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연결된 존재들

그림. 강병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속성은 2600년 전에 부처님이 깨쳤던 무상이고 무아이다. 오늘 깨쳐도 무상이고 무아이며, 천년 후 깨쳐도 무상이고 무아이다. 기본적 속성이 제행무상, 제법무아가 되면서 불교의 출발점을 만들고 있다.

무아와 무상은 본질적 진리
무아·무상 인식하면 열반적정
진리 알게 되면 고통 소멸하고
즐거움 생겨 이고득락하게 된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나라는 실체는 없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라고 내세울 실체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를 하느냐하는 문제는 2600년 불교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주제였다.

상태를 흩어 놓으면 무아이고 모으면 우리의 몸뚱이가 된다. 이것이 무아이다. 원래 무아인데 이 몸뚱이가 생기면서 나라고 착각하며 내가 있다고 고집을 하는 ‘아집’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나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이다.
부처님 경전에서 무아를 표현한 멋진 말이 있다. “끌어 모아서 얽어매면 한 칸의 초가집. 들판에 헤치면 본래의 들판인 것을.”

볏짚을 들판에 풀어 놓으면 들판에는 아무것도 없다. 바로 들판일 뿐인데 볏짚을 끌어다 얽어 놓으니 한 칸의 초가집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색·수·상·행·식을 끌어다 모으니 몸뚱이가 생긴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 같은 무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생각해 보자. 그 당시 존재했던 사상들과의 관계는 부처님이 극복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무언가 진리를 가르치고 박 씨도 가르치고 이 씨도 뭔가를 가르친다. 여러 사람들이 자기 것이 진리라고 가르친다고 하자.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말 바르고 진실하다면 상대의 가르침을 다 타파해야만 한다.

부처님 당시에 ‘육사외도’라는 뛰어난 6명의 사상가가 있었다. ‘육사외도’들의 사상은 부처님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존재에 대해서 6근, 6경, 6식을 설명하시면서 육사외도의 주장들을 타파하고, 또 무상이고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지 설명해야 하였다.
 
케마 비구의 꽃에 대한 비유
부처님 당시에 케마라는 비구가 있었다. 비구 케마가 아파서 병석에 누워있었다. 마침 다른 수행자들이 케마를 찾아와 병문안을 한다. 그 자리서 부처님은 “무아라 했는데 왜 아프냐”고 농담을 한다.

그때 케마는 “‘아니다’ 나는 ‘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분명히 부처님이 무아라고 가르친 상태인데 케마의 ‘나는 나가 있다’고 한 말에 대해서 많은 장로 비구들이 모여서 어떤 말이 맞는지 가리기 위해서 케마가 병들어 누워 있는 수행공간으로 모여 들었다.

장로들이 모여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럴 때 케마가 ‘내가 있다’고 한 근거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만약 꽃에서 향기가 난다 하면 우리는 분명히 향기를 맡고 그 향기가 있다고 믿는다.

꽃향기를 맡았는데 그 향기가 꽃술에 있느냐, 꽃대에 있느냐, 꽃밑에 있느냐, 꽃잎에서 나는가? 분명히 꽃향기는 나는데 꽃대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꽃잎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꽃술에서 나는 것도 아닌데 분명히 꽃향기는 있다.

이와 같이 케마가 말한 무아는 바로 꽃향기와 같은 것이다. 분명히 꽃이 없는데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꽃이 있기 때문에 향기가 나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면서 케마는 장로들을 설득하였다. 무아를 설명할 때 가장 좋은 예로써 바로 ‘내가 있다’고 한 말 한마디로 인해서 논쟁이 일어났고 그 논쟁으로 인하여 무아를 꽃향기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다.

엄밀하게 꽃향기는 꽃에서 나지만 꽃대도 아니고 꽃술도 아니고 꽃잎도 아니다. 그렇지만 향기는 분명히 있다. 이와 같이 케마의 이야기로 분명히 무아를 설명했다.

꽃에는 꽃대도 있고, 꽃술도 있고, 꽃잎도 있다. 이것이 모여 관계성을 가지면 꽃이 생기게 된다. 관계성이 없어지면 꽃은 없다. 그래서 원래 없는 무아인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6근, 6경, 6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로병사의 순환을 한다. 태어나서 젊은 시절이 있고, 결국 늙고 병들어 죽는다.

태양의 수명은 약 150억 년 정도라고 한다. 지금 태양의 나이는 70억 년 정도로 추정된다.

우주 모든 만물은 성·주·괴·공을 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성간물질이 모여서 지구나 혹성, 별들이 만들어진다. 태양은 지금 약 70억 년이 되었으니 한창 활발할 때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태양은 적색거성이 돼 자신을 불태우고 백색왜성으로 생을 마감한다. 태양보다 질량이 큰 행성은 폭발해 초신성이 되거나 블랙홀이 된다. 우주도 아득한 시간 안에서 성·주·괴·공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로병사를 하고 정신작용은 생주이멸을 한다. 어떤 사물을 보면 의식이 일어나고, 그것이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이 우주의 생명체들은 정신작용을 하여 생주이멸을 한다. 그래서 제행무상인 것이다.

경전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부처님이 깃자쿠우타산(영취산)에 있을 때 유명한 수행자들이 삿비아 호숫가 정사에 모여서 ‘수행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이때 외출서 돌아온 부처님이 수행자들의 질문에 답을 했다. 생명체로 살고 있는 모든 중생은 무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그 내용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무명으로부터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받아 우주 삼라만상의 생명체로 생겨난다.

‘오욕(재욕·식욕·색욕·명예욕·수면욕)’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모두 무상한 것이며 괴로운 것이다. 또 욕계, 색계, 무색계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도 ‘나’와 ‘나의 것’은 없다”고 설했다. 바로 무상, 무아, 연기를 설명한 것이다.

재상 불사밀의 지혜
부처님을 신봉하고 불교에 귀의한 파세나디왕의 모후가 죽었을 때 이야기이다. 왕에게는 불사밀이라는 뛰어난 재상이 있었다. 그때 왕은 전국 순행을 나갔다. 왕의 모후는 100살이 되도록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다. 왕은 모후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전국 순행을 나섰다. 파세나디왕은 효심이 지극하여 평생 어머니를 잘 모셨다.

왕이 돌아올 때 쯤 모후가 죽는다. 불사밀 재상은 왕의 효성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소식을 들으면 누구보다 슬퍼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통에 빠져 견디지 못하는 왕을 생각하고 불사밀이 꾀를 낸다.

왕이 순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목에 불사밀은 어느 장자의 집에 어른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지내는 것처럼 장례 행렬을 떠나보낸다. 그때 불사밀이 왕과 마주치게 된다. 오랫동안 못 보았던 왕이 불사밀을 보고 반가워하며 “누구의 장례이기에 이처럼 거창하게 하느냐”고 물었다.

500마리 코끼리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따르고 같이 묻어질 사람들도 따르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순장하는 관습이 있어서 장자를 모시던 노예도 같이 묻을 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불사밀에게 말한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데 왜 쓸데없이 거창하게 장례를 치르느냐고 하면서 이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자 불사밀이 왕에게 “왕이시여, 다름이 아니라 모후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며 장례행렬은 바로 모후의 장례라고 밝혔다. 임금은 한참 동안 침묵에 빠졌다. 침묵에 빠져서 깨어난 왕은 불사밀에게 “현명한 신하가 있어서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장례 행렬을 보고 임금은 죽음은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도 본인은 충격에 빠지지 않은 것이다. 그 슬픔은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불사밀의 지혜 덕분이다. 왕은 말을 몰아 부처님의 처소로 갔다. “부처님이여 이제 모후가 돌아가셨지만 오늘 불사밀이 저를 위로해주었고 장례도 치러 주었기 때문에 큰 슬픔은 없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파세나디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것, 아무리 그것을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소. 마치 질그릇을 구울 때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든 아니든 간에 부서지고 마는 것과 같소. 우리의 몸에 4가지 두려움이 닥치면 그것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오. 4가지란 늙음과 질병, 죽음, 무상이오. 이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행무상인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무상이며 제행무상이다.

열반적정(涅槃寂靜)
제법무아, 제행무상을 인식하는 순간 내 마음의 상태가 바로 ‘열반적정’이다. 그래서 ‘열반적정’은 제법무아와 제행무상을 인식하는 순간 인식하는 것이다. 마음의 상태가 바로 적정이므로 무명에서 벗어나면 바로 적정이 된다.

불교의 기본용어를 모를 때에는 선불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특별하지만 기본 개념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선불교의 화두는 쉬워진다. 선불교의 모든 화두도 삼법인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의 법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진리를 깨치고 나면 무아이고 무상일 수 밖에 없다. 무아와 무상은 우주의 본질적인 진리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리가 체계화 되는 과정에서 부처님은 제일 먼저 삼법인을 설명하였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제행무상이고 제법무아이고 일체개고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으로 삼법인이 된다.

무아와 무상을 인식하는 순간 그 때의 인식이 열반적정인 것이다. 그래서 삼법인을 바로 알아 고를 벗어나 열반적정, 극락을 이루어 살자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진리를 알게 되면 고통은 소멸하고 즐거움이 생겨 이고득락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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