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의 샘과 조주선사의 잣나무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 2〉    1912년〈자전거바퀴〉    1913년〈샘〉, 1917년

단순한 사물로 볼 때는 설명이 전혀 필요치 않은 물건이지만, 이것을 하나의 미술품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 난해한 작품이 있다. 프랑스 태생의 작가 마르셀 뒤샹(Henri-Robert-Marcel Duchamp, 1887-1968)의 〈샘 Fountain, 1917〉이다. 남성용 소변기를 방향만 바꾸어 전시해 놓고 그 테두리에 R.Mutt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이 서명되어 있다. 사실 Mutt는 그 당시 위생 설비 제조업체였던 ‘Mott Iron Work’라는 회사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뒤샹은 원래 이 이름을 생각했다가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했던 그 당시 미국의 신문 만화 ‘머트와 제프’(Mutt and Jeff)에서 착안하여 R.Mutt로 바꾸었다고 한다.

레디메이드로 인식의 전환 전달
실체에 대한 접근, 미술 빅뱅 촉진

‘레디메이드’(ready-made)로 흔히 불리우는 이러한 형태의 작업은 간단히 말하자면, 실제적 사용을 위해서 대량 생산된 기성품 같은 것들을 조형예술 작품으로 그 의미를 전환하여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을 말한다. 미술사에서는 마르셀 뒤샹이 처음 시도한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용도를 쉽게 알 수 있는 기성품은 그 특정한 의미가 대상에 매우 견고하게 밀착되어 있다. 가령, 자전거 바퀴는 둥글고 튼튼해서 탈 것의 용도로 적합하게 되어 있는 그 어떤 실용적인 물건이며, 가지가 비쭉비쭉하게 사방으로 뻗은 나무처럼 생긴 와인병 걸이 역시 병들을 걸어두는 용도일 뿐, 일상에서 그 이외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레디메이드 예술은 대량 생산된 기성품들의 원래적 의미를 떼내고 해체하여, 어떤 다른 상황 속에 배치함으로써 그 대상, 즉 오브제가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을 통해 감상자들에게 일종의 예술적 체험을 환기한다.

자전거 바퀴를 떼내어 전시장에 걸어 두면 작품이 되고, 주방 소품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아도 작품이고, 변기가 전시장에 놓이면 역시 예술작품이 된다. 이것이 과연 타당한가?

사실, 〈샘〉에서 일상 생활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어떤 도구라는 기성의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 오브제 그 자체가 가진 조형적 형태만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유려하고 부드러운 곡선미를 가진 아름다운 물체로 보이기도 한다. 반짝이는 표면의 재질감과 풍부한 양감 또한 기존의 예술 작품, 조각 작품들이 지녔던 미적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현대 미술의 여러 개념들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난해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이게 뭐지?(What is This?) 이것은 과연 예술작품일까?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과 미는 여전히 유의미한 연관을 지니는가? 또 예술가와 예술의 관계는 어떤가? 미술대중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뒤섞인 지점에서 혼란스러울 뿐이다.

뒤샹은 1917년 봄 뉴욕에서 개최된 ‘독립 예술가 협회’의 전시에 〈샘〉을 제출하였다. 당시 뒤샹은 협회의 회원으로 있었고, 협회의 규정상 회원이 제출된 작품을 거절하여 반환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접수는 되었으나 정상적으로 전시되지는 않았다. 다른 회원들 간에 벌어진 토론에서 ‘이것은 예술작품이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전시회 기간 동안 이 작품은 칸막이로 가려져 있었기에, 실제로 관람객이 감상할 수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 작품 원본의 이미지는 사진작가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그런데 2004년에 터너상 시상식에서 영국의 미술 전문가 500인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뒤샹의 〈샘〉이 1위로 선정되었다. 2위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3위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두 폭 성상화 Marilyn Diptych, 1962〉였다. 비록 당시에는 전시에서 배제될 정도로 예술작품으로서 그 타당성을 의심받았던 〈샘〉은 오늘날에는 미술사를 바꾼 위대한 작품으로 간주된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태어난 뒤샹은 천성적으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뒤샹의 형제 자매는 7남매였지만, 1명은 유아 때 사망했고 나머지 6남매 중 뒤샹을 포함한 4명이 성공적인 미술가가 되었다.

뒤샹이 남긴 그림들을 보면, 마치 근현대 미술사의 포트폴리오와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가 15세 때 그린 풍경화는 전형적인 인상파 그림처럼 보이며, 20대 초반에 그린 〈체스 게임〉에서는 조르주 루오와 같은 야수파의 면모를 연상케 한다. 이후에 그가 그린 그림들에서는 상징주의, 표현주의, 입체파 등 그 당시 미술이 모색했던 여러 유형의 양식들이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뒤샹은 어느 날 문득 구름을 헤치고 하늘에서 강림한 미술사의 대 천재라기보다는, 현대 미술의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빗줄기와 햇빛을 받으며 자라나, 끊임 없이 새로운 예술정신을 추구했던 개척자이다.

여러 자료에서 피상적으로 전해지는 뒤샹의 성격은 기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 뒤샹은 조용하면서 절제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뒤샹이 최초로 평단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 1911〉인데 이 작품은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된 아모리 쇼(Armory show)에 전시되었다. 당시 미국의 화단은 유럽과의 지리적 격리로 인해서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되던 시기, 그 해 미국에서 개최된 아모리 쇼는 서유럽에서 일어난 새로운 미술 사조를 미국에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앵그르, 들라크루아, 쿠르베, 모네와 같은 19세기 대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마티스, 피카소, 레제, 칸딘스키 등 현대미술의 선구자에 해당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전시에 참가했던 뒤샹의 이 작품은 당시 평론가들에게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1919년 이후 뒤샹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뒤샹은 회화가 아닌,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다양한 작업방식을 통해 현대 미술의 빅뱅을 촉진하는 산파 역할을 했다.

뒤샹이 현대미술에 전한 화두는 예술의 의미 그 자체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었다. 근대 자연과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영구불변하고 독립적인 견고한 실체라는 막연한 믿음을 20세기 초에 이르러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해체해버렸다. 우주의 질서는 초기조건과 인과관계의 연쇄로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 즉 ‘뉴턴의 시계’를 양자역학의 주사위가 깨어버린 것처럼, 뒤샹은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막연히 이어져 내려오던 예술의 근본적 의미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무너뜨렸다.

앞선 언급처럼, 뒤샹의 작품 〈샘〉에는 자신의 서명이 아니라 R.Mutt가 적혀 있다. 뒤샹에게는 〈샘〉이라는 작품을 만든 이는 마르셀 뒤샹이 아니라, 그 누구가 되어도 무방했다. 위생 설비 제조업자의 이름이든, 아니면 만화 주인공의 이름이든 그것은 뒤샹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예술작품에서 작가의 서명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했다. 상업적 거래의 대상으로서 미술품의 값어치가 작가의 명성에 따라 매겨졌기 때문이기도 했고, 본질적으로는 근대 이전에는 작품이 예술가의 창조적 능력과 그 결과인 예술작품의 객관적 실체에 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뒤샹은 〈샘〉의 서명으로 이러한 기존의 타성을 해체하고 예술적 가치를 전복시켰다.

전통적 조형예술은 자연을 모방하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현된 자연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나 뒤샹은 이 모든 것을 뒤집어버렸다. “예술품이란 색을 칠하고 구성할 수도 있지만 단지 선택만 할 수도 있다.” 뒤샹은 기성품에 부여된 일상적 의미를 떼어내고 해방시킨다. 의미와 분리되어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혹은 원래의 용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작품 제목과 더불어 미술관 전시 공간을 차지하며 감상자의 눈 앞에 놓여진 오브제. 이제 작가의 생각, 의도, 개념 그 자체가 예술이 된다.

고정된 용도에서 해방된 오브제의 의미적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은 이제 작가의 손을 떠나 감상자, 미술비평가 및 그들을 포함한 사회의 미적 창의성으로 인도된다. 뒤샹의 작업은 푸른 도화선 속으로 불꽃을 몰아가는 힘마냥, 현대의 여러 미술 사조들을 고무했고, 평론의 영역에서도 수많은 담론을 낳았다. 이후의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 그리고 조지 디키(GeorgeDickie)와 같은 평론가, 아서 단토(ArthurC.Danto)와 같은 미학자들의 이론과 관점 역시, 뒤샹이 제시한 의미의 공허에서 출발한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간과할 수 없는 주요 흐름을 제시한 이가 마르셀 뒤샹이다. 뒤샹은 ‘레디 메이드’를 가지고 예술의 가치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며 나섰다. 그의 반미학적 전략은 일상과 예술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예술 개념의 외연을 확대시켰고, 예술에 대한 정의 가능성에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근래 학계에서는 기존의 예술개념이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을 포용하기에는 이미 한계상황이므로 ‘시각문화(visual culture)’라는 용어로 대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뒤샹의 〈샘〉은 그가 내세운 전략과는 유리된 채 여전히 시각적 아름다움과 미적 내용을 담고 있는 구체적인 대상물인 예술작품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미술관에 소장되고 전시 중이다.

“내가 레디메이드를 발견했을 때 나는 쓸모없는 미학자들을 낙담시키려 했었다. 그런데 네오다다는 거기서 미적 가치를 찾으려 하고 있다. 나는 미학자들의 얼굴에 하나의 도전으로 변기를 던졌는데 지금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샘〉은 스티글리츠 사진으로만 전해지고, 현재는 1964년 슈바르츠(Arturo Schwarz)에 의해 8개 한정판으로 주문 제작된 것이 남아 있다.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조사(달마)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여쭈었다. 선사는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라고 짧게 대답했다. 뒤샹의 예술적 전략은 해소(解消), 실제를 드러내기 위한 은유(隱喩), 그리고 의도적 무의미라고 하는 선문답의 알고리즘과 유사하다. 뒤샹이 제시한 오브제, 〈샘〉은 어쩌면 무심히 뜰 앞에 서 있는 잣나무와 같을지도 모른다. 조주 선사의 잣나무와 마찬가지로 뒤샹의 〈샘〉은 실체에 대한 가리킴(point at)이며, 본질의 드러남을 추구한다.

눈 앞의 대상에 전적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일은 소란한 삶 속에서 맞이하는 단순하고 순수한 알아차림의 순간이 된다. 〈샘〉은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 예술의 창작과 향수에 고착된 기존의 타성을 버리고 우리의 눈 앞에 현존하는 대상을 조용히 관조하라 일깨우는 것 같다. 어쩌면 뒤샹 이후 현대예술이 추구한 한가지 방향은 일체의 관습을 배제하고 실상을 꿰뚫어보는 시선에 대한 심원한 여정이다. 이뭐꼬! What is This!

마음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생각이 흔들리지 않으며,

선악을 초월하여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

염무적지 부절무변 念無適止 不絶無邊

복능알악 각자위현 福能?惡 覺者爲賢

〈법구경 法句經〉 중에서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