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안수정등(岸樹井藤)

‘안수정등(岸樹井藤)’은 ‘강 언덕에 있는 나무와 우물 속에 있는 등나무’란 뜻이다. 문자의 겉은 그러하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숨은 뜻은 무엇일까. 불설 〈비유경(比喩經)〉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위태로운 삶의 상태’, 또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탐욕(貪)과 분노·질투·증오심(嗔) 그리고 무지(痴)에 빠져 있는 몽매한 인간의 존재 형태를 불교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안수(岸樹)’는 ‘강기슭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데, 이 비유에서는 절벽 꼭대기에서 기생하고 있는 나무를 말하고 있다. 강 언덕이나 절벽에 있는 나무는 비바람이나 폭풍을 만나면 쓰러지기 쉽다. 그리고 ‘정등(井藤)’은 ‘우물 속에 있는 등나무 넝쿨’로, 넝쿨에 매달려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인생을 가리킨다. 중생사를 절묘하게 표현한 말로 불교에서 바라보는 어리석은 인생관의 하나이기도 하다.

‘안수정등’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한 나그네가 광막한 들판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어디선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사나워 보이는 큰 코끼리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그네는 공포에 질려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달아났다. 그러다 막다른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 이르렀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다행히도 절벽 끝에 제법 큰 나무가 있었고(岸樹), 등나무 넝쿨이 절벽 아래 우물로 늘어져 있었다. 등나무를 타고 내려가면 코끼리의 공격을 피해 살 수 있었다. 나그네는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안도의 숨도 잠깐, 등나무 줄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보니, 밑에는 독사 네 마리가 고개를 들고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또 독룡(毒龍)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매우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다시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위로 올라가자니 사나운 코끼리가 기다리고 있고 아래로 내려가자니 독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비극적인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등나무 넝쿨을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이빨로 갉아먹고 있었다.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넝쿨을 붙잡고 있는 팔은 점점 힘이 빠져서 기력을 다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디선가 액체 한 방울이 입가에 떨어져 내렸다. 달콤한 꿀물이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꿀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지친 나그네는 혀로 떨어지는 그 꿀을 받아먹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나그네는 달콤한 꿀맛에 방금까지 공포도,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광막한 들판’은 끝없는 어둠의 세계인 무명(無明)을 비유한 것이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코끼리는 ‘시간의 속도’, ‘세월의 무상함’을 가리킨다.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해와 달 즉 낮과 밤을 가리키고, 쥐가 등나무를 갉아 먹는 것은 점점 줄어드는 목숨을 가리키고, 네 마리 독사는 지수화풍 사대를, 꿀은 오욕락(五慾樂)을 가리킨다.

불교 고사성어 ‘안수정등(岸樹井藤)’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사자성어이다. 달콤한 꿀맛에 빠져서 참된 인생의 길을 보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설하고 있다.

우리는 이성에 대한 욕망, 돈과 재물에 대한 욕망, 음식에 대한 욕망, 명예에 대한 욕망, 오래 살려고 하는 욕망 등 오욕락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지수화풍 4대로 구성된 이 육체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애착할 것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꿀 한 방울(오욕락)에 빠져서 무상을 인식하지 못한다.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인간의 삶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설화(說話)가 바로 ‘안수정등’의 이야기이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 받아먹는데 정신이 팔린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살아날 수 있을까? 코끼리 때문에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독사 때문에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 매달려 있는 팔의 힘은 기진맥진.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해탈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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