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 고지서가 나왔다. 우리 집의 경우 전기세, 수도세 등은 언제나 같은 평수 아파트의 평균보다 낮다.

그러나 같은 평수의 평균치를 웃도는 유일한 것이 있으니 바로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다. 평소 늘 과하다고 느껴왔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고지서에 그림으로 비교분석의 수치가 나오니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왜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올까? 이유는 간단하다. 먹을 것들이 냉장고 안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산골에서 살 때는 냉장고가 없었다. 시원한 우물에 참외 동동 띄웠다가 먹어도 시원했다. 과일이나 야채는 밭에서 필요할 때마다 따서 먹으니 보관할 이유가 없었다. 예전에는 조그만 냉장고 하나로 6인 가족이 너끈히 지냈다.

그런데 요즘은 일반 가정집에서도 대용량의 냉장고에 그것도 모자라 냉동고까지 구비하고 산다. 게다가 집 앞에 즐비한 대형 마트를 수시로 드나들며 냉장고에 넣어두면 되지라며 대량묶음 상품, 1+1 상품들을 저렴하다는 이유로 사들이다 보니 냉장고는 늘 음식물로 차고 넘친다. 많은 경우, 냉장고로 들어간 음식들은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냉장고가 120크기에서 최근 901까지 등장했다니 커져만 가는 냉장고에 우리가 채워 넣은 것은 무엇일까? 결국 쓰레기가 될 음식, 수없이 득실거리는 변종 대장균들, 그리고 우리의 어리석음과 욕망들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냉장고가 애물단지처럼 여겨진다.

어린 시절 과실나무에서 갓 따온 과일들을 먹고, 밭에서 막 캐어낸 야채들을 먹어온 입맛 때문에 냉장고에 든 음식을 싫어하니 우리 집 냉장고는 더욱 푸대접 신세다. 요즘은 남편도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싸다고 사다 나르던 장보기를 멈추고 냉장고 비우기를 시도 중이다. 수시로 냉장고 비우기를 시도하지만 비워지는 속도보다 채워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요즘은 미니멀리즘의 흐름을 타고 냉장고 크기를 줄이고 또 간혹 없이 사는 사람도 종종 있는 걸 본다.

우리나라에서 냉장고 없이 산 사람의 선구자를 꼽는다면 윤호섭 국민대 명예교수일 것이다. 그는 2003년 냉장고와 에어컨을 없앴다. 벌써 16년째 냉장고 없이 살고 있다. 윤 교수는 냉장고를 없앤 후 대형 마트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시장이나 트럭 등에서 딱 필요한 만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터질 것 같은 우리 집 냉장고와 평균을 넘어선 음식물 쓰레기 양, 이 같은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윤 교수의 소비 방식에서 발견한다. 대형 냉장고 소비 세계 1위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윤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냉장고 없이 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큰 냉장고를 비싸게 주고 사서 그 안에 음식물을 넣고 썩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나 역시 그 이상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한 방송국에서 냉장고 비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결과 여느 가정집 냉장고에 든 음식물만으로 40여 일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 집의 경우는 어떨까? 이제 시작 단계인 냉장고 비우기를 통해 내 안을 채우고 있는 욕심과 어리석음도 말끔히 비워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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