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보지 않으면 모를 시코쿠 순례길

산 아래 감춰진 듯 자리한 엔코지
코보 대사가 샘 파고 가피를 내려
범종을 거북이가 가져왔단 전설도

홋카이도 만담 콤비 등 순례 인연
걸어봐야 보이고 만날 수 있는 것

39번 엔코지 전경. 좌측이 대사당, 우측이 본당이다. 본존은 약사여래다.

무엇인가 원인이나 이유가 없이 현상이 일어나는 법은 없다. 아무리 삿갓이 특이하고, 한국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자동차로 이동할 수가 생긴 것은 의아하기 그지없다. 38번 사찰을 뒤로 하고 걸어가려다가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할아버지에게 다시 잡히고 말았다.

“여기서 지금 차를 타고 가면 39번 엔코지(延光寺)의 납경에 맞게 도착할 수 있는데?”

할아버지는 어차피 집에 돌아가려면 지금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게 가장 빠르고, 그 길이 39번과 이어지는 길과 겹치는데다가 39번까지 가는 게 오히려 자택이 가깝다며 다시 내 배낭을 빼앗듯이 붙잡았다. 결국 차를 타고 39번 엔코지를 향하게 됐다.

엔코지에 도착했을 땐 오후 4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엔코지는 코보 대사가 물이 없어 곤란한 사람들을 위해 샘을 파고 가피를 내린 곳에 세워진 사찰이다. 전설에는 이 사찰에 걸린 범종을 붉은 거북이가 등에 짊어지고 용궁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엔코지는 산 아래에 감춰지듯 자리 잡은 사찰. 어떻게 거북이가 여기까지 종을 가져왔나 하고 궁금할 따름이다. 그러한 연유로 경내엔 종을 가져오는 거북이의 석상이 놓여 있고, 사찰의 납경도장에도 거북이가 모티프로 되어있다.

참배를 하고 납경까지 깔끔하게 완료하고서 사찰의 앞마당으로 나아가보니 할아버지가 대여섯 명의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들 오늘 이곳이 마지막 일정인 듯 여유로워 보였다.

“오, 왔네요. 다들 인사해요. 한국에서 온 박상이야. 한국에서 불교를 공부한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소개로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일본 전국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는 순례자들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순례자는 홋카이도에서 왔다는 콤비. 이번 순례를 마치고 출가하기로 결정했다는 코에이 씨와 목덜미를 잡혀왔다는 친구 오바 씨. 코에이 씨는 내 법명인 지산(智山)을 보고서, 자신의 성과 같은 ‘토모(智)’자를 쓴다며 반가워했다.

출가를 결심한 계기를 묻자, 코에이 씨는 단박에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어느 종단으로 하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나라(奈良)에 있는 킨푸잔(金峰山)으로 출가한단다. 일본불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산(靈山)중 한 곳이다.

혹시 오바 씨도 함께 출가하냐는 질문에 코에이 씨는 손을 내저었다. “대신에 내가 불교에 대해 많이 주입을 했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며 친구 오바 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이, 오바. 임제종이 뭐지?”

그러자 “선종이잖아? 잇큐(一休)스님이 들어있는”라고 답이 돌아왔다. 곧바로 코에이 씨가 니치렌(日蓮)스님이 누구냐고 묻자 오바 씨는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코에이 씨는 “이거 봐, 척하고 나오잖아”라고 자랑했다.

너무나 천진하게 나오는 문답이 꼭 만담 같아서 그만 길 위에서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도 참가해, 셋이서 서로 깔깔대며 길을 나아갔다. 그 중에는 코에이 씨 할머니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었다.

코에이 씨 할머니는 집에서 기도할 때 불전함에 약간의 돈을 올리곤 한다고 말하자, 곧바로 일행은 모두 사찰에 보시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코에이 씨. 이내 “우리 할머니, 파칭코를 엄청 좋아하시거든”이라는 답이 나왔다. 놀라는 일행에게 코에이 씨는 할머니의 명대사를 전했다. “우리 할머니 말씀이 ‘부처님이 주신 돈으로 하면, 대박이 잘 터져’라시더라고….”

의아해하는 나와 오바 씨에게 코에이 씨는 “중생의 탐욕을 제도하시려고 부처님이 파칭코 슬롯으로 화현하신 거야”라고 말했다. 이유도 재치가 넘쳤다.

“돈을 모두 가져가시는데? 부처님 맞아요?”
“왜! 무소유를 실천하도록 도와주시잖아.”

이야기 하는 힘을 빌려 쉬지도 않고 10km 정도를 나아갔다. 순례자들이 묵을 수 있는 휴게소가 있는 곳 까지 함께 걸었다. 홋카이도 콤비도 마침 텐트를 가지고 다니며 노숙순례를 하는 지라 오늘 묵을 포인트가 나와 같았다.

휴게소에 도착해서 보니 꽤나 북적인다. 아까 39번에서 본 사람들 대부분이 모여 있다. 다들 여기서 묵는다고 한다. 꽤나 큰 휴게소 안에 장정 8명 가량이 텐트며, 매트를 여기저기 깔고 있으니 작은 순례자 마을이 되었다.

한쪽 구석에선 버너와 냄비를 꺼내서 저녁식사를 만들고 있고, 다른 순례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으니 꽤나 떠들썩한 시간이다. 나도 저녁을 먹으려고 미숫가루를 꺼내 반죽하고 있으려니 중년의 순례자가 냄비를 들고 온다.

“여기, 소시지를 좀 볶았는데 먹겠습니까?”
“먹을 것은 거절하지 않죠. 감사합니다!”
“근데 뭐 만드는 겁니까? 빵인가요?”
“아닙니다. 한국의 미숫가루입니다. 좀 드실래요?”
“저도 먹을 건 거절하지 않죠!”

먹을 것을 계기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래도 더운 날 순례를 하다보니, 몸이 힘들었던 기억을 주로 이야기 하게 된다. 처음 순례를 왔을 때 아무 생각도 없이 걷다가 일사병과 탈수증으로 쓰러졌던 이야기를 했다.

“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 저 멀리 대사님을 뵌 거 같기도 하고….”
“정말로 쓰러져 죽는 사람도 나오니 조심해야 합니다. 지난달 어느 순례자가 21번 올라가는 등산로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기도 했죠.”

그 이야기에 내가 화들짝 놀라자 홋카이도 콤비가 옆에서 슬쩍 끼어들었다.
“맞아요, 그런 뉴스가 있었죠! 하필이면 우리가 순례를 시작하고 얼마 안돼서 그런 일이 생겨서 친구며, 집이며 하루에 몇 통이나 전화가 왔었습니다.”

순례를 하면서 뉴스를 잘 보질 않으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야기를 시작한 아저씨는 반응을 한창 듣더니 이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시체를 봤을 땐 정말 놀랐어요. 21번 산문 조금 못 미쳐서 할아버지가 누워 있길래 ‘영감님, 어디 아프세요’하고 물어봤는데 이미 돌아가셨더군요. 산문 근처여서 시신 수습이 용이했지 아니면 정말 힘들 뻔 했습니다.”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지자 아저씨는 시코쿠 순례의 기원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래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제대로 된 시코쿠 순례 아니겠는가. 원래 이 길은 사자(死者)의 길이니까.”

길가에 종종 옛 순례자들의 무덤을 보곤 하지만, 현대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놀라울 뿐이다. 순례 중에 사고를 당한 이야기는 종종 회자되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모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작은 순례자 마을이 떠들썩해졌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에 길을 가던 동네 주민들도 하나 둘 이끌려 다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됐다. 덕분에 앞으로의 순례길, 새로운 루트나 편의시설에 대한 정보들이 손에 들어왔다. 

아마 도보로만 고집해서 길을 걸었다면 이처럼 멋진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리라. 이런 결과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붙잡혀 차를 타고 온 게 아니겠는가. 시코쿠 순례길은 역시 와보지 않으면 모르고, 직접 걸어보지 않으면 말할 없는 일들이 정말로 가득하다.

TIP

홋카이도에서 온 콤비. 이들의 대화는 마치 만담처럼 이어졌다.

- 37번-38번-39번 사찰로 이어지는 길은 숙소나 상점이 드문 편이니 주의하자.
-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38~39번을 순례하는 방법도 있다. 단, 순례길과 겹치지는 않는다.
- 39번 사찰에서 다음 사찰을 향하는 길은 국도를 타는 루트와, 산을 넘는 루트가 있다. 우회하게 되지만 국도를 타는 루트가 숙소를 정하기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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