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옥, 위빠사나 수행자들의 총림

빠옥 총림의 입구. 1981년 3대 선원장으로 취임한 아신 아찐나 스님 이후 세계적 수행처로 발전했다.

빠옥 총림 첫째 날인 2012년 1월 22일. 드디어 종착지 몰라민에 도착했다. 몰라민은 미얀마 남쪽 몬주에 있고, 몬주는 미얀마 역사에서 불교의 출발과 함께한다는 중요성이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택시 운전수라고 왔는데 알고 보니 택시가 아니라 오토바이이다. 오토바이 앞에 나의 큰 가방을 발로 밀어붙이고 뒤에는 나를 태운 채 신나게 달렸다.

1000여 명 상주하며 수행정진
아찐나 스님이 선원장 맡으면서
세계적 수행 도량으로 발전해
“道人 1명이 만 중생구제” 실감

무거운 가방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지만 약 15~20여 분만에 무사히 총림에 도착했다. 대로변에 일주문처럼 빠옥 총림의 간판이 있고 총림의 중앙 종무소까지는 아름드리 나무가 양쪽으로 줄지어 그늘을 만들고 있다. 긴 입구를 통과하여 드디어 중앙 종무소에 도착하였다.

입방 절차를 마치고 다시 남성 요기들이 모여 수행하는 윗절 수행처로 가라한다.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큰 가방을 가지고 걸어갈 수 없다며 총림에서 운영하는 삼륜차로 실어다준다. 주지 스님 사무실(Sangha Office)을 알려 준 후 삼륜차는 곧바로 떠나버린다. 주지 꾸 무다(Ku Muda) 스님은 나에게 간단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오늘 밤 지낼 방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으니 사무실 방에서 같이 묵자고 했다.

다시 입방 절차대로 스님은 나에게 삼귀의와 오계와 팔재계를 빠알리로 선창하며 따라하게 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오계를 설명해 주었다. 익히 알고 잘 따라하니 무척 기뻐했다.

이어 스님은 다시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과 총림의 현황, 개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특히 빠옥 총림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현재 수행 중인 외국인과 한국인들의 출입 현황판을 보여줬다.

현황판은 윗절 수행처의 남성과 아랫절 수행처의 여성으로 구분하였다. 내가 본 현황판은 2011년 12월 28일의 현황판이었는데 비구 63명, 사미 17명, 대승 비구 12명, 대승 사미 6명, 재가자 16명으로 남성은 114명이었다. 여성은 상좌 여성출가자 53명, 대승 비구니 44명, 대승 사미니 1명, 재가자 18명으로 모두 116명의 여성 수행자가 머물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229명이지만 현황판은 230명으로 되어 있다. 총림을 나간 인원과 새로 들어 온 인원의 현황도 기록되어 있었다.

실제 수행자가 약 230명이 머물고 있다면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꽤 큰 도량인 것은 분명하다. 스님은 계속해서 현재 한국인 재가자는 약 9명이며, 출가자에 있어서는 한국인으로서 상좌부 출가 스님은 4명이고, 한국에서 온 대승불교 스님은 약 7~8명이라고 일러줬다. 이 중 한 스님이 내일 한국으로 귀국하니 그 처소에서 기거하라고 했다. 상좌불교권과 달리 대승불교권의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사미와 사미니는 대승(Mahaya)이라는 말이 추가되어 명기된다.

한국, 중국 그리고 베트남 등지의 회색 승복 또는 짙은 밤색의 상좌 승복과 구별인 것이다. 또한
구족계 수계 여부를 분명히 확인하여 비구와 사미 등을 구별하여 명시했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스님의 허락을 받고 빠른 속도로 현황판의 내용을 기록하고 또한 사진으로도 담았다.
국가별 수행자들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국가는 59명의 베트남이다. 다음으로 37명의 중국, 27명의 한국, 19명의 말레이시아, 16명의 대만, 16명의 인도네시아, 9명의 스리랑카이다. 미국과 싱가포르는 각각 7명이고, 독일과 일본도 각각 5명이다. 마찬가지로 홍콩과 프랑스가 3명이고, 인도와 호주는 2명이 선원에 머물며 수행하고 있다. 태국, 영국, 덴마크, 러시아, 아일랜드, 캄보디아 그리고 멕시코 등은 1명으로 기록돼 있다. 다음날 방사 배정은 현황판에는 명시되지 않은 스페인 사람이었다.

한 달 전의 현황판인 것을 감안하면 빠욱 총림이 대략 23개국 이상에서 모인 국제적인 수행처임을 보여준다. 아마 인도에서 불교가 일어난 후 이렇게 동서양의 많은 나라에서 운집하여 장기적으로 함께 수행하는 곳은 빠옥 총림뿐일 것이다. 가히 국제 수행처이고 말 그대로 총림인 것이다. 또한 국가별로 볼 때 대승불교권인 베트남, 중국 그리고 한국 등에서 온 요기들이 많다는 데 놀라웠고, 이들 수행자들이 자발적으로 상좌 불교로 출가해 머물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세계불교의 흐름을 읽는 것 같아 매우 흥미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지 스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9시가 되었다. 시자 스님이 돗자리 하나와 담요 하나, 그리고 베게 대신 사용할 침낭을 가져다준다. 나의 잠자리를 위한 침구를 제공해 준 것이다. 주지 스님은 나의 잠자리에서 약 3m 정도에 침구를 펴고 눕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을 켜고 주무신다. 나에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기에 “괜찮다”라며 누워 잠들려고 하는데, 보아하니 스님은 담요를 덮지 않는다. 빠욱은 숲속이어서인지 밤공기가 쌀쌀한 편이다.

스님에게 담요 없이 자는 이유를 물으니, “부처님 가르침에 비구는 3의(衣)로 모두 해결해라고 했기에 담요를 덮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등이 켜져서 중간 중간 잠에서 깼다. 주지 스님은 두 발이 밖으로 드러난 채로 얇은 가사만만을 덮고 잔다. 드디어 빠옥 총림에 도착한 것이 실감이 났다.

필자는 빠옥 수행처를 ‘총림’으로 칭한다. 따웅뇨(Taung Nyo) 산록을 따라 숲속 여기저기 산자락에는 많은 군소 수행처와 업무시설들이 있다. 이 때문인지 빠옥 수행처도 스스로 숲속 사찰(Pa-Auk Forest Monastery)이라 이름한다.

한국에서 총림은 선원, 강원, 율원 등을 갖춘 큰 사찰을 말한다. 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대중이 화합을 이루어 사는 곳’이다. 문자 그대로, 총림은 숲은 우거진 나무들이 모인 곳이다. 어원적으로도 산림 수행처는 잡목이 우거진 숲과 관련한다. 인도불교에서 선수행은 아란야(raa, 阿練若), 즉 숲 속에서 집중적으로 수행되었다. 초기불교의 아란야는 대승이나 동아시아의 총림에 해당할 것이다. 총림은 산스크리트어로 ‘Vindhyavana’이며 빈다바나(貧陀婆那)로 음역되기도 하였다.

불교는 출발에서부터 유행과 정주라는 수행문화 속에 마을과 산림에 여러 종류의 수행처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수행처에 대한 가장 큰 규모를 지칭할 때는 승가람마(僧伽藍摩, saghrma) 또는 승가람(僧伽藍)이다. 승원(僧院)을 말한다. 인도의 날란다 승원 등이 그것이다. 이곳 빠옥 총림도 승가람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이러한 승원은 여러 종류로 나누어진다. 초기불교에서부터 다양한 종류의 승원이 마을이나 도시가 아닌 숲속에 건립되었다. 한국의 산사가 인도의 숲속 전통 속에 있듯이 미얀마 등의 상좌불교권도 마찬가지이다. 총림은 이렇게 다양한 특성의 구성원들의 화합이 마치 다양한 잡목들이 모여 숲을 이루는 것과 같다는 비유의 말이다.

특히 빠옥 총림은 사마타 위빠사나를 수행하는 요기들의 숲이다. 미얀마에서는 아직도 요기를 선수행자로 칭한다. 인도불교에서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전부터 불교의 선수행자도 요가를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요기(yogi)’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대승의 유식불교를 유가행이라고도 부르는데 다름 아닌 요가 수행을 말한다. 사실 유식은 선정수행을 통해 깊은 마음의 구조와 작용을 통찰한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유식의 도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으로 선정 수행에 의해 가능하다. 선정 수행 속에서만이 유식의 도리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선정 수정은 사마타 위빠사나를 의미한다. 빠옥 또한 아직까지도 사선(四禪) 등의 선정 수행의 기초를 전제하는 위빠사나를 강조한다. 위빠사나 뿐만이 아니라 사마타 수행도 강조한다.

나아가 이러한 수행은 전통 논서인 <청정도론(Visuddhimagga)>을 중심 교안으로 두고 있다. 이는 모든 상좌부 불교국가의 공통적인 전통이기도 하다.

‘빠옥’은 원래 지명이다. 빠옥 총림은 빠옥 마을에 그리 멀지 않은 산록에 위치해 있다. 빠옥은 선정 수행을 꾸준하게 단계적으로 실천해 갈 수 있도록 한다. 그렇기에 총림의 큰 행사와 관련하여 운집하는 인원은 계절별로 다르지만 많게는 1000명에서 1800명까지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는 20여 개국 이상에서 300여명이 넘는 외국인 출재가 수행자도 포함된다.

빠옥 총림은 중간절(Middle Monastery)을 중심으로 윗절(Upper Monastery)과 아랫 절(Lower Monastery)로 크게 세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산 안으로 깊숙이 꼭대기 방향에 윗절이 있고, 초입의 평지에 아랫절이 있다. 윗절은 남성 수행 처소이고 아랫절은 여성 수행 처소로 구분되어 있다. 윗절에서 아랫절까지 걸어 내려가려면 거리도 상당하다. 윗절이든 아랫절이든 선방 또는 선실의 규모는 굉장히 크다. 그리고 이러한 건물들을 중심으로 숲속과 산자락의 여기저기에 수많은 수행처가 산재해 있다.

이를 초기불교경전에서 사용하는 ‘꾸띠(kui)’라는 말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이러한 꾸띠는 홀로 머물며 정진하는 수행처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약 280개 이상의 꾸띠가 빠옥 총림에 산재해 있다.

또한 지금도 계속해서 건립 중이다. 하지만 총림에 처음 입방한 요기가 꾸띠에 머물고 싶다고 해서 바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수행을 위해 총림에 입방하게 되면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2인 1실이 주어진다. 또한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여 머물게 하지 않는다. 내일 나에게 주어질 방도 한국 스님과 스페인 요기와 함께 머문 방이다. 한국 스님은 내일 이곳을 출발하여 귀국한다고 한다. 

빠옥 총림의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빠옥 총림의 선원장 스님으로 알려진 아신 아찐나(Ashin cia) 스님은 1981년에 제3대 선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 빠옥 총림은 세상에 크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빠옥 총림의 수행처는 선원장 스님에 의해 불과 10여년 만에 비약적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두 스님의 법력일 것이다. 나 또한 양곤으로부터 밤새 버스 타고 다음날 도착한 이유이다.

도력있는 선지식이 출현하면 거리도 상관하지 않고 국내외로부터 많은 수행자들이 운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 도착하여 다시금 도인 한 사람이 세상에 나오면 만 중생을 구한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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