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스님의?선문답 이야기 ②

무문관 앞쪽에 위치한 설악산 백담사 계곡의 풍경은 선계와 같다. 신비로운 돌탑은 실상의 묘용을 숨김없이 드러내 주고 있다.

선문답에는 정해진 원칙이 없다. 일거수일투족 모든 행위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기로는 죽을 때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쉽기로 말하면 세수하다 얼굴의 코를 만지는 것보다 수월하다.

스승·제자사이 비유 가득 문답은
천 마디 설법보다 깊은 의미 함축
공안집 정리되며 점검형식 변화

둘째는 상징적이고 우회적이다. 단순하고 분명한 만큼 그 속에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을 함축한다. 흔히 스승이 제자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어디서 왔는가’ 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어느 지방서 왔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대의 본래면목이 무엇이냐, 혹은 이 세상에 나온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냐, 혹은 그동안 무엇을 배웠느냐’ 등등으로 제기되는 질문이다. 이같은 질문을 받은 제자는 순간 당황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어느 지방에서 왔다고 답하기도 한다. 모두 동문서답일 뿐이다. 그 같은 제자라면 아직 영글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이에 대해 스승은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다. 제자 스스로 터득해 답변을 토로하길 기다린다. 그것이 몇 날이건 몇 달이건 몇 년이건 상관 없다. 스승은 제자로부터 평생 그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남악회양의 경우도 육조혜능으로부터 ‘무엇이 이렇게 여기에 왔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남악회양은 답을 못했다. 홀로 고군분투하면서 8년을 지낸 어느 날 스승에게 나아가 ‘무엇이라 말하는 것도 한낱 껍데기일 뿐입니다’라는 한마디 답변을 제시했다. 그로 인해 정식으로 혜능으로부터 인가 받았다. 아마도 회양에게는 그 8년이라는 기간이 평생보다도 긴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려주는 혜능은 또 얼마나 제자를 향한 지순한 자비를 베풀었던가.

스승과 제자 사이에 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한 마디의 문답은 천만 마디의 설법보다 깊은 의미를 함축하는 행위요 언설이었다. 문답이 단순히 말을 통해 드러나고 답해지는 행위로만 그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문답이 아니다. 일종의 수수께끼일 뿐이다. 단순한 언설로 표현된 선문답을 진정한 문답으로 거듭나게끔 만드는 것은 모종의 상징성을 담고 있다. 그래서 선문답은 단순한 언설이면서 언설이라는 형식을 초월해 있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

셋째는 문답이어서 주로 대화체 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화는 몇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곧 스승이 묻고 제자가 답하는가 하면, 제자가 묻고 스승이 답하는 경우가 있다. 꼭 문답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고함이나 행위로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누가 답하고 누가 물어야 한다는 원칙이 없다. 단지 물음과 답변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물음이기 때문에 답해야 한다든가 답변이 전제된 물음이라는 어떤 형식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그 자리에서 입을 통해서 내뱉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왜 그와 같은 질문을 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바로 그 질문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참구하는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질문이 대화체의 시작이라면 그에 대한 참구행위는 그 대화의 연장이다. 그 끝을 찾아 자각하는 순간이 곧 대화의 종결이다. 대화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 영원히 종결의 순간에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대화는 선문답이 이루어지는 그 자리에서 영원한 지금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선문답은 스승과 제자가 똑같이 선에 참여해 스스로 선이 되어 주고받는 문답이라야 한다. 따라서 질문의 주체가 정해져 있지 않다. 질문자가 답변자가 되기도 하고 답변자가 다시 질문자가 되기도 한다. 질문과 답변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이 그대로 답변으로 되돌아오기도 하고 답변이 질문으로 제기되기도 하는가 하면 질문 없는 답변과 답변 없는 질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현칙이 청봉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청봉이 답했다.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찾는구나”

현칙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 한동안 꿍꿍거리다가 정혜에게 물었다. 이에 정혜가 말했다. “불을 다루는 신인 병정이 오히려 불을 구한다고 하니 본인이 부처이면서도 다시 부처를 찾는 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현칙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혼자서 다시 여러모로 참구하면서 정혜를 시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혜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정혜가 답했다.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찾는구나.”

이에 현칙이 크게 깨쳤다.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답변이건만 현칙에게는 같은 질문이 아니고 같은 답변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질문은 그것으로 끝나버린 것이고 이전의 답변도 이전의 답변으로 끝나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칙에게는 질문이 더 이상 질문이 아니고 답변이 더 이상 그대로 답변이 아니었다. 자신이 내뱉은 질문이 어느 순간 답변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청봉의 답변이 어느 순간 청봉의 답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정혜의 답변이고 자신의 답변으로 다가와 있었다. 현칙은 바로 그런 도리를 알고 스스로 질문과 답변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분별할 수 있는 눈을 터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선문답은 같은 질문이 같은 질문으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답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가 질문으로 여기고 제기한 경우는 어디까지나 질문일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에 걸맞는 안목을 구비하고 대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청봉과 정혜의 답변이 아니라 현칙 자신의 답변이었다. 이것이 곧 선문답이 지닌 질문과 답변의 존재방식이다.

넷째는 시대가 흐를수록 정형화된 공안집으로 정착되었다. 일단 형성된 하나의 선문답에는 후대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연지 찍고 곤지 찍으면서 정형화된 작품으로 만들어 갔다. 그것은 선문답을 깨침에 나아가는 수단 내지 도구화시켜 선사들로 하여금 일정한 표준을 제시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많은 선사들은 이전의 어떤 선문답을 선별해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붙이기도 하였다.

이 경우 이전의 어떤 선문답을 본칙(本則) 혹은 고칙(古則)이라 한다. 그 고칙에 대하여 편자가 자신의 견해를 게송으로 붙이기도 하고, 산문으로 붙이기도 한다. 고칙에 대하여 게송으로 나타내는 것을 송(頌)이라 하는데 이 경우 고칙과 송을 합하여 송고(頌古)라 한다. 곧 고칙에 송을 붙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고칙에 대해 산문으로 나타내는 것을 염(拈)이라 하는데 이 경우 고칙과 염을 합하여 염고(拈古)라 한다. 곧 고칙에 산문으로 해석을 붙였다는 뜻이다. 이 송고와 염고에 대하여 후대인이 다시 주석을 가하기도 했다. 이 경우 송고나 염고에 대하여 전체적인 의미를 송고나 염고 앞에 제시한 짤막한 산문을 시중(示衆)이라 한다. 그리고 송고나 염고의 각 어구마다 아주 짤막한 촌주를 붙였는데 이것을 착어(著語)라 한다. 송고나 염고를 들고 전체적으로 그에 얽힌 일화나 그에 관련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으로 풀어낸 것을 평창(評唱)이라 한다.

수많은 공안집 가운데 일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송대에 굉지정각이 예전의 고칙 100가지를 엄선하여 각각의 내용에다 게송을 붙였는데 이것을 <굉지송고>라 한다. 이에 대해 원대 초기에 만송행수가 각각 시중과 착어와 평창을 붙여 <종용록>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또한 당대 말기에 설두중현이 예전의 고칙 100가지를 엄선해 각각의 내용에다 게송을 붙였는데 이것을 <설두송고>라 한다. 이에 대해 송대에 원오극근이 각각 시중과 착어와 평창을 붙여 <벽암록>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본래의 선문답을 일정한 체계에 의하여 다듬고 견해를 붙여 만들어온 것이 오늘날까지 공안집으로 전해온다.

이런 선문답은 특히 송대·원대·명대를 거치면서 유행처럼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간화선 수행 풍토서 이런 공안집들은 어디까지나 이전의 선문답을 언설로 표현된 형식만을 기준으로 편집되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다시 선문답의 특징을 형성하게 됐다. 이쯤 되고 보면 선문답이 정형화되고 형해(形骸)화 되어 선문답을 위한 선문답으로 애초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본래의 선문답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상실케 하는가 하면 오히려 반대로 본래의 선문답을 후대의 상황에 맞게끔 변형을 가하기도 했다.

이 선문답의 집대성인 공안집은 후대에 내려오면서 오늘날까지도 스승이 제자의 경지를 점검하는 시험문제와도 같은 인가의 표준으로 작용한다. 그 공안집 가운데서도 특별히 자주 응용되는 것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스승은 어디까지나 모든 선문답을 제시해 그에 대해 제자에게 낱낱의 답변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사람이 모인 공개석상에서 선문답의 행사가 이루어진다. 제자는 그 통과의례를 아무런 탈이 없이 스승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되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마침내 스승에 의하여 제시된 선문답을 통하여 제자는 스승에게 인가를 받기도 한다.

여기에서 선문답은 예전의 생생한 선문답으로서의 본래기능을 상실해버리고 어떤 경지를 가늠하는 점검의 기준이 되어 깨침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부차적인 기능으로 전락해버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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