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경북 문경시 묘적암

 

신라말 부설 거사 창건
나옹 선사 출가 도량
요연과 문답 후 유행길 시작
사면석불 내려 보는 자리
나옹, 무학, 함허 등 수행처
근현대, 경허ㆍ청담ㆍ성철도
안거철엔 묘적의 선방

 

“등산로 없음, 참배객은 조용히” 암자 입구에 걸린 안내문이다. 더 이상 길은 없다. 길은 끊어지고, 그 길 끝엔 깊은 고요뿐이다. 그리고 그 적적함과 적적함 속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길 없는 길’이다. 어디를 보아도 길은 없고, 어디를 보든 그것이 길이다. 닿고자 하는 만큼 길은 보이고, 보고자 하는 만큼 길은 다가온다. 다른 길을 찾아 돌아설 것인가. 아니면 깊은 적요가 내어주는, 길 아닌 길을 나서볼 것인가. 적적함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 보이는 길. 그 길의 이름은 묘적암(妙寂庵)이다.

불산(佛山)에 깃들다
경상북도 문경시 사불산(四佛山). 공덕산(功德山)이라고도 한다. 587년(진평왕 9) 죽령 동쪽 산꼭대기, 사방에 여래상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하늘에 떨어진다. 사면석불상이다. 이때부터 사불산으로 불렀다. 물론 전설이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이라는 것 역시 먼 훗날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이다. 하늘에서 불상을 새긴 바위가 떨어졌다. 어느 시절의 생각이 그 시비(是非)를 끊을 수 있을까.

임금이 사면석불상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를 찾아 예배한 후 서쪽에 가람을 연다. 대승사다. 묘적암은 대승사 산내 암자 중 하나다. 대승사에서 약 1km정도 거리에 있다. 대승사에서도 묘적암에서도 사면석불상이 보인다. 불상이 따로 필요 없다. 역사에서 바라보면 대승사와 묘적암의 주불은 산꼭대기의 사면석불상이다. 산꼭대기에 부처님을 모신 사불산은 그야말로 산 자체가 도량인 셈이다. 어느 곳이든 마음 내려놓는 곳이 법당이다. 묘적암도 그 중의 한 자리다.

소리 없는 자리
더 이상 길이 없다는 안내문을 지나면 그때부터 산문이다. 작은 철제 바리게이트에 걸린 몇 자의 글이 세상을 둘로 나눈다. 산문의 안과 밖. 더 이상 길이 없다는 안내문이 아니라면 산문은 어디서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글 몇 자에 마음은 둘이 된다. 마음이라는 것이 안에 있는 것인지 밖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안내문에서 도량이 가까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도량의 그림자는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걸까. 걸음은 막연하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막연한 일이다. 막연한 걸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20M 정도의 언덕길을 오르고 나면 홀연히 암자가 나타난다. 원목의 무늬를 드러낸 목조의 집 한 채, 세월보다 더 세월처럼 보이는 집 한 채가 소리 없는 편액과 함께 서있다. 최소한의 담장과 최소한의 마당 그리고 최소한의 문과 창호. 묘적암이다.

어떤 길로 어떻게 왔는지에 따라 묘적암은 다르다. 산 아래 큰 절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면 더 이상 길이 없다는 입구의 안내문과 그 끊어진 길 끝에 서있는 암자의 풍경은 설법으로 다가온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만난 것들, 품은 것들, 버린 것들이 있어 길은 시간이었고 기회였다. 그 길이 없었다면 ‘끊어진 길’은 없었을 것이며, 끊어진 길 끝에 설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길이 없는 길에 서있는 ‘나’를 본다.

한 걸음 한 걸음 지나온 길 없이 바로 묘적암 앞에 섰다면, 그 최소한의 풍경은 어느 조사의 이름에서도 본 적 없는 선문(禪問)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답을 품고 물어온다. 오늘 이 자리, 놓을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잊을 수 없는 것. 마음이 바빠진다.

안내문 그대로 더 이상 발로 걸어야 할 길은 없다. 올라야 할 길은 없다. 소리 없는 것들이 만들어낸 풍경과 그 풍경에 머무는 길 뿐이다. 6월 어느 날의 햇살. 같은 자리에서도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는 푸른 나무들. 그래서 또 한 번 완벽해지는 숲, 숲. 무릎을 접고 땅이 되어야 볼 수 있는 개망초의 얼굴. 우리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가진 개미들.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들과 함께 사는 나비들. 불가적 지붕과 고요한 편액. 그리고 한 철 조용히 깃든 법손. 모두 소리 없는 것들이다.

또 다른 길, 묘적암
남을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법당. 문수보살과 금강경, 목탁과 죽비, 조사의 진영. 소리 없는 자리. 끊어진 길 끝에서 또 다른 길이 되려는 이 자리는 언제부터였을까. 누가 열었을까.

묘적암은 신라말에 부설거사가 열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의 기록은 사라졌다. 1668년 성일 스님이 중건했고, 1900년 취원 스님이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먼 시절에 남아 있는 조사의 이름은 나옹, 무학, 함허 스님이 있고, 가까운 시절에서는 경허, 청담, 성철, 법전 스님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유난히 많은 선지식의 이름이 묘적암의 기록 속에 있다. 법당 한 쪽에 모신 조사의 진영은 나옹 선사의 진영(경북 유형문화재 제408호)이다. 보우, 경한과 더불어 여말삼사로 칭해지는 동시에 지공, 자초와 함께 증명삼화상이 되는 나옹 스님은 여말선초의 불교사에서 가장 중심에 있던 선지식이다.

나옹 스님은 묘적암에서 출가했다. 1340년 나옹 스님이 스무 살 때였다. 스님은 가까이서 친구의 죽음을 보았다. 삶과 죽음의 문제가 마음을 힘들게 했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물을 수는 있어도 답은 없는, 고단한 질문에 갇힌 스님은 답을 찾아 길을 나선다. 스님이 가닿은 곳은 부설거사가 열어놓은 묘적암. 요연 스님이 머물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출가하려 하느냐?”
“삼계를 뛰어넘어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스승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곳에 온 것은 어떤 물건인고?”
“네, 능히 말하고 들을 줄 아는 것이 왔습니다. 그런데 보려고 하면 볼 수 없고, 찾으려 하면 찾을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스님, 어떻게 공부해야 찾을 수 있습니까?”
“나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너의 질문에 답을 줄 수가 없구나. 다른 선지식을 찾아 가거라”

나옹 스님은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스승의 곁을 떠난다. 유행을 이어가던 스님은 몇 해 후 어느 겨울날에 눈이 쌓인 뜰을 거닐다 일찍 핀 매화를 보고 부처님과 같은 생각에 이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스님의 설법이다. 친구의 죽음으로 묻게 된 생사의 비밀. 그 비밀을 찾아 나선 멀고 먼 길. 그 길은 더 이상 길이 없는 길 끝에서 시작됐다. 어디를 보아도 길은 없지만 어디든 바라보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는 자리, 묘적암에서 시작됐다. 그 옛날, 제자의 삭발을 위해 삭도를 들었던 스승은 길이 끊어진 곳에서 또 다른 길을 열었다. 그리고 선사는 닿고 싶은 만큼, 보고 싶은 만큼의 길을 보았다. 어찌 보면 그 옛날 스승의 일구는 입에서 빚어진 가르침이 아니었으며, 귀만 연다고 들을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었다. 조용한 마음과 마음이 주고받은 법이었다. 적요 속에서 마주한 ‘길’이었다.

묘적암은 대승사 선원대중이 대중의 이름으로 한 철 한 철을 사‘는선 방’이다. 이번 안거엔 명원 스님이 방부를 들였다.

 

또 다시 길은 시작되고
나옹 스님의 길이 시작됐던 묘적암. 그 자리엔 오늘도 길을 찾는 이가 있다. 묘적암은 대승사 선원대중이 대중의 이름으로 한 철 한 철을 산다. 이번 안거 때 명원 스님이 방부를 들였다. 그야말로 묘적의 자리다. 스승도 없고, 길도 없다. 있다면 오직 고요뿐이다. 고요가 스승이요 길이다. 명원 스님은 이번 한 철 살면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적적하고 적적한 자리에서 또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고요뿐인 묘적암에도 새는 지저귄다. ‘묘적’의 그림자일까. 고요의 깊은 곳을 간간히 지나간다. 산새의 지저귐을 따라 산문을 나선다. 들어올 때 보지 못했던 부도가 눈에 들어온다. 숲이 시작되는 조용한 곳에 부도 2기가 나란히 서있다. 동봉당과 동산당일초선사의 부도다. 눈을 돌려 숲을 올려다보니 약 20M 위에 또 하나의 부도가 보인다. 나옹 스님의 부도다. 부도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명원 스님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부도 위로 지나는 나뭇가지에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지저귀지 않고 한참을 머문다. 모두는 머물고 또 머문다. 그리고 그 머물고 머무는 자리에서 길을 시작한다. 오늘, 어디서 어떻게 머물 것인가.

<묘적암 가는 길>
대승사 산내 암자인 묘적암은 사불산 기슭 끊어진 길 끝에 있다. 대승사에서 길을 시작해서 걸어갈 수도 있고, 윤필암에서 걸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바로 묘적암으로 가도 된다. 윤필암부터는 길이 조금 가파르다. 사면석불상이 있는 곳에 오르면 묘적암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나옹선사 진영(경북 유형문화재 제408호)
묘적암 법당 내부.
묘적암에서 올려다본 사면석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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