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무엇인가?

혜담 스님 지음/민족사 펴냄/13,800원

책 집필 원동력은 광덕 스님 말씀
진리 자체인 ‘부처’를 찾는 선수행
진리 실현, 불교 수행 궁극적 목적

이 책은 교리가 아닌 선의 입장에서 고따마 붓다와 부처님과 선불교 전체를 총망라해 불교의 진리를 설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선(禪)의 관점서 본 ‘불교의 진리관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불교의 진리라고 하면 삼법인, 사성제, 십이연기 등 불교 교리를 연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불광사 혜담 스님은 철학과 종교의 문턱을 넘나들며, 교리(敎理)가 아닌 선(禪)의 관점서 진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 대중들이 알기 쉽게 진리를 체득하고 실천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불교와 이웃종교의 대화의 접점을 선(禪)에서 찾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즈음 선은 종교를 초월해 진리를 찾는 보편적 수행 체계로 각광 받는 상황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진리에 대한 바른 가치관 정립이 절실한 상황서 선어록과 대소승 경전을 통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삶의 참된 이치에서 나아가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혜담 스님은 출간 취지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 삶의 의미를 찾는 종교가 불교이고, 불교가 발견한 삶의 의미를 체득하기 위해서 부처를 찾는 행위를 선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소납도 한 30여 년 전에 해오의 상사각을 진정한 깨달음으로 착각해 기고만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말할 수 없는 도리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입을 다물 것이 아니라는 생각서 허물인 줄 알면서도 사족을 붙여보게 된 것입니다.”

혜담 스님은 광덕 스님(불광사 불광법회 법주)의 제자로서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해 오래도록 ‘공사상(空思想)’ ‘반야사상’을 연구해 왔다. 귀국 후에는 수십 년 동안 선수행을 하는 한편 도심포교 도량으로 유명한 불광사서 대중들에게 법을 설하고 지도해 온 이사(理事)를 겸비한 분이다. 혜담 스님은 이 책을 집필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광덕 스님이라고 밝힌다.

광덕 스님의 영향을 받고 반야공사상과 선수행에 천착한 혜담 스님은 모든 사람이 뿌리로 들어가면 진리 본성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역설한다. ‘붓다와 마음, 진리의 실현’이라는 부제서 엿볼 수 있듯 불교 교리로 진리를 설명하지 않고 선의 관점에서 불교 진리를 설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1장과 2장에서는 진리 자체인 붓다와 마음에 대해 선적인 관점에서 참된 불교의 진리를 보여주고, 3장에서는 진리의 세계인 법계(法界)의 동력(動力)이 지혜에서 나온 대자비임을 강조하면서 진리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뇌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혜 자비의 실천에 있음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불교 교리적인 해설 없이 오직 붓다와 마음, 진리의 실현에 대해 당송 시대 조사, 선지식들과 선승들이 남긴 선어록과 화두, 공안을 불교의 진리와 일치시켜서 설명, 독자들로 하여금 선수행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이 책의 1장은 붓다의 장이다. 첫머리에 ‘불교라는 방편’이라는 소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웃종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불교는 진리를 뗏목에 비유하면서 진리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불교라는 방편’이라는 말이 불자들에게는 낯설지는 않다. 그래도 불교 교리, 신앙형태, 수행 방법이 너무나 다양해 불교의 참다운 가르침, 불교의 진리가 무엇인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방편이라는 말도 가지각색으로 받아들인다. 혜담 스님이 방편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혜담 스님은 〈대지도론〉에 의거해 방편을 대지방편(모든 법이 공한 것을 아는 지혜 방편)과 대비방편(대비심으로 중생을 사랑하고 버리지 않는 방편)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면서도 대지(大智)에 의해 모든 중생이 같은 생명임이 체득했을 때 대비심은 자연히 일어나게 된다면서 두 가지가 나뉠 수 없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한편 대지방편의 입장에서 부처와 불교의 개념을 정리함으로써 진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운문 선사가 부처라 대답한 ‘똥 젓는 막대기’에는 인간은 본래 죄가 없다는 인간 무죄의 선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 성품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부처를 찾는 행위인 선수행의 이론과 실천 방법을 설명하는 벽암록, 무문관 등 여러 선어록에서 법안종을 창시한 법안 선사, 조동종을 창시한 동산 화상,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 선사, 조사선을 확립한 마조 선사 등의 일화를 가려 뽑고 그 안에 깃든 불교의 진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혜담 스님이 이 책서 초지일관 강조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뿌리로 들어가면 진리본성뿐이라는 것이다. 신을 믿는 종교와 불교의 가장 다른 점은 인간관, 진리관인데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인간이 똑같은 불성, 참 성품을 가진 존재임을 역설한다.

한편 위와 같은 경전 내용을 언급, 일체 존재와 현상이 공하다는 것을 책상의 예를 통해 “책상은 많은 부분이 모여서 된 복합적인 것으로 결코 실체가 있는 단일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깨달음은 공의 체득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밝힌다. 깨달음과 반야바라밀 그리고 공(空)사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간화선 수행은 반야바라밀을 증득하는 과정임을 거듭 강조한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고 한다.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들었다고 하고,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다. 혜담 스님은 이 책의 2장서 붓다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반야를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면서 이 모든 것이 선불교의 입각처라는 것을 천명한다. 조사스님들이 남긴 선어록의 화두를 스님 나름의 안목으로 읽어내고, 선수행을 하면서 일체유심조의 마음이 불성(佛性)이고, 반야바라밀이 바로 공(空)인 사실을 확인했다는 혜담 스님은 “일체유심조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행하다보면 어느 날에 분명히 그대 앞에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이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대에게 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苦海)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불자로서의 안목이 생기게 됩니다”라고 역설한다.

“대비(大悲)는 대지(大智)로부터 나오고 대지는 대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원래 하나의 물건입니다만, 분별지의 입장에서 말할 때 두 개의 물건으로 있는 것처럼 나누는 것입니다.” 불교를 떠받치는 큰 기둥은 반야와 대비이다. 특히 혜담 스님은 진리의 세계인 법계(法界)는 대비(大悲)를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강조한다. 스님은 진리의 실현, 즉 대자대비를 실천할 때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이 자리가 극락정토라는 것을 거듭 밝힌다.

“어떤 종교에서는 창조주인 신(神)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불교의 입장도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자연스런 대비심이 왜 일어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이 자신과 같은 몸(同一生命)임을 본성적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스님은 기독교의 사랑과 불교의 자비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종교나 저 종교나 다 같다고 하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이 책서 이웃종교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위와 같이 비교해서 설명하는 대목이 간혹 보인다. 우리가 스스로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기 위해서, 더 나아가 대자대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을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알고 우리와 똑같은 또 다른 부처들을 위해 대자대비행을 실천하는 삶이 진리의 실현임을 거듭거듭 강조한다.

이 책은 ‘진리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한편 진리, 삶,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혜 자비의 실천에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지난 10년 동안 불교 인구가 300만이 감소되었다고 한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지금 이 자리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 불교가 발견한 삶의 의미를 체득키 위해 부처 찾는 행위를 선수행이라고 말하는 저자 혜담 스님.

▲저자 혜담 스님은?
1949년 경남 울산서 태어난 혜담 스님은 부산 금정산 범어사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동국대 불교대학 승가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해군 군종법사 대위 전역했고, 일본 불교대학 대학원서 〈대품반야경에 있어서의 반야바라밀 연구〉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선우도량 공동대표,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재심호계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사 주지를 역임한 그는 현재 경기도 검단산 각화사 주지,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를 맡고 있다. 역저서로는 〈반야경의 신앙〉 〈대품반야바라밀경 상·하〉 〈반야불교신행론〉 〈한강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셔라〉 〈방거사어록 강설〉 등이 있다.

▲불교 전래 초기부터 중국의 역경사들은 ‘Buddha’라는 단어를 깨달음(覺) 또는 깨닫는 것, 깨달은 사람(覺者)이라는 세 가지 의미로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초기불교의 연구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오늘날까지 적합한 번역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Buddha’라는 말에는 깨달음·깨닫는 것·깨달은 사람이라는 세 가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p.23)

▲인간은 의식 속에서 갖가지 분별을 합니다만, 이것은 실은 어느 것이건 절대 무분별 혹은 절대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본성을 보고 바로 깨닫는 것(直覺)입니다. 무분별의 경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체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p.159)

▲업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타당합니다. 다른 유정(有情)·비정(非情)에게는 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선악의 가치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자기로부터 움직여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행위에 도덕적 평가를 가한다고 하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업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바로 업 그 자체로서 움직이는 것입니다.(p.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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