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두는 곳마다 ‘나’를 본다 … 불국토 아미산의 유일한 현존
눈 두는 곳마다 ‘나’를 본다 … 불국토 아미산의 유일한 현존
  • 글·사진=박재완 기자
  • 승인 2019.06.0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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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전남 곡성 천태암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은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늘 동분서주하고 있다. 찾아야하는 ‘나’, 그것은 힘겨운 시간 속에 있을 때 더욱 간절해진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종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목탁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풍경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한다. 숲길 끝에, 산자락 끝에, 물가의 끝에 서는 것이다. ‘끝’에 서보는 것이다. 끝에 서서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은 ‘나’를 보고 싶은 것이다. 더 이상의 길이 없는 곳에서, 더 이상의 생각이 필요 없는 곳에서 오직 ‘나’를 찾는 길을 걷는 것이다. 힘겨움 속에 있는 이 시간, 어딘가의 끝에 서고 싶다면 눈 두는 곳마다 ‘나’가 시작되는 곳, 아미산 천태암으로 간다.

하늘과 가까운 땅
전라남도 곡성, 아미산 정상 근처에 암자가 하나 있다. 천태암이다. 조계종 화엄사 암자다. 해발 500m, 땅에서 조금 멀어진 땅, 하늘과 좀 더 가까운 땅. 평소에는 자주 가볼 수 없는, 익숙지 않은 자리다. 길을 오르면서, 하늘에 가까워지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시간도 계절도 언어도 걸음도 그리고 눈높이도 달라진다. 올려다보던 산들이 눈 아래에 놓인다. 조계산, 모후산,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곡성군을 흐르는 보성강이 또한 한눈에 들어온다. 운해와 운해 사이로 능선들이 촘촘하게 늘어서고, 강물은 대지의 곳곳을 정성스럽게 적시며 흘러간다. 산과 같이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산, 강과 같이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강 그리고 그 사이에 놓였던 나, 그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비경이다.

암자에 닿는 순간, 걸음의 속도와 간격부터 달라진다. 속도는 필요 없고 간격은 나의 뜻이 아니다. 시간은 시계 속에 있지 않고, 계절의 깊이는 지구의 공전이 아니라 처마 끝에서 궤도 없이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만들어낸다. 언어는 각자의 것으로, 그것들은 각자의 독백을 위한 것일 뿐이다. 숲속 나무들과 새들과 하늘과 법당의 단청, 불상과 탱화, 텃밭을 오가는 다람쥐와 보이지 않는 곳을 채우고 있는 작은 벌레들까지 모두 독백으로 서있다. 모두는 독백만으로 모두와 함께 살고 있다. 달라진 눈의 높이는 그 독백들을 바라보면서 또 한 번 달라진다. 땅에서 조금 멀어지고 하늘에 좀 더 가까워진 시간과 계절 속에서 달라진 언어와 달라진 보폭, 그리고 달라진 눈높이로 ‘나’를 찾아 나선다.

해발 500m, 사는 것들부터 다르다. 처음 보는 벌레들, 처음 보는 꽃잎들, 처음 보는 산새들…. 처음 보는 것들은 등장 자체가 설법이다. 처음 보는 작은 벌레 한 마리는 새로 배우는 문자이며, 처음 보는 붉은 꽃잎 하나는 처음 보는 길이다. 문자는 늘고 길은 많아진다. 설법이다. 세상이 한 뼘 정도는 넓어진다.

각자의 세상은 각자가 본 것들로만 이뤄져 있다. 각자는 자신이 본 것만을 법(法)으로 삼는다. 보지 못한 것들은 한 뼘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은 하나에서 둘이 되면서부터 힘겨워진다. 나 밖으로는 한 뼘도 허락하지 않는 각자의 세상 때문이 아닐까.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안목 인연
665년(신라 문무왕 5년)에 혜암 율사가 창건한 천태암은 선종의 중흥조 보조국사 지눌 스님과 인연이 깊다.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서 지눌 스님의 이야기가 가장 깊다. 하지만 지눌 스님을 비추는 사료들에 비해 천태암을 적고 있는 사료는 많지 않다.

1195년(고려 명종 25년)부터 상무주암에 은거하며 선의 참뜻을 찾아낸 지눌 스님이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 태안사를 둘러본 후 천태암에 머물렀다. 자연석굴에 16나한을 모시고 법당과 요사를 중창하여 후학들을 맞았다. 지눌 스님은 이곳의 산세가 중국의 4대 불교성지 중 하나로 알려진 아미산과 닮았다하여 아미산 천태암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금의 산신각 왼편으로 30m 정도 산길을 오르면 지눌 스님이 좌선했던 너럭바위가 있다. 지눌 스님의 좌선대다. 현재는 그 자리가 아직 여법하게 정돈되어 있지 않다. 불사가 추진되고 있다.

<천태암중수화문>은 천태암에 대해 “16아라한이 상주하고 칠원성군(七元星君ㆍ북두칠성)이 강림하는 청정한 곳으로 봉우리의 형상이 평지로부터 우뚝 솟아 마치 서천(西天ㆍ인도)에서 옮겨온 비래산과 같으며 신선경계의 바위와 낭떠러지가 높게 드리워져 마치 동토의 소림굴과 같아 해동의 승지(勝地)이며 호남의 명구(名區)다”고 적고 있다.

800여 년 전 지눌 스님이 송광사에 처음 오셨을 때, 먼저 살고 있던 주민들을 지금의 주암면 오산리와 천평리 등으로 이주시키고 우물을 파 그들에게 새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그때 만든 우물은 지금도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지눌 스님의 설법을 듣고 감화를 받은 주민들과 천태암 16나한들이 지눌 스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스님이 오가는 길을 편안하게 닦았다. 그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송광사를 오갈 때마다 장삼 소매 속에 흙을 담아 날랐다. 꺼진 곳은 메우고 솟은 곳은 다져 스님이 다니기 편하게 길을 냈다. 길은 모두 일곱 개로 ‘토성칠교’라고 부른다. 칠석날 토성칠교로 송광사를 다녀오면 모든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천태암은 1957년 화재로 도량이 피해를 입었지만 호연 스님의 원력과 불자들의 동참으로 2004년에 다시 도량을 회복했다. 3년 전부터 주지로 부임한 대주 스님이 선대의 원력을 이어 불사를 이어가고 있다. 스님의 원력은 지금의 천태암이 아니라 1300여 년 전의 천태암에서 시작된다. 이 자리에 부처님의 1300년 세월이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하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주하고 있다. 숨어 있는 사료를 찾고 사료와 사료 사이에서 천태암의 근거와 실재를 찾아내고 있다. 덕분에 천태암의 사료는 점점 늘고 있다.

천태암이 자리한 아미산에는 과거에 18개의 절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사라졌고 천태암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현재 천태암이 자리한 동네 이름은 목사동(木寺洞)면이다. 나무 ‘木’자를 분해하면 ‘十八’이 된다. 풀어보면 ‘열여덟 개의 사찰이 있는 동네’라는 뜻에 닿는다. 그리고 산의 이름 아미산은 중국의 명산 아미산의 이름과 닿아있다. 중국의 아미산 역시 산 자체가 불국토이다. 26개의 절이 있고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사찰이 8곳이나 있는 ‘불산(佛山)’이다. 그렇듯 곡성 아미산의 이름에는 불국토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눌 스님이 천태암을 수행처로 삼아 주석하고, 그 자리를 아미산 천태암이라 부른 것은 응당하고 충분한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태암의 현존을 아미산이라는 이름에서 바라보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법향으로 가득했던 아미산의 옛 시절이 천태암 편액 하나에 모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서글픈 것이다.

천태암 극락보전.
천태암 극락보전.
16나한을 모신 나한전.
16나한을 모신 나한전.

 

 

665년 혜암 율사 창건
해발 500m 아미산 정상 암자
조계산 모후산 무등산 한 눈에
보조국사 지눌 스님 수행처
모두 주인 되는 무주공산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 너머로 노을이 물든다. 천태암은 많은 비경을 품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 너머로 노을이 물든다. 천태암은 많은 비경을 품고 있다.
천태암에서 보는 모후산.
천태암에서 보는 모후산.

 

무주공산, 바람도 주인
요사체로 보이는 전각이 하나, 비탈길 위로 큰법당(극락보전)이 하나, 법당 뒤로 석굴법당(나한전)이 하나, 법당과 산길 사이에 산신각이 하나, 햇살 가득한 곳에 작은 텃밭이 하나 그리고 대중이 하나. 그랬다. 백구 하나가 없다. 천태암은 주지 스님 한 분이 대중의 전부다. 그래서 객이 들면 대번에 표가 난다. 소리 소문 없이 다녀갈 수 없는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량에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스님께서 내다본다. 그랬다. 하늘과 좀 더 가까운 땅 천태암에서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걸음의 속도와 간격은 나의 것이 아니다. 잠시 모든 것을 접는다. 카메라도 수첩도 그리고 나의 이름 석 자도. 이름과 작은 신분과 산을 찾은 목적을 고했다. ‘초면’이라는 세속의 방식이 우스워진다. 불연에는 초면이란 없는 것일까. 스님으로부터 받아든 찻잔엔 찻물의 온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만났을까. 그 아득한 시절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삶의 묘미인 듯하다.

“사진 많이 찍고 계시게, 나 잠깐 아래 내려갔다 올 테니.”

해가 많이 기울었을 때였다. 스님은 출타했다. 천태암은 주지 스님이 출타하면 무주공산이다. 달리 말하면 머무는 이가 주인이다. 스님의 차량이 도량에서 멀어지고, 암자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절집에 주인의 이름이 따로 없는 것이 본래 모습일 테지만 무주공산에 홀로 남고 보니 진정으로 ‘끝’에 서는 느낌이다. 바람도 잠시 주인이 되어 머문다. 서쪽 하늘이 물들어간다. 연등 위로 노을이 다가온다. 천태암이다.

<천태암 가는 길>
절 입구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하다. 호남고속도로 석곡IC에서 지방도와 임도를 이용해 20분 정도 간다. 약 2km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조급한 마음으로 운전하면 길은 힘들다. 느긋한 마음으로 오르면 하늘과 가까워지는 고도를 느끼면서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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