻’이 착하다는 것은 바로 ‘착한 양심’을 달리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나를 지키는 가장 큰 방패는 돈으로 처바른 경호원도 아니고, 괴성을 지르며 지지하는 한 줌의 무지한 군중도 아니다. 금강석보다 단단한 양심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파수꾼임을 부처님은 일깨우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타고난 마물(魔物)이 아닌 다음에야 양심이 울리는 준엄한 질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나 상황을 들어 핑계를 대고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의 일화에 보면 깃발과 바람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두 스님이 찰간대에서 펄릭이는 깃발을 보면서 한 사람은 바람이 부는 것이라 했고, 한 사람은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라면서 서로 다투었다. 이를 들은 혜능이 ‘흔들리는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이라고, 벼락같은 진실을 일러주었다.

이처럼 우리는 양심이 흔들리거나 유혹에 굴복하고 싶을 때 흔들리는 것은 양심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양심을 잃으면 두려움에 빠지고, 내 내면의 신(神)을 배신하는 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 술이편(述而篇)에서 이런 말을 했다.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구나. 옳지 못한 일을 하고서 부유해지거나 고귀한 자리에 오르는 일은 나에게는 하늘의 뜬구름과 같을 뿐이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앞서 읽은 민안부 선생의 시가 보여준 양심의 갈파도 공자의 이 말에서 울려나온 것이다. 도의를 저버린 부귀영화보다는 양심을 지킨 가난이 더욱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뜻이 새겨진 말이다.

맹자(孟子)는 양심이라 직접 가리키지는 않았지만,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는 말을 썼다. 인간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왕이 희생으로 쓰일 소의 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차마 죽이지 못해 양으로 대신했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소나 양이나 목숨은 다 소중한데, 바꾸었다고 무슨 차이일까? 그런 의문에 맹자는 소의 울음소리는 들었기 때문에 불인지심이 발동했지만, 양의 울음소리는 듣지 못해 일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라 불리는 사단(四端)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 양심에 어그러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갈파했다.

그들이 팔고 있는 것은 양심이다

자신이 어려움에 놓여야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들 한다. 잘 나갈 때면 다들 그 혜택의 단물을 핥고자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단언한다. 그러나 좌절에 빠지고 위기에 허덕일 때 대개 입으로만 우정을 말하던 친구는 등을 돌린다.

지금 우리나라는 아무리 미사여구로 꾸민데도 위기에 빠져 있다. 그 위기를 이겨내고자 모든 사람이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한 길로 나가기 위해 신발끈을 다시 단단히 동여매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사람들이 뇌까리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다 못해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

엄마부대 대표라는 사람과 전 서울대 교수라는 이, 그리고 광기의 발언을 서슴없이 토해내는 개신교 목사들. 자민당 정권의 아베 총리가 내짖는 단말마의 비명은 집안 대대로 양심을 팔아먹은 내력을 가졌으니 그러려니 싶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이들은, 사람으로서 양심을 내팽개쳤고, 학자로서 양심에 비수를 찔렀으며, 신앙인으로 양심을 사탄과 바꾸어버린 듯하다. 이들의 표정과 말에서 악마의 얼굴을 읽은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새삼 내 양심의 실존을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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