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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 스님

삶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가 어느날엔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이미 전제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역시 위안이기도 하고 대안이기도 합니다. 겁(劫)을 두고 생과 사를 되풀이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일 진데 이번의 이 삶은 수 많은 삶 가운데 하나의 삶일 것입니다.

다시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감내해야할 부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되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생을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시작하셨습니다. 慧자 峰자 큰 스님을 아버지 겸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고, 어머님을 사숙 겸 도반으로 하셨습니다. 일찍이 출가하셔서 좋은 스승과 도반들을 만나 수행과 공부를 잘 하실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도시의 포교 도량에서 긴 세월동안 역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배움과 가르침을 함께 하셨습니다.

일찍이 서울 변두리에 정각사라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 그 곳을 현대 한국불교학의 요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날 한국불교학계의 큰 학자들이 대부분 정각사 법당에서 가르쳤고 많은 사람들이 현대 불교학을 그 곳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문서 포교를 위해서도 초창기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후진들을 키우는데도 힘을 아끼지 않아 적지 않은 학생스님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비구니계를 위해서는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지만 그 역사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긴 세월에 걸쳐 비구니회를 육성하고 회관을 세우는데 주축이 되어 많은 노력을 바쳤습니다. 스님의 일생을 기록한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를 다시 읽으면서 스님께서 참으로 많은 공부와 일과 역할을 하셨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시면서 생전에 베푸신 가르침과 보여주신 실천, 더불어 이룩하신 일들,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의 기억과 가슴 속에 남아 스님의 모습을 오래도록 살아있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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