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2. 무애도인 등은봉과 천연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2. 무애도인 등은봉과 천연
  • 정운 스님/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 승인 2019.06.2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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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없이 자재… 大자유 누린 괴짜 선사
중국 하남성(河南省) 남소에 위치한 단하사의 삼문식 패방. 단하천연 선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펼친 도량이다.
중국 하남성(河南省) 남소에 위치한 단하사의 삼문식 패방. 단하천연 선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펼친 도량이다.

선(禪)은 당나라 때, 최고로 번성했다. 당시에 최고의 선지식과 수행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선지식인 마조도일·석두희천·경산법흠·남양혜충은 서로를 격려하는 도반이었고, 서로서로 제자를 보내어 지도하였다. 즉, 자신과 인연이 맞지 않는다면 다른 선사에게 제자를 보내어 지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이번에는 마조와 석두 문하를 오고가며, 공부한 괴짜배기 선사들을 소개한다.

마조·석두 문하 오가며 수행
은봉, 물구나무 선 채로 열반
‘단하소불’ 공안 유명한 천연
집착·관념 자유로웠던 선지식

거꾸로 열반 등은봉 선사         
등은봉鄧隱峯은 ‘등鄧’ 씨의 아들로 성을 붙여 등은봉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조도일(709~788)의 제자 가운데 가장 괴짜배기인데, 그에 관한 기록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스스로 결단하여 하고 싶은 일만을 하므로 부모의 말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이는 후대에 은봉의 성품이 확고한 주체성을 가진 인물임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은봉은 생몰연대 미상으로 그에 관한 기록은 <송고승전> 21권, <조당집> 15권, <경덕전등록> 8권 등에 전한다.

등은봉이 마조 문하에서 수행해도 깨달음에 진전이 없자, 마조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마조가 먼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석두에게로 갑니다.” 
“석두의 길은 미끄럽다고 하더구나.”
“꼭두각시인 셈치고, 한번 잘 놀아보렵니다.”

여기서 마조가 ‘석두의 길이 미끄럽다’고 말한 것은 근기가 낮은 사람은 석두 희천(700~791)을 감당하기 어려움을 경고하지만, 석두 선사는 제자들이 함부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용치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은봉은 처음 마조선사를 찾아가 공부했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마조 문하에서 나와 석두 선사를 찾아갔다. 은봉은 그곳에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은봉은 석두에게로 갔다가 마조에게 되돌아오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두 선지식을 몇 차례 오고가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사형인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에게 머물면서 마조의 스승됨을 알고, 마침내 등은봉은 마조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마조와의 재미난 일화가 <마조어록>에 전한다.

어느 날 은봉이 수레를 밀고 오는 것을 본 마조는 다리를 뻗고 앉아 길목을 막았다. 은봉이 말했다. “스승님 발을 움츠려 주십시오.”
그래도 마조가 말을 듣지 않는다. “한번 뻗은 다리는 움츠리지 못한다.”

“이미 나아간 것은 물러나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끝낸 은봉이 마조의 다리위로 수레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다리를 다친 마조는 도끼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가 외쳤다. “아까 내 다리를 상하게 한 놈은 어디 있느냐?”

이에 은봉이 나와 마조 앞에서 고개를 내밀자, 마조가 도끼를 내려놓았다.

은봉이 마조의 법을 받은 것은 8세기 후반으로 마조의 노년기에 해당된다. 은봉이 원화(元和) 중엽(808~820)에 오대산으로 가는 도중, 오원제(吳元濟)가 난을 일으켜 관군과 항쟁하는 상황을 만났다. 은봉은 살육전쟁을 막기 위해 주장자를 들고 양쪽 진영을 날아다니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군사들이 싸움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선사가 날아다녔다는 것은 조금 과장되어 보인다. 이런 표현으로 선사에 대한 존경과 신이함을 묘사한 것으로 사료된다.

훗날 은봉은 남전산(南泉山)·대위산(大쓳山)·형악(衡岳)·청량산(淸凉山) 등 곳곳을 두루 행각하며 수행하다가 오대산(淸凉山)에서 입적하였다. 은봉의 기이한 행적중 하나가 거꾸로 입적한 일이다. 은봉은 입적할 때, 거꾸로 죽은 사람으로 고금에 널리 알려져 있다. 열반할 당시의 일화가 <경덕전등록> 8권 ‘은봉장’에 전한다.

그는 입적할 무렵, 제자들에게 물었다.
“앉아서 죽은 승려가 있느냐?” / “예.”
“서서 죽은 승려가 있느냐?”/ “예.”
“거꾸로 서서 죽은 제자가 있느냐?” / “없습니다.”
“그럼, 나는 거꾸로 서서 죽어야겠다.”

이렇게 말한 뒤, 은봉은 물구나무 선채로 열반하였다. 제자들이 입관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고 있는데, 그 여동생 스님이 와서 은봉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오빠는 살아생전에도 괴팍한 행동을 많이 하더니, 죽어서도 이러십니까?”

그러자 은봉은 바닥에 똑바로 누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열반에 관한 재밌는 일화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는 생사해탈의 자재로움을 보인 선사의 모습이다.  

단하사 조사전에 조성된 천연선사상.
단하사 조사전에 조성된 천연선사상.

목불 태운 천연 선사   
선사 가운데 ‘천연스럽다’고 해서 그대로 이름이 된 인물이 단하 천연(丹霞天然, 739~824)이다. 천연은 출가 동기부터 심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천연은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고, 방온(龐蘊, ?~808) 거사와 함께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장안을 향해 가는 길녘, 한 선사에게서 “세속에서 명예를 추구하는 관리로 선택되는 것보다 수행해서 부처에게 선택되는 것(選佛場)이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방거사와 함께 발길을 돌려 마조를 찾아갔다.

마조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천연은 쓰고 있던 복두를 쳐 올렸다. 이를 본 마조는 곧 그의 근기를 간파하고 웃으며 말했다. “자네의 스승은 석두 선사로군.”
“석두라니요?”
“여기에서 남악산을 향해 700리 가면, 석두라고 하는 곳에 석추 장로가 살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출가하게.”

단하천연은 석두 문하로 들어가서 3년여 간 부엌일을 하였다. 하루는 석두희천이 천연을 삭발시키고자 행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일 아침 공양을 마친 뒤, 법당 앞에 풀이 무성하니 풀을 깎아야겠다.”

이튿날 다른 제자들은 제각기 낫과 괭이를 들고 나왔으나, 천연만은 삭발할 칼과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석두 앞에 꿇어앉았다. 선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그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머리를 깎아준 뒤, 정수리가 봉우리처럼 볼록 솟아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천연(天然)스럽구나.”

불교에서 스님들의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한다. 그런데 천연이라고 불린 또 다른 전거가 있다. 단하천연이 훗날 마조 문하로 다시 들어가 머물며 ‘천연’이라는 법호를 얻은 내용이 <전등록>14권에도 전한다.

단하 천연이 인사를 드리기 전, 그는 승당 안에 안치되어 있던 보살상의 머리 위에 걸터앉았다. 대중들이 놀라 이 사실을 마조에게 고했다. 마조가 승당으로 가서 보고 말했다. “역시 나의 제자로다. 천연스럽기 그지없구나!”

‘천연’이라는 법호가 석두계와 마조계 어록에서 유사한 내용으로 전하는 것은 천연의 법력이 선종사에서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천연은 깨달음을 얻은 뒤 무애자재한 행을 보이며, 여러 곳을 행각하였다.

그는 낙경(洛京)의 남양 혜충 국사를 친견하기도 하였고, 천태산의 화정(華頂) 선흥사(善興寺)에서 3년을 보냈으며, 우두종의 경산 법흠에게서도 진리를 구하였다. 이렇게 볼 때, 천연은 당대의 선지식들을 모두 친견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사에 천연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는 ‘단하소불(丹霞燒佛)’ 공안이다.

천연이 만행하는 도중, 추운 겨울날 낙동(洛東) 혜림사(慧林寺)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승려들은 사찰에서 하룻밤 묵거나 잠시 기거할 수 있는 점이 승가의 불문율이다. 필자도 중국 사찰 순례를 하면서 절에서 자주 머물렀다.

천연 선사가 그 절에 너무 늦게 도착했는지, 밥도 먹지 못하고 잠을 자려니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천연은 법당에서 목불(木佛)을 내려다 쪼개서 불을 피워 따뜻하게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사찰에서는 난리가 났다. 승려들이 예불을 하려고 보니, 불상이 없었다.

마침 부엌에 있던 원주 스님이 타다 남은 목불을 발견했다. 원주는 대중들을 불러 모으며 소리쳤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큰일 났습니다.”

이렇게 밖에서 소란스럽게 웅성거리자, 천연 선사는 천연덕스럽게 문을 열고나오며 말했다. “소승은 이 절의 부처님이 법력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부처님 몸에서 사리가 나오나 했더니, 사리가 나오지 않더군요.”

원주 스님은 너무 기가 막혀 화냈다. “나무 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옵니까?”

그러자 천연 선사는 태연스레 말했다. “사리도 나오지 않는 부처인데, 불 좀 피워서 몸 좀 녹였거늘 무슨 큰 죄라도 됩니까?”

목불(木佛)은 불을 지나지 못하고, 진흙 부처는 물을 지나지 못하며, 청동 부처는 용광로를 지나지 못하는 법이라고 했다. 형상에 집착해 그것이 최상이고, 최고라는 분별심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다. 저 공안은 관념을 두거나 집착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지, 법당의 부처를 함부로 훼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면서 제자들에게 ‘사리를 섬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말씀도 한번쯤 상기하자. 이교도들이 가끔 이 내용을 역이용하고 있는데,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배짱 두둑한 이야기가 있다. 천연이 천진교(天津橋) 위에 드러누워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그곳의 유수(留守) 정공(鄭公)이 일어날 것을 종용하였다. 당연히 관리가 지나가니 일어나서 예를 표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천연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딴청부리자, 정공이 천연에게 물었다.

“왜 사람이 지나가는데 일어나지도 않습니까?”
“일 없는 게 중이요.”

정공은 천연에게 귀의해 옷 두벌을 보내고 날마다 양식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은봉과 천연, 출가해 이 정도 걸림이 없어야 진정한 대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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