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행사가 마무리됐다
분주했던 경내도 이젠 조용해져
연초부터 오직 이날만을 준비해

마치며 ‘가난한 노파의 등불’ 상기
목련존자 나서도 꺼지지 않은 燈
“부처님오신날 이후 생각하라” 교훈

화려한 행사로만 생명 유지 못해
찬란한 등불 밑이 더 어두운 법
불교계는 자기 발밑을 비춰봐야

사찰 안이 고요하다. 주지 스님도, 원주 스님도, 부전 스님도, 종무원들도 보이지 않는다. 공양간으로 가본다. 부처님오신날 그 많은 대중에게 먹을거리 지어내느라 부산했던 솥이며 냄비, 커다란 양푼들 모두 깨끗하게 씻어 물기 빠지라고 엎어놓은 채 공양간 보살님도 어딜 가셨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잠잠하시다. 부처님오신날이 지나니 사찰을 드나들던 모든 인적이 약속이나 한 듯 다 끊어졌다. 고요함만이 가득한 경내엔 높이 내걸린 연등이 하릴없이 봄바람에 흔들린다.

불교계 최대 명절인 부처님오신날, 오직 그날 하루를 위해 참 부지런히 열심히 달려왔다. 등을 만들어 법당이며 경내 뜨락 위며, 마을 입구며, 자동차 씽씽 달리는 도로에까지 등을 내거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연등행렬에 참여하려고 청년회, 학생회는 밤낮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커다란 등을 만드느라 정말 힘들었다. 공양간에서는 몰려드는 신도들과 대중에게 맛깔스런 절밥을 대접하려고 또 얼마나 비지땀을 흘렸을까. 이 모든 일들을 총지휘하느라 올해 초부터 스님들도 발을 동동거리며 부지런히 오가셨을 터다.

부처님오신날은 우리 절 신도만이 아닌, 평소 발걸음이 뜸하던 신도의 가족들, 그리고 데면데면 지나치던 이웃들과 행인들이 절에 오는 날이다. 불사라면 멀찌감치 달아나던 사람들도 부처님오신날이니 연등 하나 쯤을 밝혀야하지 않겠느냐며 지갑을 열고 흔쾌히 불전함에 시주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하지 않던가. 불교계는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느라 반년을 보내고, 부처님오신날의 수입에 의지해서 나머지 반년을 산다고.

그 어마어마한 행사가 이제 막을 내렸고, 잠깐의 휴식기를 거친 뒤 불교계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초파일을 무사히 지낸 뒤 바람만이 고요히 지나는 사찰 경내를 거닐면 새삼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가난한 노파의 등불이다.

, 그 이야기를 또 합니까라고 진저리를 치는 분들이 계실까? 그런데 가난한 할머니의 등불이야기는 정작 부처님오신날이 지나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최고 권력자도 어마어마한 재력가도 평범한 이웃들도 모두가 등불을 밝히며 행복하게 하루를 지내고 다들 돌아간 이후, 부처님은 사원을 환히 밝힌 등불을 모두 끄도록 목련존자에게 이르시지 않았던가.

목련존자는 모든 이들의 원을 담은 등불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씩 꺼나갔고, 존자의 손끝에서 세상 모든 등불은 그렇게 사위어갔다. 그러나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할머니가 간신히 마련한 몇 푼의 돈으로 기름을 사서 밝힌 등불은 어땠는가. 바람에도 목련존자의 손으로도 꺼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정성으로 등을 밝히라는 메시지보다 부처님오신날 그 이후 불교계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일러주고 있다.

절실하게 도움을 바라는 가난한 이웃을 살피고, 세속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힘겨운 이들을 든든하게 후원하고 지지하며, 저들이 조금 더 알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는 일, 그리고 불교계가 자정의 힘을 갖추어 온 세상 양심들의 마중물이 되는 일이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만 화려하면 그 생명이 얼마나 오래갈까. 찬란한 등불 바로 밑이 더 어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행히 가난한 할머니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니 무엇보다 불교계는 자기 발밑을 비춰볼 일이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어떻게 빛을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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