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설봉고간 평창 1

[評唱 1]

師云. 雪竇拈來 也是好心 也是不好心. 何故 一手擡 一手?. 僧問雪峯 “古澗寒泉時如何” 峯云 “?目不見底” 僧云 “?者如何” 峯云 “不從口入” 後人只管用作不答話會 作恁?去就 驢年夢見. 汾陽謂之借事明己.

설두의 염(拈)은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이기도 하고,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 손으로는 들어 올리고 한 손으로는 억눌렀기(一手擡 一手駟)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설봉에게 물었다.

“옛 골짜기에 샘이 차가울 때 어떻습니까?”

설봉이 말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봐도 밑(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스님이 말했다.

“마신 사람은 어떻습니까?”

설봉이 말했다.

“입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뒷사람들이 단지 “대답하지 않겠다(不答話)”고 한 것만 가지고 이런 식으로 안다면 나귀 해나 되어서야 꿈속에서라도 보게 될 것이다. 분양(汾陽, 분양선소)은 이를 일러 ‘예나 비유를 빌려 자기를 밝힌 것(借事明己)’라고 한다.

古澗寒泉時如何 ?目不見底 此明他脚?下事. 雪峯是一千五百人善知識 依前用他問處 答道 ?目不見底. ?他問道脚?下事. 似古澗寒泉相似 這老漢不妨親切. 古人道 “問在答處 答在問處” 不見僧問雲門 “佛法如水中月是否” 門云 “?波無透路” 且道 是同是別.

“옛 골짜기에 샘이 차가울 때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봐도 밑(바닥)이 보이질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의 발꿈치 아래의 일(脚뫄下事, 본분대사)을 밝힌 것이다. 설봉은 천오백인선지식(一千五百人善知識)이라서 여전히 그가 물은 것에 의해서 답을 해 말하기를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봐도) 밑바닥이 보이질 않는다”고 한 것인데, 그렇다면 그가 물은 것이 발꿈치 아래의 일을 말하는 것인가? 마치 옛 골짜기에 차가운 샘물과 같으니, 이 노장이 아주 친절했다. (그래서) 고인(古人, 남원혜옹)이 말하기를 “물음은 답에 있고 답은 물음에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보지 못했는가!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에게 물었다.

“불법이 마치 물속의 달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운문이 말했다.

“맑은 물결엔 꿰뚫은 흔적이 없다.”

자, 말해보라! 같은가, 다른가?

一手擡一手駟(일수대 일수닉)은 추켜올리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하였다는 뜻이다

차사문(借事問)은 분양선소 선사가 학인의 물음을 18종으로 분류한 것 중의 하나로 예나 비유를 빌려서 묻는 것을 뜻한다.

“그가 물은 것에 의해서 답을 해 말하기를”이라는 뜻은 그가 그렇게 물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이라는 뜻이다.

問在答處 答在問處(물음은 답에 있고, 답은 물음에 있다)는 선림승보전에 남원혜옹 선사의 말씀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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