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 언제나 할 수 있어야 한다
禪, 언제나 할 수 있어야 한다
  • 의정 스님/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 승인 2019.07.0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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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아카데미 대강좌
주제 : 선종의 아름다움

대승불교 중심 자리 잡은 ‘선종’
선수행 발달 따라 수행법 확립
계·정·혜 삼학 따로 보지 않고
경계 흔들리지 않는 상태 중요

보리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를 도입, 이후 중국에서는 대를 거치며 선종이 형성됐다. 6조 혜능으로부터 본격화된 선종은 현재 대승불교에서 독특한 수행가풍을 정립했다. 특히 한국불교에 간화선이라는 한국 특유의 수행법이 정착하는 시초가 됐다. 한국참선지도자협회가 운영 중인 제2기 참선아카데미 대강좌에서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의정 스님은 621일 법사로 나서 중국에서 시작된 선종의 역사와 선종의 특징, 화두수행의 가치 등을 설명했다. 정리=윤호섭 기자

의정 스님은…  1973년 봉선사에서 운경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법주사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인천 용화서 선원에서 송담 스님을 스승으로 안거 수행했으며, 2000년 양평 상원서 용문선원을 사제들과 복원해 선원장으로 취임했다. 조계종단 수행지침서 간화선 편찬위원과 선원청규 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의정 스님은… 1973년 봉선사에서 운경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법주사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인천 용화서 선원에서 송담 스님을 스승으로 안거 수행했으며, 2000년 양평 상원서 용문선원을 사제들과 복원해 선원장으로 취임했다. 조계종단 수행지침서 간화선 편찬위원과 선원청규 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부처님의 사상은 철저하게 불살생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 원칙 아래 열심히 수행하고, 수행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죠. 이 정신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불교역사에서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원시불교부터 초기불교, 부파불교 등을 거쳐 대승불교가 탄생했고, 대승불교의 중심에는 선종이 있습니다. 선종은 불교에서도 조금 독특한 점이 있는데요. 오늘은 선종의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부처님이 계셨던 인도는 한 마디로 수행자들의 천국입니다. 인도는 날씨가 매우 더워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먹고 남은 음식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적당히 만들고, 적당히 먹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발우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사람들도 버릴 수밖에 없는 음식을 수행자에게 공양할 수 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보시했죠.

부처님은 손수 발우를 들고 제자들과 탁발을 다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좌선하다가 6시가 되면 밖으로 나섰습니다. 다만 탁발할 수 있는 집을 7집을 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탁발한 것을 가지고 돌아와 서로 나눠 먹었습니다. 부처님은 탁발이 끝나고 제자들이 찾아와 궁금한 걸 물어보면 가르쳐주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법문하고, 남은 시간엔 좌선을 했습니다. <금강경>에도 잘 나오는 부처님의 일상이죠.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를 가져옵니다. 중국은 당시 유교와 도교가 지배하는 사회였는데요. 중국 승려들은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탁발에 나섭니다. 하지만 유교사회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무위도식하는 걸 굉장히 경계했습니다. 그것은 스님들에게도 마찬가지였죠. 저도 어렸을 때 스님들이 탁발하러 나온 것을 보고 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탁발에 어려움을 겪은 중국 스님들은 결국 산중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8세기경에 선종의 6조 혜능에 의해 최초로 조사선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혜능 스님의 손자뻘 되는 마조 도일이 완성합니다. 또한 마조의 제자인 백장 혜해 선사 때 와서 겨우 선종이 독립합니다. 이전까지 선종 스님들은 처소가 없어 율종 스님들에게 얹혀 살았습니다.

하지만 율종 스님들은 하루 4번 예불하고 계율을 지키는 데 전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선종과는 수행방법이 맞지 않아 고생이 많았죠.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하게 된 선종은 백장 혜해 선사를 중심으로 총림선원을 만들고, 백장청규를 제정합니다. 선종 최초의 규범인데요. 1천여 명의 스님이 함께 살아야하니 규범이 필수적이었죠. 또한 선원에 맞는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그 이후로 청규는 중국과 일본에서 많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기로는 중국에 11, 일본에 9개 정도가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엔 청규가 단 1개입니다. 그마저도 2010년도에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 너무 많이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청규 만들어진 배경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었습니다. 당시 중국불교는 20~30년간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고, 한 세대가 붕괴돼버렸죠. 그러면서 선원서 지켜야할 규범이라든가 발우공양, 좌선 등 문화를 잊게 됐고, 중국불교는 한국에 와서 다시 배워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불교, 그리고 21세기에 맞는 청규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중국도 우리에게 배워가니 말입니다.

불교와 수행법 모두 발전
어쨌든 고생 끝에 탄생한 선종과 육조의 조사선은 불교의 혁명으로 평가됩니다. 그렇게 선종을 최상승 불교로 여기게 됐죠. 선종이 탄생한 이후 불교는 수행방법에서도 발전을 이룹니다. 이전까지 계··혜 삼학을 따로따로 여기던 것을 선종은 하나로 봤습니다. 계율을 지켜 선정을 닦고, 그래야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같이 이뤄진다고 본 겁니다.

한국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도 그렇습니다. 남방불교의 관법과는 접근이 조금 다른데요.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니기에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동시에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혜쌍수의 중요성도 점차 확산됐죠.

간화선은 화두를 통해 수행합니다. 요즘은 화두수행이 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말이 많은데 선사들이 그동안 수행에 전념하느라 포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간화선을 몰라서 이해가 부족하고, 결국 오해가 생겨난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60세가 될 때까지 꼼짝 않고 선방에만 있었습니다. 적어도 수행자가 그 정도까지는 수행력을 푹 익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제 주위에는 70, 80세가 넘어도 선방에만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행 욕심이기도 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서지요.

아무튼 화두 의심을 품으면 선정과 지혜가 동시에 옵니다. 선수행은 어디에도 없는 수행방법이었습니다. 불교가 발달하고 진화해왔듯이 수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까지 화두수행을 뛰어넘을 만한 수행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1400년이 지나 화두수행이 생겨난 것처럼 이제는 또 다른 수행법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육조 스님이 돌아가신지 1300년이나 지났으니까요.

좌선은 불교의 근본적인 수행이지만 육조 스님은 오래 앉아 있는 걸 좌착이라고 했습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 일상에서 선정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그래서 마조 스님은 평상심이 도()라고 했습니다. 도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아무 때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마를 때 차를 마시면서 이뭣고화두를 들고, 배고플 때 밥 먹으면서 이뭣고화두를 들면 되는 겁니다.

원력을 갖고 수행하라
하루는 백장 스님에게 제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곤충이 죽는데 죄가 됩니까?” 백장 스님은 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답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묻자 삼구(三句)를 통과한 사람은 죄가 없고,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장 스님의 주요 선이론이 삼구인데요. 일구는 일체법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구는 일체법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고요. 삼구는 일체법을 의지하지도 않고, 의지한다는 생각도 없어 마음이 허공 같아진 상태입니다. 물론 허공 같아져도 그렇다는 생각조차 내지 않는 단계입니다. 그렇기에 거기에 무슨 죄가 붙고 안 붙겠습니까. 그래서 백장 스님은 삶 전체가 청정자성이기 때문에 아직 깨닫지 못한 이는 발심하라고 당부합니다.

청규에 나오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선종에서는 선농일치라고 해서 선과 노동을 일치화했는데요. 노동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기완성을 위한 노동을 했습니다. 백장 스님의 제자인 황벽 희운 선사는 한동안 사숙인 남전 보원 선사를 모셨습니다.

당시 봄이 되면 모든 대중이 산에 올라가 나물을 뜯었는데요. 나물을 다듬으러 가는 황벽 스님을 보고 남전 스님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황벽 스님은 나물 다듬으러 간다고 대답했죠. 남전 스님은 다시 나물을 무엇으로 다듬느냐고 물었습니다. 황벽 스님은 대답은 않고 칼을 번쩍 들어 보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표현한 겁니다. 그냥 다듬는 게 아니라 나와 화두가 일체화되고, 그런 상태에서 칼로 나물을 다듬는 것이죠. 나와 칼이라는 사물이 하나가 되는 겁니다. 물아일체죠. 수행의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화두 일치로 무념이 되고, 사물과 일체가 되는 경계를 말합니다.

중국 북송 때의 시인인 소동파는 경계를 무념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수행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평생 천만가지의 경계에 부딪힙니다. 칠정이 경계를 따라 계속 일어나고, 결국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어떤 분별도 없는 무념, 나와 화두가 일치되는 그 상태를 최고로 봅니다.

요즘 우리사회는 이기주의에 빠져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은 개인, 단체는 단체, 국가는 국가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수행밖에 없습니다.

<유마경>에서 유마거사가 다른 세상의 보살 900만 명과 사바세계에 왔을 때 그 보살들은 중생의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고집불통인 중생들을 어떻게 교화하면서 사냐고 묻습니다. 유마거사는 큰 원력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원력으로 살아야 한 중생이라도 구제할 수 있다고 말이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이 땅은 부처님의 정토인데 중생들은 부처님 가르침과 정반대의 삶을 삽니다. 그렇기에 큰 원력을 갖고 사는 이는 누구보다 행복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불교를 공부하고 또 수행하면서 현실을 정토로 만들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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