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묄세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묄세
  • 임종욱 소설가
  • 승인 2019.07.26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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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 보복과 불매운동

7월이 되자 생각지도 않았던 거대한 태풍이 나라 전체를 뒤덮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을 태풍이라 부르는데, 수명은 길어야 1주일에서 열흘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태풍은 일본의 비열한 정권 괴수의 터진 입에서 발화되어 북상했다. 예고편까지 준비하며 요란을 떠는 이 태풍은 가을도 지나 겨울까지, 아니 더 길고 질기게 불어올 것 같다.

일본서 불어온 ‘수출규제’ 태풍
조상들의 주체적 극복 지혜 배워야
적극적 대응으로 민족의 힘 키우자

태풍은 우리나라를 피해 빠져나가거나 세력이 약화되어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일본발 요괴는 우리나라를 강타할 유일한 목적만 가지고 조장(助長)되었다. 그 위력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들고 나왔지만, 그 품목이나 범위가 점점 늘어나 우리 경제 전반을 먹구름으로 덮을 기세다. 게다가 무기한이라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만큼 전면적이고 전격적이다.

일본발 태풍의 상륙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1592년에는 우리나라를 집어삼킬 마수를 드러내며 ‘임진왜란’이란 이름으로 밀려와 7년 동안 우리를 괴롭혔다. 백여 년 전에도 ‘제국주의’란 이름으로 몰아쳐서 35년 동안 이 나라를 통째로 삼켰다. 왜구(倭寇)라 불리는 자잘한 태풍이 들이닥친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우리는 그런 태풍에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던가? 그렇지 않았다. 피땀을 흘려가며 우리는 지혜롭게 그리고 끈질기게 저항해서 모두 물리쳤다. 전국에서 의병(義兵)이 들끓었고, 독립군(獨立軍)의 깃발 아래 단결해서 기어이 이 ‘마군(魔軍)의 하수인’들을 몰아냈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이번 일본발 태풍을 맞아 우리는 ‘불매운동’이란 이름 아래 한마음이 되어 의병과 독립군의 비장한 결의로 불퇴전(不退轉)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이번 전쟁은 칼과 총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니고 경제 보복이라는 탈을 쓴 지배 야욕에 대한 쟁투니, 더욱 강인한 응전이 필요하다. 오랜 동안 서로가 적으로 대치했던 북한조차 섬나라 정권의 교활함을 질타하며 속이 후련할 만큼 명징한 논리와 비유로 토벌에 나섰다.

내가 사는 남해에도 일본에 뿌리를 둔 업체가 몇 군데 있다. 읍내에 있는 ‘다이소’와 ‘티 큐브’가 대표적이다. 다이소는 염가판매 전국체인인데, 매년 5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일본 법인 다이소에 지급했다고 한다. 티 큐브 역시 일본계 기업이 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티 큐브는 남해에 점포를 열 때부터 남해의 전통 상권을 잠식하고 일본계 기업이란 이유로 파장이 일기도 했다.

상품이 다양하고 저렴하다 보니 나도 읍내에 나갈 때면 이따금 두 점포를 이용해 왔다. 그런데 일본발 태풍에 시달리다 보니 그곳에 가서 지갑을 열 마음이 싹 사라졌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하자”는 구호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나는 문학 창작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주로 소설을 쓰는데, 지금까지 여덟 권의 작품을 출간했다. 작품이 시원찮으니 ‘베스트셀러’의 꿈은 접은 지 오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쓸 때면 나는 나만의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문학계만 국한하자면 한국과 일본 사이 무역 불균형은 크다는 정도를 넘어 끔찍한 지경이다. 거의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쏟아지는 일본 문학 작품의 번역량은 어마어미하다. 따로 통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천 권도 넘을 것이다. 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가 (내가 느끼는 한) 추리소설이다. 그에 따른 인세 지급 액수도 상당액일 게 분명하다. 몇 년 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번역 판권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어 선인세만 물경 20억 원을 불렀다는 출판사가 있었다면 말 다했다. 인세가 20억 원이 되려면 책이 적어도 백만 권은 팔려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소설이 일본에서 소화되는 양은 얼마나 될까? 몇 십 권도 넘지 않을 성 싶다. 판매량도 대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추리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번역되어 나왔고, 꽤 괜찮게 판매되고 있는데, 우리 작가나 작품이 일본에서 이런 성과를 올린 예를 나는 알지 못한다.

좋은 소설을 읽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그런 작품을 왜 우리나라 작가는 못 쓰냐고 따지면 굳이 할 말은 없다. 경제와 예술은 다른 영역이라고 반론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라고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분야도 아닐뿐더러 경제에서도 같은 논리는 유효하다. 경제가 종속당해 이런 치욕을 당하는데, 예술, 특히 문학의 종속은 마냥 관련 없다고 외면할 수 있을까?

의병이나 독립군들은 저들보다 훨씬 열악하고 무딘 무기를 들고 싸워 국난을 이겨냈다. 경제적 해방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이때,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들도 우리 문학에 힘을 실어주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더구나 내가 아는 한 우리 문학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문학에서도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외치면 치졸하고 생각 짧은 삼류 작가의 헛소리라 비웃겠지만, 지금의 태풍을 보면 치외법권이 적용될 영역은 거의 없어 보인다.

간디도 연약한 샌님만은 아니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1869-1948)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비폭력 무저항’이란 말이 떠오른다. 간디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났다. 19살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가 대학을 마친 뒤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인도의 민족시 〈바가바드기타〉를 탐독하던 그는 1894년에 인도인 국민회의를 결성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고, 1895년에는 인두세(人頭稅) 반대 투쟁을 지도하기도 했다.

또 그는 약소민족의 자결 자주권을 주장했으며, 강대국들의 특권인 제국주의적 지배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이런 신념을 관철시키고자 그는 〈Young India〉라는 잡지도 발간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 약속을 저버린 영국 정부가 준 훈장을 반납했고, 영국 제품 불매 운동을 선언했으며, 물레를 쓰도록 장려했다. 무력에 의한 민족의 해방은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고, 궁극적인 해결책도 아니기에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2차 대전이 터지자 간디는 나치 독일의 잔학상을 폭로하면서 무력으로 항거할 것을 인도인에게 주문했다.

간디가 비폭력과 화해를 적극 외친 것은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해방된 전후부터였다. 무슬림과 힌두교도 사이의 갈등 때문에 조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눠 독립되자 그는 독립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전국을 다니면서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고, 민족이 단합하며, 평화를 중심으로 화해하자고 부르짖었다. 간디는 서로에게 대자대비(大慈大悲)하라고 외쳤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과격 힌두교 청년이 쏜 총탄이었지만, 간디가 평생 견지했던 정신의 핵심은 외세와 파쇼에 대한 강고한 저항이었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인도 태생이다.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인도(정확하게는 지금의 미얀마[당시 버마])에 가서 5년 동안 제국주의 경찰로 살았다. 그곳에서 그는 제국주의 영국의 본질과 치부를 속속들이 깨달았고, 사직하고 돌아와 노숙자로 떠돌면서 참회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자부했던 조지 오웰은 1937년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프랑코 독재에 맞서 싸우기 위해 참전했다. 목에 관통상을 입은 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그때의 체험을 〈카탈로니아 찬가〉란 책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 경험에서 그는 소련의 스탈린 독재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분열과 배신, 탄압과 처형으로 쌓아올린 피로 물든 제국주의 능선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제국주의란, 식민지에 대한 비윤리적인 약탈 행위임과 동시에 피식민지인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부도덕한 범죄임을 간파했다.

인도가 조국이었던 간디와 인도가 고향이었던 조지 오웰은 대단히 복잡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지만, 제국주의적인 선행(善行)의 허울 뒤에는 악마가 존재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인식한 지식인이었다. 세상이 바람직하게 바뀌려면 이 악마들의 연저지인(畺疽之仁)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간디에게는 영국 제품 불매 운동이었고, 오웰에게는 목숨을 내건 적극적인 투쟁이었다.

우리의 오늘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조선 말기와 구한말 때 의연한 자세로 일제와 맞선 의인(義人)들이 많았지만,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933-1906) 선생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1855년 과거에 급제해 정계에 발을 들인 그는 전형적인 유가(儒家) 지식인이었다. 1879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이때 그가 아낀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전개를 촉구했고,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해 거병했다. 그리고 일본군에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나라의 자존(自存)과 자존(自尊)이었기에 그는 일본인이 주는 음식이라 해서 단식을 하다 끝내 이역 땅에서 세상을 버렸다. 이렇게 그가 뿌린 씨앗은 나라를 잃은 뒤인 1920년대 전개된 물산장려운동으로 열매를 맺었다.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일본발 태풍의 먹구름은 점점 더 마각을 드러내며 극악해지고 있다. 식민지 때 일본은 우리의 얼을 빼앗고자 갖은 모략과 학대를 자행했고, 대처승을 지지했던 일본 불교를 끌어들여 우리 불교를 오염시키려고도 했다. 그리고 이제 일본은 다시 제국주의적인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저들은 경제적 지배를 힘으로 강제하려는 저의를 넘어 우리들의 분열과 동요, 그리고 갈등을 유발해 저항의 원천을 끊어내려는 기획에 들어섰다.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는 일본발 태풍에 넋 놓고 당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극복했던 지혜를 배워야 하겠다. 태풍이 거세다고 방 안에 꼭꼭 숨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요행심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폭우와 질풍에 맞서면서 지붕을 여미고 버팀대를 세워야 우리의 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싸움만이 능사가 아닌 것도 사실하지만, 오늘 우리가 싸움을 두려워하고 고개를 조아리면 내일 우리는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죽기만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저들에게 사무라이 칼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싸울아비의 시퍼런 조선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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