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紀, 탄신일이 아닌 열반일을 기준해
반니원경 등엔 탄신·정각·열반일 같아
정녕 슬프고도 아름다운 승화의 완성
가셨어도 보내지 못한 그 자취 기린다

불기2563년,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표어는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이다. 연등회는 동국대 운동장에서 어울림 마당이 펼쳐지고,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의 아기부처 관욕의식을 봉행하면서 시작됐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연등회 연등행렬은 의장대의 화려한 의장행렬을 필두로 예년과 같이 서울 동국대 운동장에서 출발해 동대문을 거쳐 조계사까지 종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10만 연등의 물결이 밤하늘을 수놓았고, 30만여 명의 내외국인이 연등행렬에 함께 동참하는 장관을 연출됐다. 연등행렬은 종파와 사찰을 초월해 하늘에서 하강하는 천녀상, 사천왕상, 보살상, 애기부처님상, 용, 탑, 코끼리, 색색들이 연꽃 등 온갖 종류의 거대한 등을 앞세우고, 손에 손 청사초롱 불 밝히며 부처님오신날을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었다.

연등행렬의 끝 모를 인파에 차량도 멈춰서고 시간도 잊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서울의 중심 거리는 갠지스 강가의 모래처럼 수많은 인파가 켠 연등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출렁 도로를 따라 넘쳐흘렀다. 너와 내가 모두 법계의 꽃송이 되어 화엄의 바다를 장엄하였으니 세계일화(世界一花)의 부처님 마음이었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도 사찰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마다 가로수에서 전봇대로 이어진 색색의 연등이 걸려 부처님오신날이 불교 최대의 명절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시골 장터 방앗간도 쑥인절미를 뽑느라 불자들이 북새통이었다. 초파일이면 들에 쑥이 제법 커서는 낫으로 베어다 연한 잎만 훑고 억센 줄기는 골라낸 뒤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서 따로 담고, 떡쌀은 찹쌀에 멥쌀을 조금 섞어 방앗간에 가져가면 쑥인절미를 뽑아준다.

시골에서는 큰 대야에 통째로 떡을 가져와 절에서 콩고물을 묻혀 손으로 일일이 비벼 조막만하게 인절미를 빚는다. 불자들의 정성도 정성이지만 수십 년 절에 오간 시골 할매들 손맛이야 방앗간이 흉내 낼 수 없으니, 말캉한 인절미를 하나만 입에 넣어도 마음은 푸근해지고 속은 금방 든든해진다. 하여 할매들은 스스로 만든 고 인절미 맛에 반해서 아들네, 딸네 거기다 손주들 몫까지 등을 다니 비좁은 법당은 훈기로 가득할밖에. 주지 스님은 오랜만에 복작거리는 법당 안에서 어깨가 으쓱할밖에.    

나는 인가도 없고 차량 통행도 없는 시골 산속 움막에 앉아 생각하였다. 이제 갓 새잎을 달고 마음껏 푸르를 준비 중인 5월의 나무와 나무 사이에 등줄을 걸고 비닐 연등이라도 내걸어야 하나? 어둠에 덮인 먼 산 너머 고라니가 한 번씩 안부나 묻거늘 뉘가 오실까 하여 밖에 등을 다나 자문해 보는 것이다.

마을은 멀고, 버스도 없어 유모차나 끌고 다니는 허리 굽은 할매들이 움막법당에 찾아올 리도 없었다. 멀리 도시에서 인연되는 몇몇 불자님들이 안부 차 법당에 등을 달아 줄 뿐이다. 그리고 “부처님오신날인데 별고 없으시냐”고 묻는다.

나는 부처님오신날에 사람은 아니와도 밭두렁에 제멋대로 자라는 머윗대를 꺾어서는 삶아 냉동실에 넣어둬야 한다. 장화 신고 산으로 올라가서는 취나물도 뜯어야 하고, 오가피순도 따야하고, 고사리도 꺾어 솥뚜껑에서 눈물 나도록 끓여 찬물에 헹궈 초파일 나물로 쓸 준비도 마쳐야 한다.

그래, 부처님오신날이구나. 오래도록 기다린 님, 오매불망 그리던 그 님이 오셨구나. 오셨다는 그분은 그토록 눈물겹게 기다리던 님, 당신 아니면 정녕 의미 없다던 그이셨구나. 그런데, 오셨다던 그님은 국가와 국가의 전쟁, 지역과 지역의 분쟁, 반목과 질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그분이셨던가.

착취의 기아와 기근으로 인한 아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그분이셨던가. 눈 멀어 처량한 신세 캄캄한 세상에 빛을 주실 그분이셨던가. 앉은뱅이 걷고, 뛰지 못하는 설움 가시게 할 그분이셨던가. 의지 없는 외로운 고아신세 따뜻이 보듬어 주실 부모 같은 그분이셨던가. 폐병을 낫게 하고 암세포 말끔히 씻어 줄 의술의 대가 그분이셨던가. 집 없는 설움, 번듯한 직업 없는 나그네 설움 가시게 할 억만장자 그분이셨던가. 가난해서 학대받고 못 배워서 천대받던 평생 한을 단박에 씻어 줄 절대 권력의 그분이셨던가. 홀아비, 과부, 독거인의 외롭고 서러운 사정 다 해결해 줄 인연성취 그분이셨던가. 멀리 떠난 자식 다시 보고 효도 못한 부모님 극락으로 인도하실 전지전능 그분이셨던가.

부처님오신날 연등 소원지마다 소원성취, 취업성취, 건강발원, 사업번창….

부처님 모셔 놓은 불단 앞에 등줄을 치고, 색색으로 한지 연등을 달아 알전구 넣고는 전깃불을 밝힌 뒤 그 아래 앉아 곰곰이 생각하였다. 내게도 그리움은 있었고, 보고픈 이도 있었고, 사모하던 이도 있었구나. 내게도 어릴 때부터 나이 따라 변해가던 소원들이 있었구나.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그 바닥없는 욕심도 있었구나. 만나고 싶은 이도 있었고 놓치고 싶지 않은 이도 있었구나. 오르고 싶은 곳도 있었고 떨쳐버리고 싶은 것도 있었구나.

그렇다면, 오셨다던 그님은 존안을 먼발치에서 뵙기만 해도, 손만 한번 잡아줘도 내 허허로움 가득 채워지는 불세출의 그이였더란 말인가?

아니다. 아니다. 오셨다던 우리 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풀 먹인 장삼자락 휘날리던 그이 아니었으며, 겹겹이 솜털 누빈 옷, 조각천으로 멋 부린 승복 입은 그이 아니었어라. 임금처럼 화려하게 군대를 사열하고 어가 타고 오신 그분이 아니었어라. 구름을 불러서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사람 마음 유혹해 이익 취하는 그이가 아니었어라. 시체 싼 고름 묻은 천 냇가에 빨아 입고, 쪽박 같은 그릇하나 달랑 들고, 거름뱅이 마냥 맨발로 탁발하러 다니시던 그이 아니셨던가. 누군가에게 미움 사 코끼리에게 짓밟혀 죽임을 당할 뻔했던 이였고, 음탕한 지도자라 모함당한 이였고, 늙은 몸 누일 곳 없어 사라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이였어라. 몸 아프고, 배고프고, 목마른 그 이였어라.

불기(佛紀)는 기실 부처님 탄신일이 아니라 부처님이 열반한 날을 기준으로 하였다. 고해의 바다라고 명명하셨던 이 사바세계에서 80평생 사셨던 한 늙은 성자, 혈변을 흘리며 “아난아, 목마르다”고 힘없이 말씀하시며 휘청걸음으로 도달한 사라수 아래의 그 영면의 날이다. 그래서 가신 날을 기준으로 오늘날 ‘부처님오신날’이다.

도정 스님/ '해인' 편집장, 시인

〈반니원경(般泥洹經)〉 〈수업본기경(修業本起經)〉에는 “부처님은 사월 초파일에 탄생하여, 사월 초파일에 출가했으며, 사월 초파일에 정각을 얻어 성도하고, 사월 초파일에 입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신 날을 오신 날의 기준을 삼다니! 정녕, 슬프고도 아름다운 승화의 완성이다.

가셨어도 보내지 못한 그 거룩한 분의 자취를 우리는 기어코 오신 해로 여기며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 외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짐 하나 새로 하였다. 가신 날이면 어떻고 오신 날인들 어떠리. 우리 마음에 그분을 영접한 날이 곧 오신 날이거니와 나도 흥겨운 마음으로 연등을 걸어야 마땅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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