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믿음 편 17

학창시절 선배가 후배의 기강을 잡을 목적으로 종종 하는 말이 있었다. 선배는 하느님이나 부처님과 동기동창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반복해서 따라 하도록 시키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선배의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들 일상에서도 복종의 논리적 근거를 교주에서 찾고 있으니, 종교의 영향력이 크긴 크다는 생각이다.

중국불교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가 나타나는데, 바로 북조(北朝)시대에 유행한 왕즉불(王卽佛), 왕이 곧 붓다라는 신앙이다. 이는 왕이 곧 붓다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임금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왕의 얼굴을 모델로 삼아 불상이나 불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한 것이다.

불교에 의지해서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신앙(護國信仰)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하였다. 호국의 주체인 임금과 붓다는 동일하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일은 곧 임금을 지키는 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호국신앙은 나라에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전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종교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호국신앙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널리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 신라 지역에 호국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북조에서 유학하다 귀국한 원광(圓光)은 화랑의 지도이념으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제시하여 국가를 보호하도록 하였으며, 자장(慈藏)은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황룡사 9층목탑을 지어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하였다.

호국신앙의 모습은 백고좌회(百高座會)와 팔관회(八關會)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백고좌회는 백 명의 고승을 초청해 국가의 액운을 물리치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법회이며, 팔관회는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명복을 비는 법회였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목적으로 17년에 걸쳐서 고려대장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호국신앙의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임진왜란 때 휴정과 유정을 비롯한 수많은 승려들은 왜군을 물리치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한용운, 백용성 등의 스님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일도 빼놓을 수 없는 호국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호국신앙을 이야기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라를 지킨다(護國)’고 할 때, ‘나라’에는 내가 살고 있는 조국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그 나라는 다름 아닌 부처님의 땅(佛國土)이자 정토(淨土)이기 때문에 누군가 이곳을 더럽힌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백고좌회와 팔관회, 고려대장경 제작,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활동 등은 모두 정토를 지키기 위한 실천이었다.

호국신앙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곧 정토라는 현실정토(現實淨土) 사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정토는 죽은 다음에 태어나거나, 아주 먼 미래에 오는 세계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공간을 청정하게 가꾸고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국의 호국신앙이 왕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한 북조시대의 정치적 호국신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답사를 다니다 보면 호국사찰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도량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임진왜란 때의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다. 호국신앙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왔다. 남북 간의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거나 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전국의 사찰에서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기도가 봉행된다. 잊지 말기로 하자.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가 정토라는 것을, 그리고 정토는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는 평화의 땅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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