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지중해를 보았다

이지형 지음/최청운 그림/디오네 펴냄/1만 3천원

<금강경> 메시지에 공감해 요리 시작
음식 이야기에 감성 더한 ‘푸드 에세이’

적어도 10년 전만 해도 부엌은 한국 남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TV 방송서나 일반 가정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남자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바야흐로 부엌은 이제 남녀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조금은(?) 평등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부엌에서 지중해를 보았다>의 저자 이지형은 푸드칼럼니스트이다. 대한민국 평범한 남자처럼 그의 일상도 비슷했다. 직장서 일하고, 일과 후에는 사람들과 술 한잔 걸치고, 주말이면 소파서 피곤함을 달래고 TV와 친구하고 등등. 그랬던 그가 어느 날 TV를 끄고 거실 소파를 떠나, 식탁을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이 제자 1250명과 함께 있다가 밥때가 되자 제자들을 이끌고 발우를 든 채 성으로 들어가 밥을 얻었다. 그리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옷과 발우를 거둔 후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니…….”

바로 〈금강경〉 때문이었다. 저자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진리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곳이 밥 먹고 설거지하는 일상”이라는 〈금강경〉의 메시지에 공감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부엌에 들어가 한 손에 식재료, 한 손에 칼을 들고 거룩하고 숭고한 마음으로 음식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일상이 되었고, 부엌은 저자에게 신비한 공간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알아차렸다. 부엌에서도 삶의 위로와 안락을 누릴 수 있다고.

저자는 이제 일상서 기분이 가라앉을 땐 색이 고운 음식을 만든다. 거기서 끝났다면 이 책은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조용히 살피고 찬찬히 맛보면서 떠오르는 이야기와 감성적 영감들을 적어 내려 갔다. 이 책은 그간의 결과물들을 한 권으로 모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푸드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에서 소개된 음식과 재료들서 느끼는 저자 특유의 감성적 조각들을 쭉 펼쳐 놓으면 어메리칸 퀼트처럼 형형 색색이다. 이 책에는 미역과 홍어, 도다리쑥국과 샐러드, 그리고 기타 등등의 요리와 음식(술도 포함)을 통해 달고 시고 쓰고 짠 우리네 삶과 세상을 여여히 관조하는 음식 이야기와 감성이 가득 담겨 있다. 저자가 찬찬히 관조하며 음식에 감성이란 양념을 가미했듯, 책을 읽다보면 감성의 과식에 빠져 책 제목처럼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부엌은 저자에게 음식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선 일종의 거처가 되었다. 그는 부엌을 통해 다른 세상서 느낄 수 있는 삶의 황홀함을 맛본다. 그래서 날도 채 밝지 않은 코발트 빛이 짙은 새벽. 밤새 인적 없던 적막한 부엌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저자는 깊은 산속을 헤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슬 맞은 대나무 잎들 파르르 흔들리는, 단아한 숲의 끝자락에 자리한 산사(山寺)를 향해. 그곳에서 저자는 날마다 선(禪)을 맛본다. 칼과 도마와 냄비와 프라이팬을 차례로 바꿔 들고, 갖가지 식재료를 씻고 썰고 익히면서 세상을 관(觀)한다. 이 책은 그렇게 나온 요리 주변과 전후의 이야기들을 끌어 모은 것이다.

임성한 드라마 작가는 추천사를 통해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고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극한 모성으로 아들에게 정성 음식을 만들어 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본받아, 아내와 자녀들에게 영양가 있는 아침을 차려 주고 출근하는 아빠의 속 깊은 사랑. 읽으며 가슴이 따뜻해지고,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엄마의 밥상이 그리워지고 영혼이 위로되는 책이었다. 나에게는”이라고 밝혔다. 책 표지 만큼 글 내용도 예쁘다. 여기에 최청운의 감각적인 일러스트도 한 몫 한 것같다.

▲저자 이지형 푸드칼럼니스트는?
매일경제신문에 〈이지형의 식탁정담〉, 주간조선에 〈맛기행〉을 연재했다. 100쪽 남짓 분량의 주담(酒談) 〈소주 이야기〉를 썼다. 에세이집 〈주역, 나를 흔들다〉와 〈강호인문학〉, 〈끝에서 시작하다-시베리아에서 발트까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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