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염천(焰天)의 열기를 벗삼아 우리 대중들은 정진해야됩니다

늘 건강살펴 무사히 안거동안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맡은 소임이 소임인지라 중언부언이지만 별 볼일없는 늙은 비구가 법상에 올라와 몇 마디할 수 밖에 없으니 사부대중들은 잘 들어주십시오. 지난 산철동안 중국의 청담가(淸淡家)들에 대해 들었습니다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며 오석산(五石散)을 먹는 그런 부류들인데 맑은 이야기를 나누고 고상한 척하지만 실질(實質)이 없어 쉼없이 생기는 상황들에는 손발 둘 곳을 모르는 그런 이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이나 참담하며 두려워졌습니다 부처님 말씀과 행을 핑계삼아 저런 청담가들의 공리담론(空理談論)과 같은 행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고요함에 집착함을 경계하셨고 조사스님들께서도 성성(惺惺)과 적적(寂寂)을 말씀하셨지 고요한 경계(寂寂)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성성(惺惺)함이 없는 적적(寂寂)은 외도이지 우리 불교가 아닙니다 깨어있음이 없이 고요한 경계에 집착하는 이들은 어찌보면 외도요, 잘 쳐줘봐야 청담부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청담(淸淡)으로는 생사의 깊은 수렁에서 해탈할 수가 없습니다 맑은 이야기 따위로 어찌 마하반야에 계합할 수 있겠습니까!

저부터 시작하여 우리 절집안의 많은 이들이 청담가(淸淡家)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제가 너무 적인 측면만을 보아 입장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편중된 것이 아닌가 오해들을 할 수 있습니다만 理事가 본디 둘이 아니기에 원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늘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예전 인연으로 가끔 세속에 나가 일을 보게되는데 다른 종교들은 실용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활동을 열심히들 하는데 우리 절집은 갈수록 현상적인 부분을 놓쳐서 쓸만한 인재가 드물게 생각이 듭니다 뼈아픈 얘기지만 허황된 생각들에 경도되고 서푼어치도 안되는 식광(識狂)을 깨달음으로 착각해 자신이 불조(佛祖)나 된 듯 함부로 말해대는 청담말류(淸淡末流)들만이 자주 보입니다 이런 발전된 세상에 농경시대 때나 통용되던 관념으로 어찌 신시대의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현칙스님이 법안문익스님 회하에서 감원소임을 살 때 법안스님께 한번도 법문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현칙스님 자신은 청림화상 문하에서 한 소식을 했다고 믿고있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법안스님께서 현칙에게 뭘 깨쳤냐물으시니 현칙스님 답하기를 丙丁童子 來求火!’

丙丁은 불을 이름함이니 불이 불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법안스님께서는 그 말을 수긍치않으셨고 현칙스님은 짐을 싸서 법안스님에게서 떠났습니다 하지만 현칙스님은 다시 돌아가 다시 법안스님께 법을 청했습니다 청림화상 문하에서 얻었던 작은 것에 집착을 했었다면 현칙스님은 생사관(生事關)을 돌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칙스님은 큰 마음을 내어 다시 돌아왔고 무엇이 부처인가를 법안스님께 여쭈었습니다

丙丁童子 來求火!’ 법안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고 현칙스님은 깨쳤습니다.

우리 사부대중들은 악지(惡知)와 악해(惡解)를 여의고 실참실오(實參實悟)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대가 엄청나게 빨리 변합니다 어설픈 지혜와 지식으로는 이 변화에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바른 정진(正定進)으로 바른 견해(正見)를 얻어야만이 그리 될 수 있습니다

생사의 업은 깊고 우리가 정진할 시간은 한정이 있습니다

언제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며 열심히 수행정진하며 전법포교하는 모든 사부대중들에게 언제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 더욱 스스로를 살피며 이번 하안거 최선을 다해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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