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이해의 길 5

‘근본’이라는 단어는 그 뜻이 시비(是非)를 초월한 단어다. 그런데 그 단어가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종교다. 종교적 분쟁이나 갈등이 일어날 때면 해당 종교의 이름 뒤에 ‘근본주의’라는 용어가 자주 따라붙기 때문이다. 종교적 분쟁이나 갈등은 각자의 종교가 자신들의 종교에 집착해서 다른 생각과 방식을 무조건 이단으로 취급하고 배척하는 데서 발생한다. 종교에서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는 교리의 근본에 충실하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종교에서 ‘근본’이라는 단어가 본래 뜻과는 다르게, 분쟁과 갈등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근본’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섞이기 시작했다. 이런 부적절한 사회적 현상의 영향이 불교에도 조금은 미친 것 같다. ‘근본불교’라는 용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불교는 결코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가르침도 널리 포용하는, 그야말로 ‘열린’ 자세를 지향한다. 석가모니 붓다의 근본 가르침 자체가 본래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불교가 대승불교, 선불교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어떤 의미와 중요성을 지니고 있을까?

근본불교란 석가모니 붓다가 입멸한 후 100년까지의 불교를 가리킨다. 붓다 입멸 후 100년이 지난 시점에 붓다의 가르침과 계율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교단은 전통을 지키려는 상좌부(上座部)와 개혁적인 대중부(大衆部)로 분열한다. 다시 상좌부는 10개, 대중부는 8개로 분열하여 총 20개의 부파가 활동하는 부파불교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부파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독립적인 아비달마(abhidharma), 즉 논서를 갖춘다. 근본불교는 이러한 분열이 시작되기 전의 불교이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근본불교는 원시불교나 초기불교 등으로도 불린다. 혹은 불멸 후 30년까지, 즉 붓다와 제자들이 활동했던 시기를 근본불교라 하고 그 이후 100년까지를 원시불교라 구분하기도 한다. 근본불교는 석가모니 붓다의 깨침을 원천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인 연기(緣起)와 삼법인(三法印),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등의 가르침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와 선불교라는 옷을 입고서 불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근본불교를 다소 소홀히 대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는 붓다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의 근본정신을 담고 있는 근본불교는 대승불교의 기초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불교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으니, 어찌 보면 한국불교는 기초공사가 부실한 상태에서 건물을 올린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일이다.

또한 우리는 대승과 소승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붓다의 근본 가르침인 근본불교를 소승불교와 동일시해왔다. 소승(hina)은 ‘열등하다’는 뜻인데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열등한 가르침이라 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대승불교라는 자만과 소승불교에 대한 편견, 그리고 근본불교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낳은 결과다. 다행히 요즘은 소승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졌고, 빠알리어로 된 <니까야>가 널리 소개되어 가공되기 이전의 붓다의 원음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호에서 불교를 100층 건물에 비유하였다. 그런데 ‘붓다 빌딩’은 처음부터 100층으로 올린 것이 아니다. 1층을 세우고 차례대로 2층, 3층, 10층, 100층까지 증축한 것이다. 근본불교는 바로 ‘붓다 빌딩’의 1층이다.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 ‘붓다 빌딩’을 세우고 증축할 때는 승강기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4층이나 5층을 가기 위해서는 각 층의 계단을 밟으면서 걸어야 했다. 건물이 높아지면서 붓다 빌딩에 승강기가 설치되자 20층이나 80층까지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층에 어떤 사무실이 있는지 모른 채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잊지 말기로 하자. 100층을 올라갈 때도 승강기는 근본불교가 들어서있는 1층에서 타야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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