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이해의 길 8

연기는 불교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철학적 사유다. 모든 것은 홀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붓다의 통찰이다. 이러한 연기의 진리가 모든 존재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이를 인간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한 것이 바로 12연기다.

‘무엇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늙고 죽는 것이 있을까?’

싯다르타를 출가로 이끈 근본적인 문제의식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죽기 마련이다. 이러한 생로병사의 과정을 불교에서는 ‘고(苦)’라는 한 글자로 압축해서 설명하였다. 12연기는 ‘생로병사는 과연 무엇으로 말미암아(緣) 일어나는(起) 것일까?’에 대한 실존적 해답이다.

12연기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근본불교의 입장에 따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삶에 비추어 설명하고자 한다. 이는 12지(支)라고도 불리는데,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가 그것이다. 이 12가지 고리가 서로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인간의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고통을 일으키는 연결고리를 정확히 파악해서 끊어내는 것이 12연기의 목적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1)앞의 둘인 무명과 행, 2)중간의 식(識)에서 유(有)까지 여덟 개, 3)마지막 둘인 생과 노사로 나누어 살펴볼까 한다. 먼저 모든 괴로움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을 무명이라 했다. 이는 글자 그대로 밝음(明)이 없는(無), 즉 어두운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것이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명으로 말미암아(緣) 일으키는 모든 행위가 두 번째인 행(行)이다. 우리가 몸(身)과 입(口), 마음(意)으로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그로 인한 에너지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다음의 행위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 모든 과정을 업(業)이라 한다. 예컨대 접촉사고를 낸 후 속상한 마음에 친구와 술 한 잔 마시다가 옆 사람과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연행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동차 사고의 영향력(業)이 잠재해 있다가 더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세 번째 식(識)부터 열 번째 유(有)까지는 대상과 만나면서 업을 짓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먼저 식은 눈, 귀, 코, 입, 몸과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행위다. 그런데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네 번째 명색(名色)이다. 여기에서 명은 정신적인 것이며, 색은 물질적인 대상을 가리킨다. 다섯 번째 육입(六入)은 앞서 언급한 눈, 귀, 코 등의 감각기관이다. 이 인식주체가 객관대상과 만나는 것이 여섯 번째 촉(觸)이다. 그리고 대상과 만나면서 받게 되는 느낌이 일곱 번째 수(受)이며,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서 좋다거나 싫다는 느낌이 강해지는 단계가 여덟 번째 애(愛)이다. 대상과 만나면서 좋은 것은 갖고 싶고, 싫은 것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심해지는 경우다. 이러한 애착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홉 번째 취(取)이다.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도둑질이나 폭행 등으로 나타나는 단계다. 열 번째 유(有)는 이러한 행위는 사라지지만, 그로 인한 에너지가 무의식 속에 영향력으로 남아있는 단계다. 잠재된 에너지는 반드시 다음 행위에 영향을 주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업보가 바로 이것이다.

열한 번째 생(生)은 잠재된 에너지가 우리가 말하거나 행동할 때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 열두 번째는 노사(老死)인데, 단순히 늙고 죽음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걱정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괴로움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인간의 고통을 일으키는 12가지 고리들이 어떤 과정으로 작동하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이것이 곧 중생들의 윤회하는 삶의 모습이다. 삶이 괴롭다는 문제의식이 있을 때 비로소 벗어나는 길도 보이는 법이다. 불교의 목적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離苦得樂) 데 있다. 12연기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그 원인부터 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실타래가 다음 호에서 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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