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 스님

교화활동 도와주신 ‘큰 어른’
‘욕심’ 자랄까 방문 열고 살아

2004년 11월 원적에 드신 석주 스님은 마음속의 스승이다. 매년 5월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더욱 생각나는 어른이다. 석주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로회의 부의장, 불국사와 은혜사 주지를 지낸, 한국 불교사에 공헌한 선지식이다. 평소 재소자들에게 많은 설법을 해주셨던 석주 스님은 아흔이 넘은 시절에 前 법무부 장관이 창설한 교정 대상 수상자로 지명됐다. 하지만 스님은 그 상을 거절했다.

“상은 열심히 일한 사람이 받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이 뭘 했다고. 그 상은 삼중 스님 같이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한테 줘야지.”

하지만 그 때 그 상은 제1회 ‘교정 대상’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이유로 결국 석주 스님이 선정됐다. 하지만 석주 스님은 끝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상좌 스님이 대신하여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칠보사에 머무실 때 석주 스님은 항상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셨다. 언젠가 내가 그 까닭을 묻자 석주 스님은 방문을 닫아 걸어놓으면 왠지 마음속에 욕심이 웃자랄 것 같아서 그런다고 하셨다. 오랜 세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온 노승의 혜안을 보았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석주 스님의 모습은 삶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스님은 자신에게 들어온 것들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값이 나가는 것인지 전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구명운동을 벌인 끝에 가석방될 수 있었던 박 모 씨가 있었다. 내 인연이라 생각해 내 절에 머무르게 했는데, 하루는 느닷없이 박 씨가 석주 스님을 만나 뵙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감동한 낯빛으로 말했다. “역시 석주 스님은 큰스님이세요. 요즘 제게 말 못할 사정이 생겨 생각 끝에 석주 스님을 찾아뵙고 돈 십만 원만 달라고 했더니 백만 원을 주셨어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구명 운동에 애써 준 것만으로도 큰 은혜인데, 어쩌자고 찾아가서 돈까지 달라고 할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혔다. 나는 박 씨를 야단친 후 석주 스님을 뵈러 갔다. 내 절에 거둔 사람이니 내 책임도 많다고 생각했다. 나는 박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다시 스님에게 여쭈었다. 그러자 스님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박 씨에게 돈을 주기는 했지만 백만 원을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재차 내가 박 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자 스님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사건의 내막을 알겠다는 듯 말씀하셨다.

“얼마 전에 내게 신도 한 분이 불사에 써달라고 봉투를 하나 놓고 갔는데, 내가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알 리가 없지요. 그래서 마침 박 씨가 찾아와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그 봉투를 그대로 그에게 내주었지.

나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다.

하루는 석주 스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삼중 스님, 건강 조심해! 나는 다되었지만 삼중 스님은 아직 할 일이 많은 스님이니 각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

그렇게 말씀하신 뒤 좋은 일에 보태라며 봉투 하나를 주셨다. 나는 건강을 조심하라는 스님의 말씀에 석주 스님과 서옹 스님이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자선 바자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두 노장은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서로의 건강을 염려했다. 평소 내가 존경하던 두 스님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나는 의아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자면 인간의 육체라는 것이 지수화풍인데, 생사를 따로 보고 있는 스님들의 대화에서 나는 적잖은 실망과 의심을 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저 같은 늙은이야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큰스님께서는 오래 사셔야 합니다.”

석주 스님은 생사를 여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서옹 스님의 건강을 걱정한 것이다. 자신의 안위는 이미 다 놓아버린 지 오랜 ‘스승’임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아침 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석주 스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삼중 스님, 참 잘했어. 우리 종단에도 삼중 스님 같이 멋지게 강의하는 스님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뻐. 정말 스님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사실 나는 강연을 많이 다녔다. 그리고 고맙게도 내 강연은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석주 스님과 같이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준 것은 아니다. 도리어 나를 비방하는 스님들도 있었다. 나는 석주 스님의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어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석주 스님은 언제나처럼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염려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셨다.

“그러지 마세요. 나 때문에 일부러 시간 내지 말고 스님 하시는 일이나 열심히 해줘.”

석주 스님이 어려웠을 때가 있었다. 지방에 건설 중인 양로원 공사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면서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심한 독촉에 시달리고 계셨다. 그 와중에도 인사차 뵈었을 때 스님은 붓글씨 50점을 주셨다. 돈으로 도울 수가 없으니 글씨라도 챙겨주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스님의 글씨는 가벼운 글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글의 값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스님의 마음이었다. 언젠가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주셨던 법문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는 삼중 스님과 같이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는 스님들이 많아야 해.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삼중 스님과 같이 좋은 일 하시는 스님들을 도와야만 하는 거야.”

서예전시회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삼중 스님(사진 왼쪽)과 석주 스님(오른쪽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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