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역사 지광국사탑, 원주로 환지본처
굴곡진 역사 지광국사탑, 원주로 환지본처
  • 신성민 기자
  • 승인 2019.06.21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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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 6월 20일 이전 결정
2015년 국립고궁박물관 뒤뜰에 있었던 지광국사탑. 현재는 해체보수 중이며, 보수 이후에는 본래 자리인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간다.
2015년 국립고궁박물관 뒤뜰에 있었던 지광국사탑. 현재는 해체보수 중이며, 보수 이후에는 본래 자리인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간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에 의해 반출됐다가 한국에 돌아왔지만 제자리로 가지 못했던 지광국사탑이 본래 자리였던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620일 열린 건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의 검토 결과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하 지광국사탑)을 원래 있던 곳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로 이전을 결정했다621일 밝혔다.

지광국사탑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에 세워졌던 고려 국사 해린(海麟, 984~1070)의 승탑이다.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엄장식으로 역대 가장 개성적이고 화려한 승탑으로 꼽힌다.

1911日人 의해 일본 반출
한국전쟁 폭격 파손 등 고난
110년 만에 고향인 원주 회귀
최종 이전 장소는 추후 결정

2016년부터 해체·보수 작업
모르타르 제거·결실부재 대체
올해 중 보수 작업 완료 예정

, 오욕의 역사를 겪다
문화재적 가치가 높았던 만큼 지광국사탑은 근현대시기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자료에 따르면 지광국사탑이 본래 자리인 법천사지를 떠나게 된 시기는 1911년이다. 탑을 매입한 주인은 일본인 와다 쓰네이치로 당시 서울 명동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개인병원에 조경용으로 전시하게 된다.

1912년에는 이를 남산 기슭의 저택으로 탑을 옮겼다가, 다시 일본 오사카 귀족에게 팔아 불법으로 반출시켰다. 오사카 귀족은 지광국사탑을 자신의 가문 묘지 정원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를 안 조선총독부가 반환명령을 내리면서 와다는 탑을 돌려받아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다.

그래도 지광국사탑은 본래 자리인 법천사지로는 갈 수 없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린 경복궁의 장식재 구실을 하기 위해 옮겼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지광국사탑에게 치명상을 안겼다. 1951년 지광국사탑은 폭탄에 맞아 상륜부와 옥개석이 파손됐다. 당시 피폭으로 탑의 상륜부와 옥개석은 12000여 조각으로 쪼개졌다. 전쟁 이후 195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복원기술자 임천 선생이 탑을 복원·수리했고, 후에도 해체와 이전을 반복하다 1990년에 이르러서야 국립고궁박물관 뒤뜰로 자리를 잡았다.

지광국사탑만큼 역사적 부침을 받은 문화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1911년 일본인에 의해 반출돼 오사카의 조경석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복궁 장식재 역할을 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폭격을 맞아 옥개석과 상륜부가 산산조각났다. 위의 사진은 당시 폭격을 맞은 지광국사탑의 모습이다. 조각 파편만 1만 2000여 조각에 달한다.
지광국사탑만큼 역사적 부침을 받은 문화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1911년 일본인에 의해 반출돼 오사카의 조경석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복궁 장식재 역할을 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폭격을 맞아 옥개석과 상륜부가 산산조각났다. 위의 사진은 당시 폭격을 맞은 지광국사탑의 모습이다. 조각 파편만 1만 2000여 조각에 달한다.

해체보수로 새로운 모습을
이후 지광국사탑은 2005년과 2010년 시행된 정기조사와 2014년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 2015년 시행한 정밀안전진단 등에서 다수의 균열과 모르타르(mortar) 복원 부위 탈락 등이 확인됐다. 특히, 모르타르로 복원된 옥개석(屋蓋石)과 상륜부는 구조적 불안정까지 더해져 석탑의 추가적인 훼손이 우려되면서 20159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면 해체·보존처리가 결정됐다.

이에 자광국사탑은 2016322일 해체보고식을 갖고, 45일 해체가 완료돼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송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확인한 석탑의 상태는 심각했다. 우선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957년 시멘트 모르타르로 복원한 부분이었다. 전체 탑의 10.6%가 시멘트 모르타르로 복원됐으며, 상륜부와 옥개석에 집중돼 있었다. 특히 옥개석의 경우 48%가 복원 부재로 시멘트 모르타르가 사용됐다. 또한 이를 지탱시키기 위해 59개의 철심이 탑에 박혀 있었다.

석탑의 풍화도 중간에서 높은 단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백화와 흑화 현상도 상당히 진행됐으며, 탈락·박리·생물 피해·조류 배설물 등의 피해도 확인됐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모르타르 제거, 파손 부재 접착을 비롯해 결실된 부재들에 대해 새 돌로 제작하는 등의 보존처리를 해오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석재의 산지(産地) 분석, 결실부재에 대한 복원도상 연구, 무기질 결합재의 성능개선 연구 등 부차적인 성과도 보이고 있다.

탑 이전에 남은 과제들
건축분과 문화재위원회에서 지광국사탑의 원주 법천사지 이전을 결정했으나, 최종적인 이전 위치 선정은 과제로 남았다. 현재는 법천사지 승탑 위치에 보호각을 세워 보승탑의 원래의 위치에 보호각을 세워 복원하는 방안과 법천사지 내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 내부로 탑과 탑비를 함께 이전하여 보존·전시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실제 원주시는 지난 15년간 진행된 법천사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종합 전시·홍보하는 전시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법천사지 본래 위치에 복원은 보호각 설치가 필수적이며, 이로 인한 주변 경관 저해 문제가 된다. 반대로 전시관 이전은 최적의 보존환경은 보장되지만 이전 복원의 역사적 진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올해 보존처리가 완료되는 지광국사탑 최종 이전 위치는 향후 보존환경이 석탑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와 관계 전문가 논의 등을 거쳐 최종 결정키로 했다면서 앞으로도 외부 환경 등으로부터 탑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지속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광국사탑이 110년만에 돌아가는 원주 법천사지 전경.
지광국사탑이 110년만에 돌아가는 원주 법천사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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