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 ‘수자타의 집’

울산 해남사 무료급식소 수자타의 집은… 1997년 1월 문을 열었다. 현재 300여 명의 독거어르신들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하고 있으며 신행단체 및 소상인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울산 대표 봉사현장이다. 개원 당시 주지였던 범해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됐으며 이후 주지를 역임한 성본, 만초, 남현 스님의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했으며 현 주지 혜원 스님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수자타의 집’에서 봉사중인 해남사 보리회 회원들이 공양을 준비하는 모습.

19971월 범해 스님이 개소
밤새 식사 못한 어르신 위해
점심 공양 오전 11시부터 배식
매주 월~, 매일 300여 명 이용
2011년 리모델링 확장 이전
25개 단체 당번제로 참여
현판 월하 스님 육필


어느 날, 수자타는 꿈을 꾼다. “수자타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분께 최초의 공양을 올려라토지신의 목소리를 듣고 잠을 깬 수자타는 곧바로 소젖을 짜서 정성스럽게 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을 만난다. 수자타는 고타마 싯달타에게 유미죽 한 그릇을 올린다. 6년간의 처절한 고행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있던 싯달타였다. 고행이 깨달음의 방편이 아님을 깨달은 싯달타는 수자타가 올린 유미죽을 먹고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다. 부처님의 삶이나 오늘의 불자 모두에게 수자타의 유미죽은 특별한 공양이 아닐 수 없다. 공양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실천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주고받는 모든 공양이 수자타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큰 공덕일 것이다. 그 옛날 수자타의 이름으로 공양공덕을 실천하는 곳이 있다. 울산 해남사 무료급식소 수자타의 집이다. 많은 봉사자들이 수자타의 이름으로 공양공덕을 실천하고 있다. 그들에게 대중은 모두 부처님이다. 이 시대의 수자타들을 만나본다.

봉사현장은 설법의 현장어르신들이 부처님

수자타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촉촉하게 비가 내렸다. 수자타의 집으로 들어서자 많은 수자타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갓 지은 밥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커다란 냄비에서는 보글보글 황태국이 끓고 있다. 여기저기서 맛있는 반찬 냄새가 피어오르고, 봉사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하다.

잠시 후 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들어왔다.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봉사자들은 배식을 시작했다. 따뜻한 공양을 차례로 전달하자 차가운 빗길을 지나온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진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 점심이라 하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다. 기자의 눈치를 읽었는지 한 봉사자가 아침을 못 드시고 오시는 분이 많다며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그랬다. 밤새 굶고 오는 어르신들이 많아 배식 시간도 일반 점심식사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시작하고, 음식도 소화하기 편한 것들로 준비한다. 건강을 생각해 싱겁게 간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배가 고픈 것을 넘어 허기진 어르신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수자타의 마음이다.

해남사 보리회 회원들이 공양을 준비하고 있다.

해남사 무료급식소 수자타의 집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에 배식을 시작한다. 매일 300여 명이 식사를 하는 곳으로 지역 내 독거어르신들이 주로 찾는다. ‘수자타의 집19971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 울산 해남사 주지였던 범해 스님(현 중앙종회의장)의 발원으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해남사 앞에 위치한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다. 17평 작은 시설에 주방기구와 탁자, 의자가 놓였고 5명의 봉사자들이 의기투합해 어르신들의 한 끼를 해결해야 했다. 이후 20118, 해남사 맞은편에 위치한 가게를 리모델링해 확장 이전했다. 주방 공간도 좀 더 넓어지고 어르신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공간을 옮기고 난 뒤, 장시간 줄을 서는 모습이 사라져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지금은 수자타의 집 앞에 새롭게 만든 부스도 눈에 띄었다. 더울 땐 햇빛을 가리고 비가 올 때 비를 가리는 쉼터로 제작됐다. 시설이 좀 더 좋아질 때마다 봉사자들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시설이 더해지면서 봉사자들의 수도 많이 늘었고, 그로인해 수자타의 집은 울산지역 사찰 신행단체들의 봉사 기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신행단체 뿐 아니라 이웃종교 및 기업들의 나눔터로도 확장됐다. 현재 해남사 봉사팀 보리회 뿐 아니라 적십자 조은 봉사단을 비롯한 24개 팀이 매일 당번제로 봉사를 진행하고, 대영아스콘 사업, 울산나눔회, ()한국수소사회봉사단 등 기업체의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지역 내 구암문구, 다아라식육점, 울산 숯불갈비, 성안 황토방 등 작은 가게들도 나서서 식자재를 후원한다. 울산을 대표하는 봉사 일번지다.

수자타의 집에는 매달 25개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함께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적십자 조은봉사단

하지만 수자타의 집의 가장 큰 의미는 봉사자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봉사자들은 어르신이 부처님이다고 입을 모았고, 단순히 자신의 상을 높이는 봉사에 그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의미라고 이야기했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어르신들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특히 봉사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해남사 불자들은 신행학교에서 기초교리를 배운 후 배움을 실천하기 위해 수자타의 집을 찾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은희(60·묘주향) 봉사자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힘이다라디오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각인이 됐다. 실천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매일 알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천선(58·묘운화) 봉사자는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을 보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요. 저희가 나이가 들면 똑같아질 모습이죠. 그분들이 찾아와 공양을 드실 때 그분들이 복 짓게 해주시는 부처님이란 걸 느낍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봉사자는 봉사를 통해 마음이 커지는 보리심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도 했다.

오정학(63·상품화) 봉사자는 길을 가다 어르신을 뵈면 나도 모르게 행복과 건강을 기도하게 된다따뜻하게 기도하는 내 마음을 볼 때 이 모든 가르침이 바로 어르신들이 주신 것이라 생각 된다고 말했다.

해남사 보리회 회원들.

25개 모임 참여울산 지역 봉사 중심

봉사가 부처님 공부
봉사하며 부처님 가르침 공부
아는 것이 힘 아니라 실천이 힘
어르신들이 곧 나의 부처님
해남사 신행학교 출신들 봉사터
행복의 근원 봉사에서 찾아
봉사는 스스로를 지키는 계율

모두를 위한 수자타의 집탄생

수자타의 집을 이끌고 있는 울산 해남사는 통도사에서 문을 연 도심 포교당이다. 1911년 당시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된 해남사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문을 열었다. 울산 청년불교운동의 중심인물들과 항일구국운동을 목표로 조선불교청년회로 활동하며 통도사불교청년회, 울산불교청년회와 협력했다. 해방 이후에는 야학원, 고등학습회, 해영학원, 유치원 등 교육을 담당했다. 처음 해남사가 들어설 당시, 울산시 중심지로 가장 큰 번화가인 곳에 위치해 도심포교당의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도에 들어서면서 울산은 공업도시로 큰 성장을 거듭했고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해남사 주변은 점점 중심에서 멀어졌다. 몇 년 사이에 해남사 주변은 젊음의 거리에서 노인 인구가 많은 구도심으로 바뀌었다. 그때 당시 해남사 앞 50m 앞에 위치한 동헌(東軒)은 울산시의 유일한 공원이었고 어르신들이 친구를 찾아 바둑과 장기를 두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해남사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고 해남사에서 행사나 법회가 있는 날이면 어르신들은 함께 공양을 했다. 범해 스님은 어르신들이 절을 찾을 때면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법회가 없을 때 어르신들께 공양 올릴 방법이 없었다. 고민하던 범해 스님은 1996년 해남사 앞에 있는 제과점을 인수한다. 스님은 모두에게 공양을 베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부처님과 같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그런 의미를 시설의 이름에 담고 싶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스님의 머릿속으로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수자타의 집이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불자들의 집인 것이다.

범해 스님의 원력불사에 울산에 있는 많은 스님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매주 스님들은 순번을 정해 직접 신도들과 함께 찾아왔다. 당시 내원암 만초 스님, 법륜사 정진 스님, 옥천암 영안 스님, 등용사 본명 스님, 학성선원 우룡 스님, 청룡암 종현 스님 등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통도사 방장이었던 월하 스님은 칭찬을 거듭하며 직접 한글로 수자타의 집현판 글씨를 적어주고 격려하며 후원금도 전달했다.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해남사 주지를 역임했던 성본, 만초, 남현 스님 그리고 현 주지 혜원 스님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불자들은 재를 지내거나 생일 등 개인적인 행사가 있으면 보시금을 내고 후원하는 곳이 됐다. 말 그대로 경남 불자들의 정신이 깃든 곳으로 자리 잡게 됐다.

현재는 불교대학으로 운영되는 해남사 신행학교 출신들의 봉사터가 되고 있다. 신행학교는 현재 15, 1500여 명이 졸업했으며 지금은 16기가 공부 중이다. 수자타의 집은 졸업생들의 봉사모임인 보리회의 수행현장이 됐다. 봉사자들은 봉사를 하라고 권한다. 그들은 행복의 근원을 봉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봉사는 스스로를 지키는 계율이 된다고 했다. 봉사가 계()가 된다는 말은 무엇일까? 그들이 봉사에 가치를 두는 만큼 봉사를 아름답게 회향하려면 평소 행동이 바르고 맑아야 한다는 뜻이다.

2018년 12월 해남사 울산불교동문회 김장 봉사 후

어르신들께 식사를 해드리려 찾아오는 날에는 미리 집 안 일을 깨끗이 해두고 상차림도 신경을 더 씁니다. 자녀들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되요.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봉사한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안과 밖이 다르냐는 비난입니다.”

이기숙(57·혜명심) 봉사자의 말이다. 어릴 때부터 해남사서 공부하며 학생회 출신으로 부처님오신날이면 설거지 등 봉사활동을 이어온 그녀이다. 수자타의 집에서의 봉사는 5년차다.

봉사가 진짜 나눔이 되려면 일상생활에서 모범이 되어야 했어요. 봉사를 하면서 자녀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8남매 중 막내이지만 아버님 어머님을 저희가 모셨습니다. 저희 부모님 봉양도 안하면서 다른 어른들의 식사를 차리는 건 기만이라 느꼈기 때문이지요

봉사자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항상 하게 된다고 했다. “나의 봉사는 떳떳한가?” 그들에게 봉사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죽비가 되었다.

정옥순(60·보화수) 봉사자는 봉사는 삶의 활력소다고된 직장 업무로 일이 힘들 때 봉사는 오히려 힘을 채워주는 에너지원이 된다고 했다.

22년간 수자타의 집에서 봉사를 이어온 창립멤버 김태언(57·보문행) 봉사자는 아이가 태어나고 8살 되던 해, 수자타의 집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지만 잔소리가 아닌 살아 있는 모범으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자랐을까요? 봉사는 정말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집을 가꾸며 평소 불자로서 흠 잡힐 부분이 없어야 비로소 봉사가 완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해남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해남사 인근에 주택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 중구청은 구도심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수자타의 집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주지 혜원 스님은 같이 개발되어 더 좋은 환경이 제공 되지요라고 짧게 답했다.

해남사가 혹시라도 사라질까 염려한 기자의 질문에 없어지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는 답이었다. 이어 혜원 스님은 수자타의 집을 분별심을 넘어서는 성장터라고 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가르치는 살아 있는 현장이란 뜻이다.

숨어 있는 부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나의 부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봉사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어르신이 부처라는 말인 동시에 봉사하는 그들이 바로 부처라는 뜻이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공양은 부처의 마음을 가졌을 때 가능하다. 부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너와 내가 하나인 세상. 수자타의 집에선 지금도 깨달음의 공양이 고슬고슬 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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