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역사 논란에 부쳐

지난 723일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때 아닌 역사왜곡논란에 휩싸였다. 개신교계 일간지인 <국민일보>와 통신사 뉴시스를 비롯한 몇몇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된 <나랏말싸미>의 역사왜곡의 요지는 이렇다. 세종은 신미 대사의 존재를 몰랐기에,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영화의 내용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란에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통해 신미 대사의 존재를 알린 정찬주 소설가가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정찬주 소설가는 영화 <나랏말싸미>가 기존의 역사적 상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역사적 진실은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찬주 작가 기고의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지난해 가을 영화 <나랏말싸미> 조철현 영화감독이 필자의 산방으로 찾아와 초저녁까지 이야기하고 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조 감독에게 한국불교에 빛과 그늘이 있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그 그늘을 조금이라도 지워준다면 나는 내 소설 <천강에 비친 달> 어느 부분을 뽑아가더라도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 영화가 막상 개봉이 되고 나니 한글창제설의 논란이 일고 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나는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왜 집필했는지 그 과정을 회상하면서 내가 파악한 한글창제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을 밝히고 싶다.

서울의 모 일간지에 <암자로 가는 길>을 연재하고 있을 때였다. 속리산 복천암을 취재차 올라갔다가 월성 노스님으로부터 한글 창제의 공이 많다는 신미 대사의 이야기를 난생처음으로 들었다.

몇 년 후 또 그 일간지에 <선방 가는 길>을 연재하게 되어 두 번째 복천암을 찾았는데, 그때도 스님은 신미 대사의 자료를 보여주면서 한글창제 비사(秘事)를 말씀하셨다.

마침내 나는 노스님의 절절한 원을 풀어주고자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완성하여 복천암으로 올라갔다. 나를 맞이하는 스님이 평생 동안 내가 신미스님을 노래 부르듯 했더니 결국 해내는 사람이 있네라고 환하게 웃으셨다.

<천강에 비친 달>은 범어(梵語)에 능통했던 신미대사가 어떻게 세종의 한글창제에 가담하고 있는지를 밝힌 소설이다. 왕사제도가 사라진 시대에 세종은 신미대사를 왕사로 예우했다. 또 대사를 정음청 학사로 제수했다. <연산김씨세보>에는 신미대사를 학사로 임명하여 집현전 학사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체계를 설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문종실록>에도 대사와 정음청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병환 중일 때 놀랍게도 신미대사가 침전에 들어 법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문종실록>에도 선왕(세종)이 신미대사를 존경했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의 유언에 의해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존호를 내린다는 구절이 있다. 국왕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했던 실체는 바로 한글창제가 아닐 것인가.

우리들은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창제했다고 학교에서 배운 바 있다. 그러나 한글이 비밀리에 창제될 때까지 집현전 학사들은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고, 또 창제에 참여할만한 능력이 모자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의 서문에 나와 있는 사실이다.

그 깊은 연원과 정밀한 뜻이 묘연하여 신 등은(정음을 창제함에 있어서)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若其淵源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이처럼 정인지는 집현전 학사들은 한글이 어떤 문자를 근거로 하고 있는지 그 깊은 연원과 글자의 정밀한 뜻이 미묘하기에 간여할 능력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정인지는 또 꼴을 만들되 글자가 옛 전자와 비슷하다(象形而字倣古篆)’라고 모호하게 말했지만 동시대 인물이었던 성현(成俔)<용재총화(?齋叢話)>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글자체는 범자에 의지해서 만들었다(其字體依梵字爲之)’범자기원설(梵字起源說)’을 밝히고 있다.

세종이 재위 25(1443)에 한글 창제를 전격적으로 공개한 뒤부터 집현전 학사들은 각자 찬반 주장을 했다. 이는 한글 창제가 공개된 이후의 일이었다. 오직 세종과 신미 대사, 그리고 신미 대사에게 귀의한 세자(문종), 수양, 안평, 정의공주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글 창제를 세종과 신미 대사의 애민정신 말고도 유불 갈등 및 왕권과 신권이 대립한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보았다.

정찬주/ 소설가

영화 <나랏말싸미>가 그동안의 한글 창제에 대한 상식을 벗어나 있으니 논란은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다만, 역사적 진실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본다. 특히 상상력의 예술이 역사적 진실의 지평을 더욱 넓히는 순기능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필자가 <천강에 비친 달>을 발간했을 때 사학자 김상현 박사께서 학자는 기어가는데 소설가는 날아간다고 평하셨다. 예술가의 상상력이 때로 정설만을 신봉하는 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강단학자들의 연구로 한글 창제의 진실이 보다 깊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조철현 감독의 데뷔작 <나랏말싸미>가 용기 있게 문제제기를 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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