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새기는 가족이란 이름

다시 오월이다.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이 충만한 이 계절에 마음을 울리는 두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10대부터 가장 노릇 해온 40대의 비혼 남성 명인 씨가 묻는다.

“도대체 가족이 뭘까요?”

나는 그 질문을 돌려주었다.

“가족은 그대에게는 무엇인가요?”

“가족은 저에게 굴레입니다. 그것도 가시나무덩굴로 된 굴레. 스물 살 때 결혼 같은 건 안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 안 해도 가족 부양으로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불화가 심했습니다. 어머니는 툭하면 아버지하고 안 산다고 나가시곤 하셨죠. 몇 달간 돌아오시지 않아 동생과 할머니 댁에 가 있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장남이다. 네가 동생을 돌봐야 해.”

외면한 가족 애증 마주해
더 나은 부모, 가족 되고
약자 대한 애정으로 확장

명인 씨는 늘 자신이 동생의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집을 세 번째 나갔을 때 중학생이었던 동생도 가출했다. pc방에서 일하며 숙식을 하는 동생을 끌다시피 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명인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일용 노동자이던 아버지는 며칠씩 일감이 없어 공칠 때도 많았다. 말년에는 술에 절어 살다가 돌아가셨다. 몇 년 전 어머니를 찾아내 가끔 용돈도 드리고 집에도 모셔오곤 했는데 지난해부터 치매 증세가 있어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한때는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시장에서 좌판을 하며 꼬부랑 할머니가 된 모습을 보고는 측은한 마음이 앞섰다.

무능하고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라 가난을 대물림 하는 세대. 이 형제 이야기는 색다를 게 없는 널린 이야기다. 다른 게 있다면 명인 씨는 불우한 환경에 주저앉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지녔고 그에 걸맞는 도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무너져 가는 가정에서 잡초처럼 강하게 생을 버티어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다문화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저녁에는 학원 강사 생활을 한다. 동생은 형의 보호 아래 전문대학을 졸업해 전기 기능공으로 일하고 있다. 밤낮으로 일하며 30년을 버티었는데 여전히 그는 가족 부양의 책임을 느낀다.

“동생이 결혼식도 제대로 못 올리고 제수씨랑 살고 있어요. 결혼시켜서 제빵사 자격증이 있는 제수씨와 함께 하도록 빵집 차려주고 요양원 어머니가 편안히 가시는 것 보는 게 마지막 할 일입니다.”

십대부터 가장 노릇 하느라 자신의 인생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사는 것 같아요.”

여기서부터 코치의 적극 개입이 시작되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왔나요?”

명인 씨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잠시도 게을리 살지 않았고 해마다 목표를 정해서 달려왔다고 답했다.

“명인 씨가 자신을 위한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

그는 가족 부양이 끝나면 지금 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돕기를 확장해서 사회기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제 인생이 가족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네요.”

대학 졸업 후 인연을 끊고 스무 해

수영 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왔다. 그리고 부모님과는 인연을 끊었다.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주눅 들어 자식을 때려도 말리지도 못하는 엄마, 지긋지긋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력이 생기면 집을 나오겠다고 결심하고 취직하자마자 독립했죠. 올해가 20년째네요. 그동안 입사동기였던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이지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고향이 생각나도 애써 도리질을 하죠. 나는 부모에게 빚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학력의 전문직이었다. 동네에서는 유지 대우를 받았지만 집에 들어오면 폭력과 욕설을 일삼는 폭군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이 떨어지면 매를 맞았어요, 나이 들수록 점점 맞는 이유가 늘어나요. 어떤 때는 이유도 모르고 맞는데, 때리다가 더욱 화가 나는지 어머니도 같이 맞았어요. 집에서 나오는 날, 아버지는 부모 은혜도 모른다고 소리치더군요, 낳아주고 키워주고 공부시키지 않았냐고요. 저는 그동안 맞은 매 값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어머니는 울기만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데 수영 씨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마구 떨어졌다. 입으로는 울분과 원망을 쏟아내는데 눈에는 회한과 슬픔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 화사한 봄날에 어쩌자고 젊은 엄마인 그녀는 이리 아플까.

상처가 있는 고객과의 코칭 대화는 무척 조심스럽다. 과거의 치유는 코칭에서 전문으로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지금 저와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자꾸만 엄마 생각에 가슴이 저립니다. 나도 없는데 아버지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지, 다 엄마 인생이라고 지워버리려 해도 잘 안됩니다. 엄마도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저를 낳고 키우면서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때를 놓쳤고 그러다보니 참고 견디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엄마의 노후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데 아버지와는 화해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엄마의 남은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을 이슈로 우리는 코칭을 이어나갔다.

“이제 와서 엄마를 돕는 일은 수영 씨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과거의 기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이겨내고 싶다고 그녀는 답했다.

“엄마의 노후에 제가 보탬이 되어야 제 상처가 아물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통을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저는 다른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와는 화해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아버지와 얽힌 과거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버지는 천천히 생각하겠습니다. 미움이 있어서 올바른 판단이 어려워요.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과제는 아직은 저에게 힘듭니다.”

가족을 사랑하듯 모든 생명을 사랑하라

붓다는 가족 간의 사랑을 외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붓다의 진설이랄 수 있는 초기 경전에는 가족의 사랑과 도리에 대한 가르침이 많다. 특히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에 대한 법문이 다수인 니까야경에는 가족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과 생활지침이 자세하게 나온다. 숫타니파타의 행복경에도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라고 설한다.

니까야의 육방예경을 보면 일방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부모 역시 자식을 한없는 사랑과 자비로 대해야 함을 다섯 가지 마음가짐으로 얘기하고 있다.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첫 번째 지침은, 자식을 올바른 인간으로 양육해서 사회로 내보내라는 근본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제 노릇을 못하는데도 공경해야 할까.

가족관계에서 부모님에 대한 애증은 코칭의 단골 주제다, 부모에게서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그들은 말한다.

“부모도 나름 아닌가요? 저를 지켜주지 못한 부모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숫타니파타의 자애경에 귀를 기울여 보자.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한없는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였다.

붓다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려 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긍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게 보편적으로 펼치라고 이야기한다. 붓다는 자기 가족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 본능의 사랑이 모든 생명체로 확장하는 큰 사랑으로 뻗어가기를 가르친다.

자녀의 부모 사랑도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가난하고 불행한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면 그가 반드시 선량하고 나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향한 연민과 자비의 마음은 상대의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다.

명인 씨는 부족한 부모를 연민하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자양분으로 한층 성숙한 삶을 살게 되었고 이제는 사회 약자에 대한 애정으로 확장하고 있다.

수영 씨는 애정보다 증오가 앞서서 부모와 절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지만 미움은 가슴 한쪽에서 괴로움이 되어 남아 있다.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폭력에서 자식을 지켜내지 못한 엄마를 이해하고 연민하기 시작했다. 외면하던 가족에 대한 애증을 마주하고 정면으로 이겨내서 자신은 더 나은 부모가 되려고 하고 있다.

피붙이의 사랑이 모든 생명으로 나아가서 다시 가족으로 돌아오는, 대 자비의 마음이 붓다의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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