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후회하는 그녀에게

한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기욤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예순 살의 남자가 시간여행으로 서른 살의 자신을 만나서 평생 후회하는 과거의 한 순간을 바꾸는 이야기이다.

시간과 사랑에 대한 이 소설은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나의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
인생은 복잡한 인과의 실타래
현재 머물며 계속 온힘 다하자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면서,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면서 살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은 더없이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치면서, 한편 불안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현재에 흘러간 과거를 변명의 핑계로 삼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엘리엇은 명망 있는 외과의사로 성실한 삶을 살아왔지만 한 가지 떨쳐버릴 수 없는 회한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연인을 사고로부터 구해내지 못한 것이다.

30년 전 연인 일리나가 크리스마스 날 꼭 보기로 약속한 엘리엇을 만나러 4천 km나 떨어진 곳에서 날아오지만 의사 엘리엇은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느라 일리나의 마중의 못 가게 된다. 화가 난 일리나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다. 그리고 그 날 일리나는 자신이 수의사로 일하는 수족관으로 가서 범고래를 돌보던 중 범고래에 치여 숨지고 만다.

폐암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 60대의 된 엘리엇은, 30년 전의 그녀 일리나가 더욱 그리워진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신비의 노인으로부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을 얻게 된 엘리나는 과거로 가는 기회를 선택한다. 깊은 잠에 빠지면서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 엘리엇은 과거의 자신과 일리나를 만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미래를 함께 할 수는 없다. 엘리엇에는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이 있다. 만약 일리나를 살려 자신과 함께 하게 되면 지금의 딸, 소중한 앤지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고민하던 엘리엇은 결국 일리나를 살린 후 미래의 딸 앤지를 위해 일리나와 헤어진다.

기욤 뮈소는 이 소설에서 시간의 장벽을 통과하여 인생을 다시 선택하는 인간을 그려 보인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본 사람이라면 ‘시간여행’을 실제로 경험하는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하며 각자의 시간여행을 해보게 될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친구의 고백

영화를 보고 친구 몇몇이 모여 과거로 돌아가 단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로 대화를 나눴다.

아예 태어나지 않겠다는 염세주의부터, 남편과의 소개팅에서 애프터신청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족집게 개선까지 있었다. 스무 살 여대생으로 돌아가 지금과는 다른 멋진 인생의 설계도를 다시 그리겠다는 리셋 형도 있었다.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고 10년 만에 이혼해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버텨온 친구는 자주 과거를 바꾸는 상상을 해본다고 고백했다.

35년 전 초가을의 어느날 그녀는 남도 항구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기로 결심했다. 군복무 중이었던 남자친구는 그녀가 입대 1년 만에 면회를 간 그날 하필 서울로 특별휴가를 나가 있었다.

“그 날 남자친구를 부대에서 면회하고 왔으면 그렇게 절실하진 않았을 거야. 부대에서 신작로까지 한참 걸어 나오던 한적한 시골길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많이 슬프고 외로웠어, 서울행 기차를 타고 곧장 돌아오면서 그날 반드시 그를 만나야만 할 것 같았어. 왕복 열 시간 넘게 혼자 기차여행을 하면서 그리움이 커져갔고 그 사람이 아주 소중하다는 느낌을 가졌지. 그 갈망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고 뒷날 그 시간을 돌이키곤 했지.”

서울로 돌아와 그날 밤 연락이 닿은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 남자와 미래를 함께 하는 인생 최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녀는 가끔 상상한다. 그 때 항구로 가는 기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집으로 돌아와서 애타게 그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삶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뷰티숍과 골프장을 오가는 유한마담이라도 되었을까. 오래 된 연인에서 가족이 되는 세상의 모든 커플을 한심해 하며 독야청청 늙어가는 독신여성이라도 되었을까. 가지 않은 길은 늘 강렬한 매혹의 색깔을 띠고 있다.

작은 날갯짓이 수많은 변수가 되는 나비효과

우리는 한 순간의 선택이 태풍이 되는 나비효과의 인생을 살고 있다. 브라질에서 잠시 펄럭였던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로 건너와 엄청난 돌풍이 되었다는 나비효과는, 사소한 사건이 커다란 효과를 가져 온다는 뜻만은 아니다. 하나의 선택이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의 선택은 여러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 결과마다 다양한 변수가 있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해도 우리는 과거의 선택을 바꿀 수 있을까?

그녀가 그때로 돌아가 그 기차를 타지 않고 현재로 돌아오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고 하자. 다른 35년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자신의 인생은 여전히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의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들은, 또 다른 가지 않은 길이 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그와 이루었던 아름다운 시간은 없었을 테지. 무엇보다 내 소중한 두 아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보면 돌아가도 바꿀 수 있을지 자신은 없어.”

〈당신…〉에서는 사고로 죽어 평생 못 잊는 여인을 살리지만 바뀐 과거의 나비효과로 자신의 현재는 뒤죽박죽되어 있다. 이 영화는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결국 현재라는 것을 역설로 말한다.

가끔씩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는 친구에게도 아직 너무 많은 선택이 남아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했던 오래 전의 선택은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 날갯짓을 계속하게 된다. 다만 기억할 것은 그 선택에서 무엇을 원했는가, 이며 그것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나아가고 있는가, 가 아닐까. 그 남자를 선택하고 함께 했던 시간, 그리고 각자의 인생을 가기로 결정하고 싱글맘이 되고 두 아이를 억척스럽게 키우면서 쌓아온 시간, 이 모두가 수많은 변수가 되어 나비효과로 그녀의 현재를 만들고 나아가 미래를 완성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에서 인용한 수산나 타마로의 글은, 마음이 가는 곳을 택하고 거기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 곧 최선의 선택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되는 대로 아무 길이나 들어서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라.

네가 세상에 나오던 그날, 그날 내쉬었던 자신 있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그리고 마음이 너에게 이야기할 때 그 때는 마음 가는 곳으로 가라”

기다리고 기다려서 마음이 가는 곳을 택한 신중한 선택은 계속 정진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선택의 신중함은 곧 미래로 내딛는 발걸음에 온 힘을 쏟음을 뜻한다.

연기 속에 있는 삶, 온 힘으로 계속 나아가야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는 연기는 우리 모두 깨닫고 있는 불법이다. 이 단순한 이치는, 홀로 존재함 없이 모두가 종과 횡으로 얽혀 있어 계속 나아가고 변해간다는 진리로 거룩해진다. 모두가 의존관계에 있어 독자적인 실체가 없다는 공의 상태에 이르는 연기는, 거꾸로 보면 모둔 것에 각기 다른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를 돌이키고 싶다는 그녀에게도, 애초부터 헤어진 남편이, 두 아이가, 그리고 지금의 그녀가 내포되어 있었다는 연기를 말할 수 있다.

연기의 법칙에 시간이 개입하면 더욱 변화무쌍해진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상하다. 지난 과거는 자취가 없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된다. 오늘을 되돌려 어제로 가는 일은 가지 못하는 길이다. 오늘을 살아 내일을 만드는 연기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과거를 후회하며 고통에 빠지기보다 현재에 머물며 온 힘으로 계속 나아가는 일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허공에는 자취가 없는데

바깥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는 수행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깨달은 사람에게는 흔들림이 없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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