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믿음 편 18

“책임과 권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권위가 없는 책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도 있을 수 없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말이다. 권위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준엄한 뜻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의사는 병자에 대해 치료라는 책임을 다함으로써 권위를 갖게 된다. 특히 의사는 생명이라는 절대 가치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렇다. 의사들에게 존경과 권위의 상징인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이유도 그 책임의 무게 때문이다.

책임은 본래 어떤 요구나 부름에 대한 반응(response)을 의미한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울면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절대적 책임이자 의무다. 책임을 영어로 ‘반응’을 의미하는 ‘responsibility’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약사여래는 이러한 책임과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다. 약사신앙은 약사여래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해 중생들의 질병을 치유하려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이분은 본래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 부른다. 유리와 같은 칠보(七寶)로 장엄된 정토인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머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의사이자 약사인 부처다.

약사여래는 전생에 약왕(藥王)이라는 보살로 수행하면서 12가지 큰 서원(大願)을 세웠다고 전한다. 모두 중생들의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중생들의 병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며, 외도에 빠지거나 죄를 지은 자들을 모두 구제하겠다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약사신앙 역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불교의 이상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선덕여왕이 병에 걸렸을 때 밀본(密本)이라는 승려가 〈약사경〉을 염송하고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또한 경덕왕 때는 경주 분황사에 30만 7천 600근의 구리로 만든 거대한 약사여래를 안치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약사신앙이 일찍부터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삼국전쟁으로 수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약사여래는 대중들에게 구원이자 희망이었다. 약사여래는 중생이 아프면 언제든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부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약사신앙은 오늘에도 대중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이라 한다. 그런데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 세 분의 붓다를 모신 전각은 특별히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높여 부른다. 물론 이곳에 삼세불(三世佛)이나 삼신불(三身佛)을 모시기도 한다. 약사여래는 바로 이 대웅보전에 모셔진 분이다. 이는 곧 약사여래가 불교에서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생구제라는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분을 따로 모신 약사전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리고 손에는 항상 약함이 들려있다. 중생이 아프면 언제든지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약사신앙이 오늘날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약사들의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픈 환자가 있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즉각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반응, 즉 책임이라는 것을 약사신앙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의료계가 그러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환자를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본다는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사찰에 가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약사여래를 종종 만나게 된다. 중생들이 아프기 때문에 환한 표정을 짓지 못하는 것이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중환자 앞에서 낄낄대며 웃는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책임 없는 권위는 모래 위에 쌓은 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오늘날 약사신앙이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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