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내 몸 만나는 갚진 기회

몸과 주고받는 진실한 대화
상상도 못한 내면 마주한다
외부조건 만나는 최초 감각
감정을 뺀 감각만 살펴보자

내 몸과의 대화

절벽 끝에서 까마득한 지상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허공이었다. 뛰어내리고픈 충동과 물러서라는 내면의 외침이 날카롭게 부딪혔다. 뛰어내려! 괜찮아. 잠깐이야. 안돼! ! 가까스로 안전지대로 물러섰을 때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사타구니가 찢기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하체가 걷잡을 수없이 후들거렸다.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6살적 여름, 도시공원에 혼자 놀러간 기억이었다. 후박나무 잎사귀가 무성했고, 할아버지들이 장기 두는 곳을 지나면 무성한 나무 숲 아래, 돌탑 하나가 킹콩처럼 서 있었다. 그 탑 전면에는 벽채만한 청동판이 있었는데 태극기와 총칼을 세운 군인들이 그 속에서 성난 얼굴을 하며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 쇳덩어리 그림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키보다 높고 칼처럼 뾰족한 철망을 넘어가야 했다. 한참동안 버둥거린 끝에 나는 그 철망 담장 위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안쪽으로 몸을 날리면 드디어 거대한 청동 군인들을 만져볼 수 있게 될 터였다. 나는 뾰족 담장 안쪽으로 펄쩍 뛰었다. 그 순간, 뭔가 내 발목 부위를 잡아챘다. 나는 바지 끝자락이 철망에 걸려 있던 것을 몰랐다.

뾰족 철망담장에 거꾸로 매달린 꼬맹이의 울부짖음을 듣고 장기 두던 노인들이 달려왔다. 철망은 내 사타구니 살을 깊게 파고 들었다. 살은 길게 찢겼다. 나는 울면서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향했다. 바지는 철망에 찢긴 상처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내 몸, 지네 같은 흉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은 기억한다>에서 심한 외상을 입은 경우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유사 위험을 암시하는 실낱같은 단서만 주어지면 다시 활성화되고, 뇌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킨다고 했다. 그날 절벽 끝에서 기억회로를 치고 올라온 나의 유년기 기억은 그런 원리였을까. 몸은 뇌와 연관되어 이런저런 기억이나 생각들을 받아 연결해주는 것일까. 아니다. 데셀 반 데어 콜크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듈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게 있다. 내 몸 어느 한 부위에게 직접 묻고 답하다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음을.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는 사실상 두뇌 그 자체임을 당신은 당장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신의 몸은 이미 당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음을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통증이 일거나, 관심이 가는 몸 부위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그것과 대화글 쓰기. 가령, 무릎 통증이 심하면 무릎과 나의 대화를 쓴다.

간이나 허파, 위장 등, 몸 속 기관 중 어느 하나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그것과의 대화를 끝없이 적어가 본다. 심장과 나의 대화를 시나리오 형식으로 적어보거나 지금 두통이 심하다면, 머리 부위와 나의 대화를 시나리오 형식으로 적어본다.

마음이 빠져나가 시신이 된 내 몸과의 대화. “너는 이렇게 될 때까지 뭐하고 살았지?”로 시작하는 질문 주고받기.

몸과의 대화는 동어반복이 허용된다. 대화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상대가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내 말을 강조하고 싶으면, 다그쳐 묻기도 하는 법이다. 질문을 할 때는 유순한 감정보다는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겨서 쏴붙여보라. 내 몸과의 대화가 주는 이점은 일단, 육탄전 벌어질 일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감정이 거칠어져도 적정선에서 이성적인 대화로 돌아서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화를 그치지 않겠다는 마음만 놓지 않으면, 내 몸과의 대화는 이어진다. 그러면서 당신은 몸의 상처가 됐든 장기의 속내가 됐든, 동굴 속 같은 내면 의식을 만날 수 있다.

: , 척추 4, 5! 너 자꾸 이렇게 무겁고, 결리고, 쑤시면서 태업할 거야?

척추 : ? 너 지금 뭐라 했어? 내가 아픈 게 지금 누구 탓인데 그 따위 말을 하고 그래!

: 네가 맨날 아프다고 하면서 제 구실을 못하니까 하는 말이지.

척추 : 그게 왜 내 탓이냐고? 네가 나를 얼마나 험하게 써먹었는지 기억 못해?

: ? 내가 누구처럼 공사판에서 벽돌지고 몇 십 층을 오르내린 것도 아닌데? 고작해야 게임한다고 좀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고!

척추 : , 제 입으로 다 말하는군.

몸과의 대화는 일단 쓰기 시작하면 바퀴 굴러가듯 쓰게 된다. 한 마음이 두 상태를 내려다보며 쓰는 즐거움이 곧 탄력 받기 때문이다. 마음이 질문을 하면, 몸이 답하는 형식이지만, 그 몸이 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당신은 질문하는 사람이면서 질문 받는 몸이기도 하다. 질문하는 몸이면서 질문 받는 당신이기도 하다. 이 게임은 당신의 내면을 향해 마차타고 짓치고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해준다. 당신이 만약 이 시나리오를 끝까지 적어보자는 마음을 먹기만 하면, 당신은 상상하지도 못한 내면 스토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부위별 감각 알아차리기

이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살랑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코끝에 바람의 감각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목소리를 듣고 당신이 반응하는 일.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눈, , , , 피부가 어떤 냄새나 맛, 물건 따위와 접촉했을 때, 맨 먼저 반응하는 기관은 어디일까. 냄새가 코를 스치면 코가 반응하고, 맛이 혀를 스치면 혀가 반응하고, 바람이 피부를 스치면 피부가 반응한다. 이것이 자연의 일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일이 사람의 일로 이동하는 최초 지점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그 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가령, 바람이 당신 코끝을 스쳤지만 바람이 코끝에 닿는 감각을 포착하지 못하면 당신에게 바람이라는 사건은 없다. 이렇게 될 수는 있다. 뭔가 코끝을 스쳤는데, 문득 기분이 우울하다고 느낄 수 있다. 바람이라는 진실을 건너 뛴 그 무엇이 당신의 의식을 살짝 바꿀 수 있다.

코끝이 차갑다기분이 우울하다의 차이. 같은 바람이 코를 스쳤는데, 누군가는 차갑다고 하고 누군가는 우울하다고 한다. 무엇이 사실에 가까울까. 가령, 누군가 당신의 뺨을 때렸다고 치자. 뺨을 맞은 당신은 화를 벌컥 낸다. 그런데 2천 년 전 예수라는 청년은 뺨을 맞자 따가움, 뜨거움, 욱신거림, 찌름등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있다가, 그 감각이 사라진 후 다른 쪽 뺨을 대면서 때리라고 했다면, 어느 쪽이 더 사실에 입각한 반응을 보인 것일까.

차가움, 따가움, 찌름, 간지러움, 단단함, 가벼움, 욱신거림.’ ‘우울함, 편안함, 달콤함, 서러움, 어지러움, 기쁨.’

당신은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윗줄은 뭔가 몸에 닿았을 때 발생하는 직관적 느낌이다. 소위, 육체적 느낌이다. 그 아랫줄은? 그렇다. 육체적 느낌을 거쳐서 몇 단계 더 진행된 해석적 표현이다. 몸 세포 여러 기억들과 물리화학적 합성과정을 거치면서 순식간에 조작된 정서 표현이다. 그런 정서를 자신의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해석이나 조작되지 않은 순수 몸 감각을 알아차리는 일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중차대한 역할을 한다. 외부조건과 만나는 최초의 감각을 놓쳤을 때, 당신의 삶은 허공에 뜬 풍선 같은 감정을 쫓아다니게 될 수도 있다. 다시 강조한다. 몸 감각을 아는 것은 원재료가 무엇이고 그 맛과 영양이 어떤지 낱낱이 알면서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살짝 눈을 감고, 자신의 몸 어느 부위든 마음의 눈으로 주시하라. 그런 후, 그 부위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육체적 느낌들을 적어보라. 미세한 느낌에 주목하라. 찌름, 뜨거움, 욱신거림 등 몸이라는 순수 자연과 공기 등 외부 자연이 만나는 첫 감각에 주목하라.

머리 부위 혹은, 어깨, , 다리, , 등 부위 등에 어떤 감각들이 있는지 적어보라. 정서적 표현은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라.

평소 시간이 나는 대로 몸 감각을 백지에 적어보는 습관을 가질 것. 특히 피부 감각은 눈, , , 혀의 감각을 수렴하여 남아 있기 때문에 감각 관찰하기 가장 좋은 대상이 된다.

5년 전, 대기업 직원들과 이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어느 20대 중반 신입사원이 이런 낙서 놀이를 하다 보니 내가 나를 만난다는 게 뭔지, 이제야 감이 잡힌다고 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처럼 진지하게 자신의 몸을 만나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그의 흰 얼굴에 살짝 울음기가 번졌다가 사라진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몸의 어느 한정된 부위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찬찬히 감각을 지켜보는 일. 그런 시공간에 고즈넉이 놓여 있는 한 청년의 얼굴을 한번 그려보라.

나는 하릴없을 때 주로 감각 받아쓰기를 한다. 내 몸 곳곳에서 생멸하는 미세 감각들을 글로 드러내보는 것이다. 이해하기 곤란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큰 즐거움을 준다. 내 마음이 내 몸에 와 있는 상태가 고요함이고 곧 행복임을 확인하는 기분이 든다. ‘바로 이 순간이라는 개념도 몸과 마음이 함께 있어야 성립한다. 이것이 실은 본격 명상이다. 눈을 감고 몸 감각을 알아차리는 일이 본격 명상이라면, 글쓰기명상은 눈 뜨고 몸 감각을 받아 적는다는 것, 그 차이일 뿐이다. 당신도 백지를 꺼내거나 모바일 폰 노트 앱을 열어서 이처럼 명상 놀이를 즐겨보라.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마음의 초점을 몸의 한 부위에 고정시켜서, 그 몸이 말하는 언어를 받아 적어보라. 이왕이면 보다 더 미세한 감각을 적으려고 의도해보라. 당신의 별은 허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정수리 - 따가움, 욱신거림, 쑤심
- 결림, 우두둑함, 쑤심, 당김
- 따가움, 단단함, 굼실거림,
- 팽창감, 수축감, 사르륵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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