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의 바람막이 되어주신 어른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명예교수

나는 태허당 광우 명사 스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와 존경이라는 두 단어를 함께 떠올린다.

스님을 가까이 찾아 뵌 것은 1982년 일본으로 유학의 길에 오르면서다. 평소 친밀하게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지만 비구니계의 어른이시고 유난히 공부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말씀을 많이 들어와서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서였다.

처음 정각사 골목길을 내려가면서 평소에 잘 모시지도 않았던 어른을 찾아뵙는다는 것이 좀 서먹한 생각도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서 대문을 들어섰다. 정적에 감싸인 정각사 마당에 서니 불안했던 마음도 가라앉고 어른을 뵙는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잠시 뒤에 근엄하시면 서도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내 앞에 자리하고 앉으셨다. 그렇게 가까이는 처음 찾아뵌 젊은 학승(學僧)을 어루만지듯 다독이듯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신 것이다. 언덕길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처음 찾아뵙는 어른에 대한 불안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졌고 공부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좋아하시는 모습에 큰 용기를 얻게 해주셨다. 그리고 인사를 올리고 일어서는 내손을 잡고 다시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잠시 뒤 학비와 미국화폐 100달러를 내 손에 쥐어 주시면서 외국에 가는 사람에게 외국 돈이 적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외국돈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100달러는 외국유학을 준비하면서 막연하게 학비를 걱정했던 마음을 일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마치 부적과도 같은 큰 힘을 느끼게 했다. 그때 처음 외국돈을 만져보면서 내가 정말 외국 유학을 가는 것이로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한 장의 외국돈이 그때 나에게는 그렇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생전에 이 말씀을 올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한국에 나올 때는 꼭 들르라는 말씀을 따라서 꼭 인사를 올렸고 학비를 보태주셨다. 크신 자비와 격려에 이제야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두 번째는 태허당 광우 명사 스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2002년에 대만에서 개최된 제7차 샤카다타(Sakyadhita)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가하고서 제8차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온 일 때문이었다.

나는 세상을 너무나 단순하게 살아온 허물이 있다. 비구니 스님들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마음에서 한국비구니연구소를 만들었고 그 인연으로 석담 스님과 조은수 교수의 권유에 따라 샤카다타 8차대회를 한국에 유치해온 것이다.

막상 대회 유치의 깃발을 들고 와서 보니 전국비구니회와는 아무런 의논도 없이 독단으로 샤카다타 세계여성불자대회를 받아온 셈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때부터 쏟아지는 비난을 폭포수처럼 받을 수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나의 무모함을 절감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던 것이다.

대회가 개최되는 2004년은 광우 스님께서 8년 간의 전국비구니회장 소임을 마감하실 시기이셨다. 비로소 사안이 큼을 직감한 나는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광우 스님께 간곡히 청원하였다. 나의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시고 대회의 개최를 도우려는 마음을 굳히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대회가 개최될 시기에는 광우 스님은 전국비구니회장을 내려놓으실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로 밑거름이 되어 주셨다. 광우 스님과 회장직을 이어 받으신 운문사 명성 명사 스님, 그리고 진관사 진관 원로 스님이 그 때 보살펴주지 않으셨더라면 나는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했을 것이다. 그 중심에 광우 명사 스님이 계셨던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 무모한 짓이었던 제8차 샤카디타 세계여성불자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공로를 세 분의 어른 스님께 올린다. 그리고 회장직을 물러나시면서 까지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광우 명사 스님은 참으로 덕인(德人)이시고 대인(大人)이셨다. 나에 대한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넓은 가슴으로 막아주셨고 방법을 몰라서 당황할 때 길을 가르쳐 주신 어른이셨다. 존경의 마음으로 회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8차 샤카디타 세계여성불자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서 한국불교는 세계불교, 특히 세계여성불교에 눈을 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구니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비구니계가 세계의 비구니계와 여성불자의 현주소를 일순간에 학습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대회였다. 또한 대회를 통하여 세계의 여성불자도 한국비구니의 거룩한 모습을 온 몸으로 실감하고 돌아갔다.

광우 명사 스님께서 그 넓은 가슴으로 몰아치는 바람막이가 되어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던 지난일이다. 다시 한 번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예를 올린다. 다시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시어 미래 한국불교의 큰 언덕이 되어주시기를 향을 사르고 청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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