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무산, 그 기억과 흔적

김병무, 홍사성 엮음/인북스 펴냄/1만 2천원

지난 5월 16일 강원도 설악산 신흥사에서는 지난해 입적한 신흥사 조실을 지낸 설악당 무산 스님의 1주기 추모 다례제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평소 도반이었던 조계종 전계대화상 성우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무산 스님 어딜 가셨어요. 잠시 돌아 앉아 하고픈 일 있어 적정 삼매에 드셨습니까. 아니면 지옥 가셔서 곳 중생들 마정수기 하셨습니까. 도솔천 내원궁에서 목청껏 무생곡을 불렀습니까. (중략) 속히 대적 삼매에서 깨어나소서. 영남루에 봄바람 일어 천하가 태평합니다”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가슴에 무산 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사무치게 해 주었다.

큰스승으로 기억한 48편 글 모아
신분 차별없이 다양한 사람 교유
한글 선시조 개척, 문학사 큰공헌

무산 스님은 현대 한국불교가 배출한 큰 스승 가운데 한 분이다. 동진 출가해 조계종 선승들의 추대로 설악산 조실에 오른 불교계의 큰 산이었다. 특히 무산 스님은 신분이나 직위에 차별을 두지 않고 많은 이들과 만났다.

위로는 국가지도자부터 아래로는 시골 촌부에 이르기까지, 사상적으로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교유했다. 때로는 가르치고 때로는 배웠으며, 시대와 고락을 함께길 주저하지 않았다. 시인이기도 했던 무산 스님은 한글 선시조를 개척해 현대한국문학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이 언행록에 필진으로 참여한 분들의 면면 역시, 스님의 교유 범위만큼이나 다양함을 자랑한다. 무산 스님과 수십 년 동안 설악산문서 함께 수행하며 교분을 나누었던 도반 스님들과 사형 사제, 불가의 후학들은 물론, 문단의 중진들과 정계 인사들, 학계, 언론계 인사들이 스님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특히 무산 스님 입적 후 페이스북을 통해 조의를 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글에서부터 스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 이장의 회고담에 이르기까지 스님을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는 시대의 큰 스승으로 기억하는 48편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무산 스님 1주기를 맞아 펴낸 이 책에 실린 회고담이 스님이 보여준 가풍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여러 사람이 각기 만져본 코끼리 다리에 대한 기억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책으로 엮는 것은 생전에 스님이 보여준 본지풍광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아직 어리석은 후학들이 살아가는 데 지남으로 삼기 위해서다. 엮은이 김병무와 홍사성은 한때 절집에서 무산 스님과 사형 사제의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속가에 나와서도 불교출판과 언론 쪽에서 일한 덕분에 오래도록 곁에서 모실 수 있었다. 아직 물어보아야 할 것들이 많은데 갑자기 생사를 나누게 되자 그 황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해 생각해보니 옛사람을 본받아 언행록이라도 간행하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할 일 같았다.

이에 부랴부랴 평소 가까웠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과 추억담을 수집해 한 권의 책으로 엮기로 했다”고 엮은이의 취지를 밝힌다.

이 책서 필자들은 해골 인형을 곁에 두고 본래면목을 상기하며 하심과 무욕의 삶을 살아온 수행자, 만해축전과 만해대상으로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만해의 자유와 생명 사상을 새롭게 고취한 대사상가,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일깨우는 선승(禪僧)으로서 풍모를 보여온 스님과의 생전 일화들을 진솔히 소개한다. 한국 선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대시인이면서도 스스로 빛나기보다 남을 빛내주는 일로 평생을 헌신하고, 힘없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오현 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다양한 화법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조오현(曺五鉉)으로 알려진 설악당 무산 스님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밀양 성천사로 동진출가, 인월화상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 젊은 시절 금오산 토굴에서 6년 동안 고행했으며 설악산 신흥사에서 정호당 성준화상을 법사로 건당했다. 뒷날 신흥사 조실이 되어 설악산문을 재건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되었다. 만년에는 백담사 무문관에서 4년 동안 폐관정진하다 2018년 5월 26일(음력 4월 12일) 입적했다.

저술로는 〈벽암록 역해〉 〈무문관 역해〉 〈백유경 선해(禪解-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 〈선문선답〉 등이 있다. 일찍이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스님은 한글 선시조를 개척하여 현대한국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시집으로 〈심우도〉 〈만악가타집(萬嶽伽陀集)〉 〈절간 이야기〉 〈아득한 성자〉 〈적멸을 위하여〉 등이 있다. 은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으며 DMZ 평화대상, 조계종 포교대상, 남명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이승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글
“생전에도 생사 초탈한 분”

불가에서 ‘마지막 무애도인’으로 존경받으셨던 신흥사와 백담사 조실 오현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의 한글 선시가 너무 좋아서 2016년 2월 4일 〈아득한 성자〉와 〈인천만 낙조〉라는 시 두 편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야 털어놓자면, 스님께선 서울 나들이 때 저를 한 번씩 불러 막걸릿잔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시자 몰래 슬쩍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묵직한 ‘화두’도 하나씩 주셨습니다.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 스님께서 옛날 일을 잊지 않고 〈아득한 성자〉 시집을 인편에 보내오셨기에 아직 시간이 있을 줄로 알았는데, 스님의 입적 소식에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스님은 제가 만나 뵐 때마다 늘 막걸릿잔과 함께였는데, 그것도 그럴듯한 사발이 아니라 언제나 일회용 종이컵이었습니다. 살아계실 때도 생사일여, 생사를 초탈하셨던 분이셨으니 ‘허허’ 하시며 훌훌 떠나셨을 스님께 막걸리 한 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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