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선자(77) 부산여성불자회 명예회장

왕선자 명예회장은… 1942년 12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 문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혜화여중·고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부산여성불자회 창립회장, 불교여성개발원 초대부원장, 부산교육정보원 학생상담사, 부산교도소 불교참회반 위문법회 법사, 부산교육청 학생상담 봉사자회 회장, 조계종 부산경남포교사단 부단장 등으로 활동했다. 조계종 포교대상 원력상, 조계종 홍법사 홍법대상, 부산불교연합회 회장 표창, 부산시장 표창, 국무총리 표창,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2010년 시인으로 등단해 실상문학 작가상, 문화타임 작가상 등을 받았다. 저서는 시집 〈우바이별곡〉, 〈꽃살문〉이 있다.

25년 부산지역 자비전법행
1994년 부산여성불자회 창립
25년 회장하며 봉사·전법행
만나는 인연 하나하나가 가족,
내 불심의 원동력은 그 가족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 날마다 공장에 다녀오면 / 물동이 머리에 이고 / 뒷마당에서 무우 뽑아 반찬하고 / 김치전으로 간장 종지 놓고 /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걸 / 세상 으뜸으로 여기시던 어머니.”

따뜻한 밥을 짓고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은 중생의 어려움을 염려하는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닮았다. 위의 시는 시인이자 부산여성불자회를 25년 동안 이끌어 온 왕선자 명예회장의 시다. 시에서 보이듯 왕 명예회장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2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자리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킬 수 있었던 던 것은 바로 그의 마음속에 늘 어머니의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의 실수로 멍에를 지게 된 재소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교화하고, 힘겨운 청소년들에겐 든든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등 그가 살아온 삶이 그렇게 말한다. 보살의 마음을 닮은 왕 명예회장의 이야기다.
 

새로운 도약을 돕기 위한 퇴진

왕 명예회장은 49일 부산불교연합회 전법관에서 열린 부산여성불자회 장학금 전달식에서 회장직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이 됐다. 25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왕 명예회장의 모습에 회원들은 모두 뜨거운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왕 명예회장은 회장직을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회장직을 대신할 사람을 찾았고, ·취임식을 진행하려 했지만 어느 누구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뛰어난 역량을 갖춘 회원들이었지만 흔들림 없는 왕 회장의 지도력에 여전히 믿음이 컸기에 어느 누구도 왕 회장의 자리를 대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왕 명예회장 역시 회원들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왕 명예회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했어요

갑작스런 이·취임의 이유를 묻자 왕 회장은 짧게 답했다. 그리고 명예회장으로서 변함없이 후원하고 지원할 것이라는 의지를 덧붙였다. 왕 명예회장의 쉼 없는 ‘25의 불사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2017년 4월 여성불자회 장학금 전달 모습.

 

모든 인연이 가족보살행 원동력은 마음

불연의 가피로 새로운 삶
30대 중반 원인 모를 병마 만나
죽음의 문 앞 하루하루 절망의 삶
선암사서 관음기도 6년 후 완쾌
새 삶의 불연 가피 공덕회향

 

병마로 얻은 불자의 삶

왕 명예회장은 평범한 불자였다. 자녀를 기르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어느 날 그에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병이 찾아왔다. 병마는 왕 회장을 괴롭혔다. 몸은 점점 말라갔고, 힘이 없어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많은 병원을 다녀봤지만 병명과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스트레스 혹은 신경쇠약이란 말만 돌아올 뿐 나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왕 명예회장은 마침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기절하듯 쓰러졌다. 더 이상 수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는 포기 하듯 학교를 떠났다. 10년 동안 지켜왔던 교단을 허망하게 내려와야 했다. 왕 명예회장은 아픔 속에 살다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절망이었다.

절에 가서 기도해보자

어느 날, 왕 명예회장은 친정어머니 손에 이끌려 부산 선암사를 찾았다. 여고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긴 했지만 간절하게 부처님을 찾고 매달린 적은 없었다. 처음이었다. 범어사 말사인 선암사는 백양산 중턱에 자리 잡아 오르는 길이 험했고, 그 때 당시는 차가 다니기에도 불편했다.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왕 회장은 숲길에 핀 아카시아 잎을 따서 하나씩 떼어가며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아픈 몸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다. 걸음마다 간절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오른 선암사에서 왕 회장은 편안함을 느꼈다. 포근한 안식처에 안긴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절망에 휩싸이게 한 병마의 걱정도 불안도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며 매일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관음기도는 빼놓지 않아요. 아팠던 몸이 거짓말처럼 낫기 시작했는데 부처님께 너무 감사했고 새 생명을 주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선암사에서 기도를 시작한 지 3년 쯤 지나면서부터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왕 명예회장의 병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3년 동안의 기도가 더 이어지면서 왕 명예회장은 병마에서 벗어난다.

2017년 12월 부산여성불자회 송년회 모습. 1994년 왕선자 명예회장이 주축이 돼 창립된 부산여성불자회는 활발한 봉사활동으로 전법포교를 하고 있다.

탄생 부산여성불자회

왕 회장은 선암사를 매일 오르며 절에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선암사에 갈 때마다 보았던 10살 쯤 된 남자아이였다.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해 보였던 남자아이는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가방을 던지듯 벗어 놓고 이리 저리 다니기에 바빴다.

선암사서 그 아이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후 왕 명예회장은 그 아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다음날 선암사를 찾은 왕 명예회장은 학교에서 돌아온 남자아이를 붙들었다.

공부도 해야지. 책 펴고 가방 바로 놓고

왕 명예회장은 나가려는 아이를 붙잡았다. 씻기고 먹이고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절에 맡겨진 아이였다. 왕 명예회장은 그 아이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지 스님이 절을 옮기면서 아이도 주지 스님을 따라 가야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왕 명예회장은 아이가 떠 난 후 허허로운 마음에 사로잡혔지만 건강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안색이 몰라볼 정도로 밝아졌고 차츰 살도 붙어 활동하기 편해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얻은 삶이었다. 왕 명예회장의 삶은 그야말로 새로운 삶이었다. 그 새로운 삶은 불자로서의 삶이었다. 왕 명예회장이 다시 받은 생명은 부처님 도량에서 얻은 삶이었다. 그 삶의 의미에 부처님의 뜻이 없을 수 없었다.

왕 명예회장은 부처님께 무엇이든 올리고 싶어졌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 아이 때문이었을까. 왕 명예회장은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 그는 학생들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상담활동의 원력을 세운다. 그는 전문교육을 받으며 상담활동을 시작했다. 부산불교교육대학을 다니며 교리 공부도 시작했다. 왕 명예회장은 시야를 넓혀 모든 어려운 대중을 위한 불사를 생각한다. 그는 포교사단에서 활동하며 포교를 위한 방향을 고민하다 마침내 1994부산여성불자회를 창립한다.

부산 교육감상 수상당시 모습.

새로운 삶 봉사·전법

전법 포교가 주 활동입니다. 장학사업과 재소자 교정교화 활동을 주로 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본회 활동을 통해 불자로서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산여성불자회는 도량인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모두 순수한 어머니들이십니다. 모두 자녀들의 학업 성취와 가정을 위해 절을 찾는 분들이시고 초심자도 많았지요. 자녀가 잘 되길 기도하며 무엇이든 하려는 그 마음이 초심이 되었으니 얼마나 순수합니까? 봉사를 통해 기복에서 진일보한, 참된 보살이 되어가는 모습과 보살행을 하면서 마음이 커지고 불자의 참된 삶을 깨닫는 모습이 부산여성불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어머니들이 보살이 되어 가는 곳, 부산여성불자회는 도량이다. 왕 명예회장은 부산여성불자회를 통해 자신이 새롭게 받은 삶을 회향하고 있다.

왕 회장의 활동은 부산여성불자회에서 그치지 않는다. 불교여성개발원 창립 당시 초대 부원장으로 활동하며 불교계 내 여성들의 역할을 바로 알리고 재가 불자 여성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활동했다. 상담 능력도 뛰어나 부산교육정보원에서 상담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의 고민을 들으며 마음을 나눴다. 상담 봉사 기간만 22년이다. 탈북 가족을 위한 상담 또한 왕 명예회장이 담당했다. 탈북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명절이 되면 제수용품을 선물하며 마음을 위로했고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상담은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어려운 상황을 들으면 마음이 막막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어려움을 채워주고 싶은데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라 걱정도 많이 됐고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왕 명예회장은 상담할 때 학생들이 필요한 물품이 있다고 하면 바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찾아가곤 했다. 약사인 남편의 벌이로 자녀들과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평범한 주부의 생활에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보시를 받아내는 일이 왕 회장의 일이었다. 스님들과 불자들을 만나러 다니며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보시 받았다. 불교계의 지원과 회원들의 십시일반 회비는 큰 도움이 됐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회향할 수 있는 재정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부산여성불자회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했던 장학금이 6백만 원이 넘었고, 현재 13천만 원이 넘었다. 그 외에도 왕 회장이 살고 있는 부산 당감동에 불자들을 모아 백양관음회를 만들어 동평중학교와 동평여중에 장학금을 10년 동안 전달했다. 당감동 마을에서 만나는 어려운 독거노인과 소외 이웃을 위한 나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재소자를 위한 교정 교화 활동에서 회원들과 함께 간식과 필요 용품을 준비해 갈 땐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진다고 했다.

하지만 왕 명예회장은 한 편으론 너무 부족합니다. 더 많이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는 보살행은 돈이 넉넉하다고 모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짜 원동력은 마음이다고 말했다.

불교의 정신은 일체유심조입니다. 무엇을 마음을 새기고 얼마나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집니다. 그 마음의 힘을 믿고 묵묵하게 나아갈 때 세상은 달라집니다. 돈이 많아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행을 마음에 담고 실천하겠다고 하면 돈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2018년 12월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모두가 나의 부처님

평생을 불자로 살아온 왕 명예회장이다. 그에게 지나온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가족이라고 답했다.

마하사서 30년 가까이 동고당 문성 스님을 시봉하며 살아온 대보살입니다. 법명은 금강연화대를 의미합니다. 제가 이렇게 불자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시어머니의 불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현재 왕 명예회장의 시어머니는 103세다. 왕 명예회장은 55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왕 명예회장의 불심은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어머니의 불연, 친정어머니의 불연이 왕 명예회장의 불연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겐 새로운 가족이 있다. 그는 새로운 아들이라고 했다. 병마에서 벗어나고자 기도를 시작했던 시절 선암사서 만났던 그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자라 왕 명예회장을 수소문해 찾아 온 것이다. 10살이었던 아이는 지금 우체국서 근무하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아들의 아빠였다.

소원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

4년 전이었다. 성인이 된 그 남자아이는 왕 명예회장을 찾아와 간절히 부탁했다. 왕 명예회장은 허망하게 헤어진 후 찾지도 못하고 해준 것이 없었던 지난 세월이 머리에 떠올랐다. 왕 명예회장은 마침내 그 아이를, 아니 그 청년을 아들로 받아들였다.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가족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새롭게 맞은 아들을 비롯해 왕 명예회장이 22년간 상담하며 만난 학생들과 재소자들 그리고 마을서 장학금을 주며 힘내라고 격려했던 그 많은 인연들이 왕 회장에겐 모두가 가족이었던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대중의 작은 목소리 하나하나에도 귀를 세우듯 왕 명예회장은 자신의 곁을 지나는 인연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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