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함이 주는 자유와 든든함
검소함이 주는 자유와 든든함
  • 남혜경 전문코치
  • 승인 2019.07.09 14: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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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상류층 여성의 독립 선언

마흔 넘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 상담심리학 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비정규직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52세의 난희 씨. 대기업 중간관리자인 남편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월급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려 아내가 필요한 만큼 생활비와 학비를 대준다. 돈 걱정이 없는 그녀는 해외여행을 자주 하고 대형 승용차를 끌고 다닌다. 외동인 딸아이는 일찍 호주로 유학 보내 대학 재학 중으로 1년에 2-3개월은 호주에 머물다 온다. 경제수준으로 따지자면 상위 몇 %에 속하는 호강하는 팔자, 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의 벌이에 의존한 여성
자존감 회복의 기회 필요
검소함 통해 자유를 얻다

공부하며 품위 있게 즐기는 인생으로 고민이 없을 것 같던 난희 씨의 코칭 이슈는 뜻밖에 ‘남편으로부터 독립하기’ 였다.

고교 동창인 남편과는 10년 넘게 사귀다가 군 복무를 마칠 때를 기다려 결혼했다. 유치원교사로 일하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편은 재테크 수완이 좋아 마흔도 되기 전에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남편의 수입은 점점 늘어났고 지금 그녀는 남편 재산이 얼마인지 부동산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른다.

“가진 돈이 많아지면서 남편이 차츰 변해갔어요. 학생 때는 총명하고 사회정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빈민촌 봉사를 같이 했습니다. 여행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줄도 알았죠. 40대까지는 직장생활에, 돈 버는 데 바빠서 그런가보다 했지요, 매일처럼 술자리를 하고 주말이면 사교골프를 나가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벌 만큼 벌어 평생 쓰고도 남을 정도인데 돈 버는 일을 멈추지 않아요.”

돈 벌어다주면 그만이라는 남편

그녀는 남편과 집안 경조사나 돈 문제 외에 대화를 나눈 기억이 흐릿하다. 어쩌다 시국이나 사회사건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녀는 변해버린 남편에게 질리고 만다,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열악한 업무현장에서 과로사 했다는 뉴스를 보며 한마디 했더니 남편이 버럭 하더군요. 그따위 가벼운 동정심 따위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단순한 사고를 두고 노동자 처우가 어떻다느니 확대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힘든 노동자의 죽음을 그리 가볍게 말하다니 비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듯 무심했고, 딸아이 교육이나 집안일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떠맡겼다. 그녀가 반발하거나 따져볼 요량이라도 하면 폭언을 하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점점 부부가 아니라 월급 주는 사장과 일꾼의 관계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의 생각이나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습니다.”

요즘 남편은 회사 앞에 오피스텔을 얻어 주로 거기서 생활하고 집에는 가끔 들린다. 그녀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알아보았자 어떻게 할까 싶고 거칠고 독선적인 남편과 맞서는 게 무섭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의 등만 바라보며 늙어가기 서글퍼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 관심 있던 분야여서 공부는 재미있었고 박사 학위과정까지 끝내 논문 통과만 앞두고 있다.

“막상 공부가 끝나가려니 앞날에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남편과 저의 부부 관계를 깊이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 것 같지 않고, 제가 아내로서의 자리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갈라서든지, 함께 살더라도 존중받는 아내가 되려면 우선 무엇으로든 남편에게 의존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궁핍함을 견딜 수 있을까 두렵다

남편에게서 독립한다는 이슈로 난희 씨와 나눈 코칭대화는 이랬다.

- 남편으로부터 독립이란 구체화시키면 뭘 말하는 것인가요?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남편의 지원이 없어도 혼자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 남편의 지원이 없을 때 가장 염려되는 게 무엇인가요?

“홀로 늙어갈 거라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모든 것이 두려웠어요, 외롭고 가난한 독거노인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하나씩 따져보니 지금도 거의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예요. 결국 돈 문제더군요. 경제력만 해결되면 용기를 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독립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필요한지 설계해보셨나요?

“사실 지금보다 많이 궁핍해진 생활을 감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아직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박사학위를 딴다고 해도 고용이 안정된 직업을 가질 확률은 높지 않다. 운이 좋아 그런 일지라기 생긴다고 해도 은퇴 시점이 10 여 년 밖에 남지 않은 나이였다.

- 지금의 생활수준을 지키는 것과, 남편에게 존중받는 아내가 되는 일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요?

“ 물론 남편에게 존중받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 결국 남편의 고압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를 참으며 유복함을 누리느냐, 풍요함을 포기하고 자존감을 지키며 사느냐의 선택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 그렇군요. 안락함과 나의 존엄을 맞바꾸고 있네요. 맞아요. 지금은 굴욕을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굴욕’이라고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다.

난희 씨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뭐든 할 자유와 하지 않을 자유

돈이 많으면 뭐든 할 수 있어 자유롭다. 난희 씨가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왔다면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기가 쉬울지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경제력이 없어 남편을 견디며 사는 부자유를 감수하고 있다.

이럴 때, 관점을 바꿔보자. 거꾸로 보면 가진 게 없을 때 자유롭기도 하다. 풍요와 안락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다. 그녀가 검소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만큼 새로운 생활에 두려움이 적을지 모른다. 가진 게 많아 뭐든 할 수 있는 자유만큼, 부족함을 견딜 수 있다면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소중하다.

난희 씨는 전업주부로 충실하게 사느라 자신의 경제력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유복함의 대가로 자신의 존엄을 해치고 굴욕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서 벗어날 자유를 선택할 수는 있다. 궁핍이라는 대가를 치르기로 한다면.

붓다의 가르침 중에 빠지지 않는 덕목이 검소함이다.

재물에는 불이 따라 다니고, 물이 따라 다니며, 왕이 따라 다니고, 도둑이 따라 다니며, 바람직하지 못한 상속자가 따라 다닌다. 재물에 들어 있는 다섯 가지 재난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재물의 경〉

재물은 재난을 부르고 불화를 부르며 탐욕을 부른다는 경계이다. 붓다께선 재물의 효용도 인정하고 있다. 역시 같은 재물의 경에서 재물이 주는 5가지 즐거움을 덧붙이고 있다,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수행자와 성직자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돌보니 그게 다섯 가지 공덕이라고 하였다. 붓다의 말씀은, 재물을 적절히 사용하면 효용가치가 크지만 탐닉하거나 집착하면 화를 부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검소함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다

5개월 뒤 난희 씨와의 리마인드 코칭이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집을 나와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서울 외곽 단독주택의 2층을 빌려 산 지 석 달째라고 했다.

“이대로 살 수는 없고 1년만 나가서 살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보겠다고 했지요. 남편은 무덤덤하게 맘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나는 1년 치 월세는 달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 권리는 있으니까요, 지금 백 만 원 조금 넘는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어요. 남편과 살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철저하게 예산을 짜서 거기에 맞춰 생활한다. 일주일치 식단을 짜서 마트에서 장을 보고 냉장고가 빌 때까지 있는 찬으로 밥상을 차린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영화나 공연은 대폭 할인되는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피트니스 클럽서 하던 운동 대신 저녁마다 강변과 공원을 몇 시간씩 걷는다,

“처음엔 서러운 마음에 울면서 걷기도 했어요. 이 나이에 뭔 짓인가 하고요. 근데 생활비 벌기도 바쁘다 보니 서러울 시간이 자주 안 나요. “

그녀는 상담일을 하는 외에 동네 협동조합에서 주말에만 나가는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 주인집 정원을 돌본다,

“이 돈으로 한 달을 살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자신이 뿌듯해요.”

그녀는 무엇보다 더 이상 남편을 떠나 있어도 두렵지 않다는 게 앞으로의 시간에 큰 용기를 준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보니 왠지 든든해요. 무슨 일이 생겨도 지금처럼 살면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더 힘들어지면 하루 세 끼를 두 끼로 줄이면 되지요. 일주일에 한번 절에 가서 울력을 하는데, 안 되면 여기 와서 공양보살이라도 하지 싶더라고요. 제가 음식솜씨는 좋다는 소리는 듣거든요.”

그녀는 지금이 유예된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하지만 시도를 해보았다는 것, 용기를 내보았다는 것, 무엇보다 검소함이 주는 자유와 든든함을 깨칠 수 있었다는 게 큰 변화라고 말했다.

그녀가 예전보다 궁핍해진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망설임과 좌절도 따르겠지만, 검소함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몸과 마음에 내 것이란 생각 없고

그것이 없어진다고 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사람

그를 수행자라 부른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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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2019-07-16 08: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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