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을 하는 김씨의 모임은 10년이 넘었다. 얼마 전, 김씨는 모임에 일찍 가서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도반이 노보살님 아들이 많이 아프대요. 그래서 이번에 아들 이름으로 간식 보시금을 올리신 모양이에요한다. 70대인 노보살님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넉넉지 않게 사시면서도 항상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었다. 김씨는 문득, 아들 이름으로 간식 보시금을 올렸다니 안 그래도 형편이 힘드실 텐데하는 마음이 들었다. 본인 무릎도 불편한데 봉사를 다니시는 노보살님을 생각하면, 참 저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이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갑자기, 오늘이 연회비를 내는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봉사를 위한 보시금 외에, 모임 유지를 위해서 1년마다 회비를 걷고 있다.

연회비 10만원이 노보살님에게는 적지 않은 돈일 것이다. 김씨는 대신 내드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그런데 보살님의 강직한 성품에 회비를 누가 대신 내는 것을 좋아할 리 만무했다. 김씨는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총무와 작전을 짰다. 노보살님이 도착하자 총무는 보살님, 오늘 절에 가서 어떤 분을 만났는데요. 자기한테 좋은 일이 생겼다고, 우리 봉사모임의 어르신께 공양금을 드리고 싶대요. 절대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고, 부모님 생각이 나서 맛있는 거 드시라고요. 좋은 일이라니까 축하로 받아주셔야 돼요라고 했다.

노보살님은 웃으며 좋은 일이라니, 부담 없이 받아도 되겠네요. 그럼 그걸 회비로 낼게요라고 한다. 김씨는 마음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좋았다. 그런데 사실 김씨도 넉넉한 가정이 아니었다. 매일 가계부를 쓰며 절약하는 김씨는 귀갓길에 이번 달 씀씀이를 10만원 줄여야겠구나생각하면서 돌아왔다. 돈 들어가는 게 뻔한데 어디서 줄일까 고민하면서.

집에 도착하니 대학생 딸이 환하게 웃는다. “엄마, 대박이에요! 오늘 알바하는 가게 사장님이 글쎄, 보너스를 다 주셨어요! 자기 아들한테 엄청 좋은 일이 있다나. 그래서 축하로 쏘시는 거래요. 그냥 생겼으니 엄마 드릴게요.” 딸이 신나서 파란 봉투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10만원이 들어있었다.

돈이 제일이고 자기만 생각하는 세상에서, 남의 어려움을 한번 헤아려 보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김씨는 자신도 넉넉지 않지만 노보살님을 위해 진심으로 마음을 내었다. 그 마음이 어디론가 통해서 뜻밖에도 다시 딸을 통해 돌아왔다. 돈이 아니라 남을 생각한 그 마음이 돌아온 것이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저도 절에 다니기 전에는 인색한 사람이었어요. 나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남을 돕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인과법을 알고 보니, 마음을 잘 쓰며 살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봉사를 다니게 되었어요. 이제 보니, 자기도 아껴 쓰면서 남을 돕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황수경 동국대 겸임교수

김씨는 봉사를 다닌 후부터, 무엇보다 자녀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이 좋아진 것이 감사하다고 한다.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자식교육이 잘 되어 행복하다고 한다. 어느 스님께서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마침내 온 우주와 함께 하는 한마음인 것이다라고 하신 법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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