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특집] 태허당 광우 스님 행장
[추모특집] 태허당 광우 스님 행장
  • 신성민 기자
  • 승인 2019.07.20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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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믿고 행동해 바른 깨달음 이뤄라”

전국비구니회관 건립 이끌어
대행 선사와 깊은 교류 나눠
〈법화경〉바탕으로 수행·포교
정각사 창건… 정기법회 개설
문서포교지 〈신행불교〉 발간
한국 비구니계의 원로이자 조계종 명사인 태허당 광우 스님이 7월 18일 오후 4시 5분 주석처인 서울 삼선동 정각사에서 법랍 80세, 세수 95세로 입적했다. 15살에 출가사문이 된 광우 스님은 법화행자로서 80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정각(正覺)의 길을 걸었다.
한국 비구니계의 원로이자 조계종 명사인 태허당 광우 스님이 7월 18일 오후 4시 5분 주석처인 서울 삼선동 정각사에서 법랍 80세, 세수 95세로 입적했다. 15살에 출가사문이 된 광우 스님은 법화행자로서 80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정각(正覺)의 길을 걸었다.

한국 비구니 원로 태허당 광우 스님은 ‘한국불교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수식할 수 있는 수행자다. 스님의 일생에서의 주된 키워드 중 하나가 ‘최초’이기 때문이다.

광우 스님은 1940년 국내 최초의 비구니 강원인 상주 남장사 관음강원의 최초 졸업생이며,  1956년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4년제 정규대학(동국대)을 졸업했다. 당시 스님은 ‘양복 입고 대학에 다닌 비구니’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58년 성북구 삼선동 망월산에 정각사(正覺寺)를 창건한 이래 불교계뿐만 아니라 여성, 학술,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크게 활동한 스님은 2007년 조계종 최고의 비구니 스승에게 수여하는 ‘명사(明師)법계’를 최초로 품서했다.

광우 스님은 비구니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지식이다. 스님은 1968년 2월, 뜻을 같이 하는 스님들과 함께 전국비구니회의 전신인 ‘우담바라회’를 결성했다. 비구니 스님들이 활동할 수 있는 비구니회관을 건립하는 것이 우담바라회의 1차적인 사업목표였다. 또한 회관을 기반으로 승가교육·포교·사회복지 사업을 추진할 계획도 가졌다. 

“실천하는 불교, 이웃들과 함께 하는 불교를 만드는 일에 비구니가 앞장서야 한다”는 광우 스님의 원력은 비구니 스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로 인해 1985년 전국비구니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광우 스님은 1995년부터 제6·7대에 걸쳐 8년 동안 전국비구니회장을 역임하면서 비구니 스님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전국 비구니회관 건립을 주도했다. 스님은 임원들과 전국사찰을 순회하며 모금운동을 펼치는 등 전력을 다했고, 2003년 8월 19일 역사적인 전국비구니회관 낙성법회를 봉행하게 됐다.

이에 대해 광우 스님은 지난 2012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스님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비구니회장이었던 광우 스님은 전국비구니회관 건립 불사기금 모연을 위해 대행 스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대행 스님은 광우 스님과 비구니회 임원진들이 회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기금 85억 원을 쾌척했다. 이것이 인연으로 도반이 된 스님들은 입적 때까지 교류를 이어가며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광우 스님은 “정말 고마웠던 도반 중 한명은 진관사 진관 스님이다. 1968년 비구니회 발기때부터 같이 일을 하고 당시에도 부회장을 맡아 수고했다”면서 “한마음선원 창건주 대행 스님이 아니었으면 비구니회관 불사는 어려웠다. 120억 원의 불사금 중 85억 원을 한마음선원에서 쾌척했다. 조계종 7천 비구니 스님들의 원력불사는 그렇게 회향됐다”고 밝혔다.

광우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정각사를 중심으로 도심포교의 새 장을 열었다. ‘바른 깨달음을 이뤄가는 사찰’이라는 의미의 사찰명은 김동화 박사가 지었다. 당시 광우 스님은 어린이·중고등학생법회, 대학생법회, 일반신도법회를 개설하고 매주 정기법회를 개최했다.

이 같은 정각사 법회는 저절로 소문났다. 황성기, 원의범, 홍정식, 김동화 박사 등 당대 최고 불교학자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서울 소재 유수 대학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훗날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정각사의 포교 사업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7년간 매월 펴낸 사보 〈신행불교〉 발간이다. 처음 〈신행회보〉에서 〈신행불교〉로 이름을 바꿔 통권 324호까지 간행한 이 잡지는 문서포교에 큰 몫을 했다. 군부대, 교도소, 해외까지 널리 배포되며 부처님 법을 전했다. 〈신행불교〉의 모토는 정신(正信) 정행(正行), ‘바로 믿고 바로 행해 참사람 되자’로 이것은 정각사의 신행을 알 수 있게 하는 지표였다.

정각사는 시대를 앞서 신도들의 교양을 위해 수준 높은 대중강좌를 열기도 했다. 전각가로 유명하신 안광석 선생, 한국 다도(茶道)를 대중화시킨 효당 최범술 스님 등을 모셔 큰 호응을 얻었다.

스님의 전법은 정각사에 국한되지 않았다. 서울시립 목동청소년회관 관장을 맡아 불교사회복지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1989년부터 6년간 관장을 역임하면서 서울 목동신도시 청소년 교화모범시설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광우 스님은 한국불교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스님은 1987년 샤카디타가 처음 창립될 때부터 한국 대표로 참가해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이같은 해외 불교활동의 업적을 인정받아 1998년 스리랑카 사르보다야 ‘SASANA KEERTHI SRI 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우 스님의 원력에 바탕에는 〈법화경〉이 있다. 포교활동도 주로 〈법화경〉 강설로 이뤄졌다.  정각사를 창건할 당시 스님은 〈법화경〉 권지품의 ‘일체중생 희견여래’를 포교사의 모델로 삼았다.

출가 이후 스님은 철저한 ‘법화행자’였다. 1956년부터 10년간 부산 소림사에서 〈법화경〉 산림을 했고, 사숙인 금룡 스님의 당부로 매년 열흘씩 〈법화경〉 강설을 했다.

정각사 창건 이후에도 〈법화경〉 수행은 이어졌다. 조석예불을 마친 뒤 반드시 〈법화경〉을 한품씩 읽기를 수행의 정업으로 삼았다. 1986년 〈묘법연화경〉을 번역출간하며 대학 도서관까지 법공양을 했다. 이 책의 특징은 독송할 때 운율이 잘 맞고 뜻이 명료하게 번역된 점이다. 또한 스님은 법화경 6만 9천 84자를 매일 기도하듯 사경했다.

광우 스님은 베품을 낙으로 삼았다. 평생 후학 양성을 위해 시주금을 기꺼이 내어놓는 ‘학승(學僧)의 대모(代母)’로도 통했다. 스님은 돈이 생길 때마다 절 살림을 늘리기보다는 한 명의 인재라도 더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현재 불교계 안팎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진 중 많은 스님들이 광우 스님의 학비 지원으로 공부를 마쳤다.

광우 스님은 매일 긴 염주를 돌리며 독경과 암송을 했다. 폭우가 쏟아져도 큰법당 조석예불을 거르지 않았다. 수행자로서 처음과 끝이 한결 같음을 알 수 있다.

80년 정각(正覺)의 길을 걸은 광우 스님. 스님의 법명처럼 ‘밝은 지혜의 빗줄기(光雨)’로 다시 우리에게 현현하길 발원한다.

조계종 원로 비구니 명사 태허당 광우 스님 49재 일정

초재 7월 24일 오전 10시
2재  7월 31일 오전 10시
3재  8월  7일 오전 10시
4재  8월 14일 오전 10시
5재  8월 21일 오전 10시
6재  8월 28일 오전 10시
49재   9월   4일 오전 10시

매주 수요일 정각사 대웅전에서 올립니다.
문의 (02)74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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