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귀감 강설

월호 스님 지음/조계종출판사 펴냄/1만7천원

조선 명종 19년(1564년), 청허 휴정은 당시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의 자세와 승풍을 바로잡고 정진과 교화를 당부하기 위해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지었다. 그리고 월호 스님은 현대 불자들의 헤이해진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정곡을 찌르는 글들로 선가귀감 강설을 새로 엮었다. 이 책은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삶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괴로움과 스트레스 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그들의 마음공부를 돕는다. 원문의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은 월호 스님<사진> 특유의 명쾌한 문체로 풀어내 남녀노소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우리 본래면목은 ‘마하반야바라밀’
다시읽는 선의 교과서 〈선가귀감〉
참선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는 책
깨달음은 단박에, 수행은 꾸준히

선가귀감〉에 따르면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며,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선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라고 하면서 선에 이르기를 강조한다. 또한 〈선가귀감〉은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모두 아우른다.

교문(敎門)에서 말하는 일심법(一心法, 한마음)이란 우리가 매일 쓰는 마음인 중생심(衆生心)을 말한다. 한마음에는 진여문(眞如門, 진리에 합당한 본마음 자리)과 생멸문(生滅門, 마음자리와 몸자리)이 있다. 즉 일심법은 본마음과 마음, 그리고 몸을 모두 포괄한다. 중생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진여문을 열었다가 생멸문을 열었다가 하면서 살아간다.

선문(禪門)서 말하는 견성법(見性法)이란 성품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 성품은 바로 ‘본마음’, ‘참 나’로, 항상 크고 밝고 완전하다. 우리의 본마음 자리는 이미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다 갖추고 있다. 성품은 그 자체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며 공(空)한 것이다. 이 본마음 자리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것이 참선이다. 몸과 마음은 물거품이나 아지랑이처럼 계속 변하므로 늘 수련이 필요하다. 몸은 늙고 병들어 죽기 때문에 이에 초점을 맞춘 수행은 끝이 허망하지만, 실재하는 우리는 몸과 마음이 있어야 허기를 채우거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수행이 실감이 난다. 월호 스님은 결국 성품을 ‘디지털식’으로 단박에 보고, 몸과 마음은 ‘아날로그식’으로 꾸준히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월호 스님은 개인의 삶이 절대 신이나 부처의 소유물이 아님을 거듭 역설한다. 또 ‘나’는 이 몸과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참 나’는 무아(無我)다. 무아는 대아(大我)요, 대아는 시아(視我)다. ‘고정된 나’는 없으며, 그렇기에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다. 부처의 행을 하면 부처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성품을 단박에 보고, 그 공한 자리를 ‘선으로 채울 것인가 악으로 채울 것인가’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바로 내가 결정한다. 내 작품이다.

소유자가 아닌 관리자의 입장에서 내 몸과 마음, 주변 사람들을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불교의 성(性)과 상(相)에 입각한 삶이다. 성품이나 형상, 어느 한쪽에만 애착하거나 무시하거나 치우치는 것이 아닌 ‘중도적 삶’이 훌륭한 삶이라고 월호 스님은 강조한다.

이 책 〈월호 스님의 선가귀감 강설〉은 2010년 출간된 〈할! 바람도 없는데 물결이 일어났도다〉의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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