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향엄수어 2

[評唱 2]

後學之流 須是透過這關?子 始可出得身吐得氣. 若透不過 坐在這裏 名?死漢 有什?用處. ?看得底人逈別 便知他落處. 香嚴?垂此語 便有虎頭上座出云 “上樹?不問 未上樹請和?道” 香嚴呵呵大笑. ?道 香嚴笑箇什?. 若知落處 說什?上與不上. 若不知落處 也須退步看始得.

후학들은 모름지기 저 관려자(關?子, 문제의 핵심)를 꿰뚫고 통과해야, 비로소 몸을 뛰쳐나와 기염을 토해낼(出身吐氣)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꿰뚫어 통과하지 못하고 여기에 주저앉아 있기만 한다면 이는 죽은 놈이라 할 것이니, 어디에다 쓰겠는가? 그대들은 저 득저인(得底人, 도를 얻은 사람)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보라, 그는 바로 그 낙처(落處)를 알아버린다.

향엄이 대중에게 이렇게 수어하자마자 곧바로 호두 상좌가 나와 말했다.

“나무에 오른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나무에 오르지 않았을 때는 어떤지 청컨대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향엄이 가가대소(呵呵大笑)했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향엄이 무엇을 보고 웃었는가? 만약 낙처를 알았다면 무슨 올랐느니 오르지 않았느니를 말하겠는가! 만약 낙처를 알지 못했다면 모름지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若是作者 當機便見 若擬議之間 ?面蹉過. 或不落二邊 對也不是 不對也不是 作?生却得見古人意去. 到這裏 若是具通方底手脚 說甚?樹上樹下對與不對. 如今山僧在這裏 是上樹 是未上樹 是對 是不對.

만약 작자라면 대번에 그 문제의 핵심(機)을 바로 보겠지만, 조금이라도 주저주저 한다면 그 사이에 지나가버려 (기회를) 놓쳐버릴 것이다. 혹 양 변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대답해도 옳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옳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고인의 뜻(古人意)을 보겠는가? 여기에 이르러 만약 통방작가의 솜씨(通方底手脚)를 갖추었다면 무슨 나무 위니 나무 아래니, 대답하느니 대답하지 않느니를 말하겠는가?

지금 산승은 여기서 나무에 오른 것인가, 나무에 오르지 않은 것인가? 대답한 것인가, 대답하지 않은 것인가?

雪竇拈香嚴與虎頭相見處 却?人致一問來 還有?. 樹上道?易 樹下道?難 末後又道 “老僧上樹也 致將一問來” 這些子如馬前相撲 ?眼便輸. 雪竇於節角?訛處 拈出令人見 羅籠不肯住 呼喚不回頭底漢 ?聞人? 便知全機大用 善能拈提. 看雪竇老漢 也不妨奇特.

설두는 향엄과 호두 상좌의 상견처(相見處)를 염하고, 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질문을 하도록 했는데, 어떤 것이 또 있는가? (설두는) “나무 위에서 말하는 것은 쉽지만, 나무 아래에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해놓고는 끝에 가서 또 “노승이 나무에 올랐다. 자, 한 번 물어라” 라고 했는데, 이런 것들은 마치 달리는 말 앞에서 서로 싸우는(씨름하는) 것 같아서(馬前相撲), 눈 깜짝할 사이에 곧 참패할 것이다. 설두는 절각효와처(節角?訛處)에서 끄집어내서 사람들에게 보도록 하였던 것이니, 그물에 머무는 것도 긍정하지 않고 불러도 머리를 돌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라야 사람들이 거론한 것을 듣자마자 바로 그 전기대용(全機大用)을 알고 염제(拈提)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두 노인네를 보라, 대단히 기이하고 특이하지 않은가!

?원오어록에서는 전기대용(全機大用)을 “萬年一念 一念萬年 透頂透底 全機大用(만년이 곧 일념이며 일념이 곧 만년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꿰뚫는 것이 전기대용이다”고 말하고 있다.

?마전상박(馬前相撲): 달리는 말 앞에서 서로 씨름 (相撲) 하는 것. 빨리 승부를 내지 않으면 말이 지나간다는 뜻으로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일을 그르친다는 뜻.

?절각효와(節角?訛=절각오와 라고도 함): 말이나 사상이 뒤섞이고, 잘못 되어 애매해진 교설이나 언구.

?염제(拈提): 하나의 공안(公案, 古則)을 제시하고 조실이 여기에 독자적인 평석을 가하는 것. 염평(拈評)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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