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공자 탄신일에 대한 논란

부처님 가르침은 어디를 가도 가득하다

남다른 비경을 자랑하는 남해에는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 여러 군데 있다. 우리나라 삼대 관세음보살 성지의 하나로 알려진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인 683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터를 잡았다. 호구산에는 용문사가 있는데, 신라 애장왕 3년인 802년에 세워졌다. 망운산에 자리한 화방사는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역시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화방사는 창건 당시에는 연죽사(煙竹寺)라 불렸다가 고려 중기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중창한 뒤에는 영장사(靈藏寺)라 하였다. 그러다 조선 인조 3년인 1636년 계원(戒元)과 영철(靈哲) 두 스님이 현 위치로 옮기면서 화방사가 되었다

대승·남방불교권 봉축일 달라
유교에서도 공자 탄신일 논란
가르침 앞에 날짜 구분 무의미

그 밖에도 골골마다 사찰을 품고 있어 불심 깊은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방사를 자주 찾는다. 이 절 주지로 계신 승언 스님은 남해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지만, 무엇보다 남해가 불교 성지라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계시다. 다들 알다시피 남해는 고려 중기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불력(佛力)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판각한 고려 팔만대장경의 얼이 숨 쉬는 고장이다. 그래서 남해에서는 지금 다양한 대장경 관련 기념사업이 한창이다. 뜻 있는 분들이 모여 ‘고려대장경 판각성지 보존회’라는 모임을 꾸렸고, 승언 스님은 이 보존회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나도 회원으로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두 주 전쯤 몇몇 사람들과 함께 화방사를 가게 되었다. 주지 스님께서 급히 찾는다기에 부랴부랴 갔는데,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절 마당에 걸 연등의 괘대(掛臺)를 설치하니 도와달라는 말씀이셨다. 천 년 고찰임에도 막상 힘을 쓸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 도움을 청했다는 것이었다. 뭐 별 거 아니네 싶어 팔을 걷어붙였는데, 막상 해 보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꽤 굵은 쇠파이프를 이리저리 연결해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하려니 주지 스님을 비롯한 장정 여섯이 오후 내내 달라붙어서야 겨우 마무리를 지었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힘이 배나 들었다. (나는 떨어지는 파이프에 팔뚝을 맞아 피를 보는 부상까지 당했다.) 해마다 축일이 오면 화려하게 걸린 연등을 찬탄하며 구경만 했지 어떻게 걸렸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제야 축원을 담은 연등을 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부처님오신날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이라 부르다가 순 우리말로 고쳐 ‘부처님오신날’이 되었다.

부처님오신날을 사월초파일(四月初八日)이라고도 부르는데, 부처님 생일이 음력으로 4월 8일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양력으로 5월 12일인데, 이 날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다양한 행사들이 벌어진다. 거리마다 연등이 걸리고 기념탑들이 길목을 장식한다. 화방사에서는 이 날 신도들을 모시고 노래자랑을 연다고 하는데, 나는 음치라 참가하지 못하니 퍽이나 유감이다.

그런데 음력 4월 8일을 부처님 생일로 기리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정도다. 동남아에서도 당연히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지만 날짜가 다르다고 한다. 대승불교권에서 정한 날짜와 소승불교(남방불교)의 날짜가 다른 것이다. 상좌부 불교권으로 통칭되는 남방불교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웨삭(Vesak)이라 부르는데, 인도식 음력에서 두 번째 달인 와이사카(Vaisakha) 달을 부르는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거기서는 부처님이 와이사카 달의 보름에 태어나고, 성불했으며, 열반했다고 전해진단다. 이 때문에 상좌부 불교계에서 웨삭은 부처님오신날이자 성도일이며 열반일이기도 하다. 상좌부 불교권의 웨삭일은 음력 4월 15일이라는데, 우리보다 한 주 늦는 듯하다.

부처님오신날은 언제였을까?

그런데 부처님오신날이 언제인지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남방과 북방 불교 사이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음력 2월인지 4월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유명한 초의(艸衣, 1789-1866) 스님의 시문집인 <초의시고(艸衣詩藁) 권2>에 보면 자하 시랑의 ‘이월 팔일’시에 삼가 화답함(奉和紫霞侍郞二月八日之作)이란 시가 실려 있다. 자하 시랑은 조선 후기 때의 시인 신위(申緯, 1769- 1847)를 말한다. 신위는 이 시에서 부처님의 탄신일은 음력 2월 8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의견을 7언의 장시로 써내려갔다. 이를 읽어본 초의 스님이 그 의견에 시로 대답했는데, 전편은 아래와 같다.

이월 팔일과 사월 팔일은
석가의 생일로 의견이 분분하네.
살펴보면 주나라 소왕 때에 그치지도 않고
무을과 하걸의 연대까지 올라간다네.

초나라 장왕 때와도 같다고 하는데
춘추는 원래 날짜가 틀리지 않는다네.
소왕이라 하는 것 근거가 뭔지 몰라도
갑오년 갑인년이라고 서로가 난리라네.

어떤 이는 입적한 날이지 생일은 아니라는데
원래 나함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
취령의 성인이 법인을 전하니
석주문자에서 현기가 새어 나왔네.

알려진 이야기가 모나고 치우쳐서
본래 뜻과 어긋나고 터무니없게 바뀌었구나.
묘길상이 본래 만수리이고
무진의가 또한 아차말이라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등불이 부처를 돕나니
이월을 사월로 고쳐도 문제될 것 없다네.
그러나 우리 부처는 원래 태어남이 없으니
문을 나서 텅 빈 강물 보며 한껏 웃을 뿐이지.

二月八與四月八 釋迦生辰紛紛說
細考又不止周昭 上溯武乙竝夏桀
夜明還是莊王時 春秋元不差月日
不知昭王更何據 甲午甲寅復相

或云入道非生辰 本起那含詳記
鷲嶺聖人法印傳 石柱文字玄機泄
聲聞依滯方隅 離迦飜轉恣訛脫
妙吉祥原曼殊利 無盡意乃阿差末

百千燈影攝牟尼 二月不妨作四月
然而我佛元無生 出門一笑空江闊

신위는 자신의 시에서 날짜를 따지는 데 착오가 생겨 2월이 4월로 바뀌었는데,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4월 8일을 부처의 생일을 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초의 스님은 반론을 제기해 4월 8일이 옳음을 강조하면서, 그러나 부처님은 원래 태어남 자체가 없는 분인데 이를 두고 왈가왈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선승답게 부처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중시해야지 날짜에 얽매일 필요가 있겠냐는 주장이었다.

여기에서 그 논란을 길게 설명할 짬은 없지만, 두 사람 사이의 논란이 팽팽하자 역시 당대 최고의 고증학자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도 <이월 팔일이 부처의 탄신일이란 시에 대해 초의를 대신해 답하다(答二月八日作佛辰 代艸衲)>란 시를 지어 초의 스님의 입장을 옹호했는데, 역시 차이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넓은 시야를 가지자고 말했다.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어리석음인 듯도 하다.

공자의 탄신일도 논란꺼리?

생일에 대해 주장이 많은 것은 부처님만이 아니다. 공자의 생일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공식적으로 공자는 노(魯)나라 양공(襄公) 22년(기원전 551년) 노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鄒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생일은 주력(周曆) 8월 27일인데, 양력으로 따지면 9월 28일이 된다. 성균관과 각지의 향교에서 음력 2월과 8월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공자의 생일을 기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9월 28일이라는 날짜도 뚜렷한 근거가 있어서 정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보면 노나라 양공 22년에 태어났지 월일(月日)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떠나서 워낙 과거의 일이고, 당연히 기록도 전해지는 게 없거나 불확실해 공자의 생일뿐만 아니라 생애와 가족사에 대해서도 굳게 확신하거나 줄기차게 의심하거나 아예 부정하는 사람들로 뒤섞여 있다. 사람이 너무 유명해지면 죽어서도 이렇게 피곤한가 보다.

그런데 2004년 중국 상하이 자오통(交通)대학에 근무하는 장샤오위엔 교수가 현대 천문학을 이용해 공자의 탄신일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이 교수는 <춘추(春秋)>의 공양전이나 곡량전에 실린 기록을 살피다가 공자가 태어나던 해에 일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를 계산해보니 기원전 552년 8월 20일 공자가 태어났던 산동성의 곡부(曲阜) 지역에서 77%의 일식현상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이어 이 교수는 더욱 엄밀한 천문학 계산을 거쳐 마침내 공자의 생일은 기존의 정설이 아니라 노나라 양공 21년 10월 경자일, 즉 기원전 552년 10월 9일이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한 해 더 빨리 태어났다는 말이다.

따져보면 날짜란 게 그저 끝없이 흐르는 시간을 사람이 자신의 편의에 맞게 잘라놓은 경계일 뿐이다. 부처님이든 공자든 그 분들의 마음은 태어나고 죽은 시간과 관계없이 아득한 옛날부터 머나먼 미래까지 변치 않고 살아 이어지는 진리다. 부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새기고 실천한다면 하루하루가 부처님의 생일일 것이고, 말씀을 저버리고 죄악의 소굴에 빠진다면 어느 때도 부처님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날짜가 언제든 부처님오신날은 신앙을 떠나 우리 인류에게 큰 축복의 날임은 분명하다. 신분과 능력, 성별이나 빈부의 차이를 두지 않고 누구에게나 대자대비한 가피를 내리시는 부처님께서 이땅에 오신 참의미다. 자리행(自利行)보다는 이타행(利他行)이 더욱 소중해지는 요즘, 더욱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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